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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칼럼] 한미 관세협약, 과연 무엇을 시사하는가
  • 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
  • 등록 2025-11-05 21: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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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모습. / 연합뉴스. 

한국전략연구소 소장솔직하지 못한 ‘비대칭 협약’ 발표


29일 정부가 발표한 한미 관세협약은 표면상 “호혜적 경제협력”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원하는 투자·구매 약속을 명문화한 반면 한국이 얻는 이익은 모호하고 불투명한 표현으로 가려졌다.


백악관이 공개한 팩트시트(fact sheet·핵심정보 정리 문서)에는 미국이 받을 구체적 액수, 투자 시기, 분야, 원금 회수 조건 등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으나 한국 정부의 발표문에선 ‘상호 협력’ ‘공감’ ‘최혜국 대우’ 같은 추상적 표현만 눈에 띄었다.


이러한 불균형 구조는 단순한 통상문제를 넘어 한미 관계의 구조적 종속화, 대중(對中) 무역의 단절 가속, 한국 안보의 전략적 제약이라는 삼중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정통성을 의심받거나 취약한 정권이 맺는 전형적인 불균형 협약이다.


對중국 무역에 미치는 영향- 공급망 왜곡과 수출 위축


△공급망의 단절 가속화


이번 협약은 반도체·조선·에너지·의약 등 핵심 산업을 한미 공조체계에 편입시키는 대신 사실상 ‘탈(脫)중국화’를 강제하는 효과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은 향후 MASGA(조선·에너지 협력 펀드) 및 첨단산업 투자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 중국계 자본·기술의 참여 제한 조항을 삽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한국 기업의 대중 합작라인과 중간재 거래를 축소시켜 한국 제조업의 생산비 증가와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이다.


핵잠수함 기술을 요구하면서 그 이유를 중국 해군력에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한 것은 위축된 자세를 지나치게 솔직히 드러낸 것이며 경제를 안보에 연계시켰다는 점 또한 문제다.  


△수출시장 다변화에 역행


중국은 여전히 한국 수출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하지만 이번 협약은 한국이 미국의 공급망 논리에 동조함으로써 중국에겐 ‘경제적 배신국’으로 인식될 위험을 키운다. 중국이 희토류·리튬·배터리 소재 등 전략자원을 무기화할 경우 한국 산업은 직접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결과적으로 한미 협약은 단기적 수출 안정을 위해 장기적 수출시장 축소를 자초한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무역정책의 자율성 상실


이번 합의문에는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이는 한미 간 무역·투자 갈등이 발생할 경우 미국 기준의 상업 논리에 따라 조정한다는 의미로, 한국의 무역정책 자율성을 미국 기준에 예속시키는 조항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즉, 향후 한국이 독자적으로 대중 무역 확대나 제3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할 때 미국의 사전 승인 또는 정치적 간섭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한미 관계에 미치는 영향 - ‘경제동맹’인가 ‘경제 종속’인가


△한미 관계의 비대칭 심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번 합의를 ‘미국 일자리 창출’과 ‘산업 부흥’의 성과로 즉각 홍보했다. 백악관 팩트시트에는 한국의 대미 구매·투자 규모, 시기, 산업별 세부 항목까지 명시되어 있다. 반면 한국이 기대하는 ‘최혜국 대우’나 ‘조선 협력’ ‘핵잠수함 추진 공감’ 등은 명문화되지 않은 채 구두 합의 수준에 머물렀다. 이러한 불균형은 한미동맹이 상호 호혜적 관계라기보다 미국 주도의 통상 블록에 편입된 종속형 동맹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적 신뢰의 소모


국민이 협약의 실질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상호 윈윈”이라는 표현만 듣게 된다면, 시간이 지나 실제 효과가 나타날 때 정부 발표에 대한 신뢰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한미 간 신뢰가 제도적 투명성 위에 구축되지 않고 정치적 제스처나 일방적 발표에 의존하게 되면 동맹은 오히려 ‘불신의 동맹’으로 퇴락할 위험이 있다.


△경제협력의 안보 종속화


조선 협력체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산하에 두겠다는 합의는 경제적 협의를 군사·안보 프레임 속에 가두는 조치다. 이는 한미 경제협력이 안보 정책의 하위구조로 전락했음을 의미하며, 한국의 산업정책 결정권이 군사동맹의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구조적 전환점이 된다. 이로써 한국은 산업·에너지·기술 정책을 독자적으로 설계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미국의 조치가 한국 안보에 긍정적 영향을 주게 될지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될지가 관건이다.  


한국 안보에 미치는 영향- 자율성의 축소와 전략적 불균형


△‘핵잠수함 보유’ 이유 표현 부적절


협약 발표에서 미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추진 필요성에 공감 및 승인했다고 밝혔지만 이는 기술이전·핵연료 공급 등 실질적 지원이 수반되어야 하는 문제다. 즉, 한국은 미국의 공감을 도출해 냈고 미국 필리 조선소에서도 건조 조건에 관한 단서를 추가 발표했다. 하지만 잠수함 전문가의 평가에 따르면 미국이 주지 않아도 우리의 핵잠수함 기술은 내년 말이면 독자적 소형 원자로 장착이 가능한 수준에 이미 도달해 있다.


△북핵 억지력의 실질적 강화 방안 누락된 구호


“한미동맹 억지력 강화”라는 문구는 매번 반복되는 수사에 불과하다. 실제 이번 협약에는 확장억제 체계 강화나 핵공유에 관한 구체적 조항이 들어 있지 않다. 경제협력과 안보가 결합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고 얻어낸 정치적 수사 수준의 안보 강화에 머문 것이다.


△전략적 자율성의 퇴행


한국은 한때 ‘균형 외교’를 통해 미·중 간 완충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이번 합의는 그 균형 축을 완전히 미국 쪽으로 이동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이재명 정권을 가능하게 한 중국에 대한 배신으로 비칠 수 있고, 이재명 정권 다음을 노리는 세력에겐 공격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동맹국인 미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이 동북아시아 전략 구도에서 자율적 외교 공간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신뢰 회복 없는 협약은 지속가능성 제한


백악관 팩트시트와 대통령실의 발표문을 비교해 보면 이번 한미 관세협약은 한국이 경제적 대가를 치르고도 명확한 이익을 확보하지 못한 불균형 협정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를 “상호 호혜적 협력”이라 포장하는 것은 국민에 대해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며,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이익이 뒤따르지 않는 한 지속 가능한 동맹에 관한 신뢰의 기반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미국에 얼마를 주었는가’가 아니라, 그 대가로 한국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확보했는가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실질적 이익 없이 추진된 외교·경제 협약은 결국 외교의 실패이자 주권의 후퇴라는 결과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협약은 미국에는 실질적 이익을, 한국에는 불투명한 약속만을 남긴 비대칭 합의다. 이 불균형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대중 무역은 위축되고 안보는 미국의 틀에 더욱 종속될 것이다.


동맹의 진정한 가치는 상호 신뢰와 투명성에 있다. 향후 관전 포인트는 정청래와 우원식, 김동연 등의 행보다. 이를 지켜보면 정확한 평가가 도출될 것이다. 한국 안보 관련 동맹파에게는 안도를, 자주파에게는 탄식을, 일반 국민에게는 걱정을 안겨준 관세협약 타결이고 그 부담은 국민과 대기업들이 지게 되었다. 


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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