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양자 회담중인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UPI 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한때 '국제 왕따'였던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 중동정책의 중심국으로 거듭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의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하고 양국 간 경제·방위 협력 확대에 합의했다.
이날 빈 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최첨단 F-35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 약속을 받아냈다. 공군 현대화, 이란 위협 대응 등을 위한 숙원 사업이었지만 이스라엘의 반대와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 우려 등으로 반대에 부딪히다가 마침내 성사시킨 것이다.
그는 그 대가로 사우디의 대미 투자액을 6천억달러에서 1조달러 규모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 국교 정상화를 위한 '아브라함 협정' 가입 논의는 미루는 데 성공했다.
그는 '두 국가 해법'을 위한 길이 보장돼야 한다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허용해야 한다는 종전 입장은 재확인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파격 의전으로 빈 살만 왕세자를 맞았다. 그는 오·만찬을 포함, 오전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빈 살만 왕세자와 함께하며 국빈급 예우라는 평가가 나왔다.
2018년 10월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외교 무대에서 추방된 지 7년 만에 성대한 환영식이 열린 셈이다.
이를 두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아마도 현대 역사상 가장 놀라운 지정학적 복원'이라고 평가했다.
6년 전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국제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사우디의 실권자가 트럼프 대통령 2기 들어서는 자기 방식대로 미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메이건 오설리번 하버드대 벨퍼 센터 소장은 "우리는 지금 최고의 '복귀 방문'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오설리번 소장은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를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게 만들었다"며 "공격적인 기술 전략과 낮은 유가 유지에 도움이 되는 석유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양자 회담중인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맞이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NYT는 정치학자들과 중동 전문가들이 빈 살만 왕세자가 어떻게 이를 해냈는지 수년간 연구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사회 개혁과 정치적 잔혹함의 과제를 빈 살만 왕세자가 이를 해낸 게 기정사실은 아니라며, 그가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던 점이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카슈끄지 암살 사건 당시 취임 1년 차였던 트럼프 대통령은 사건의 배후가 누구인지 불분명하다며, 만약 빈 살만 왕세자가 책임이 있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암살 계획을 알고 있었으며, 그가 이를 승인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보고서가 유출됐다.
빈 살만 왕세자의 방미는 엄청난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그는 시간을 갖고 서서히 미국에 접촉했다.
2022년 강경했던 바이든 전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나누며 친밀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유가 문제 해결을 위한 방문이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인권 우선 가치를 후퇴시키고 구체적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빈 살만 왕세자의 위상만 세워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취임 후엔 그야말로 빈 살만 왕세자의 전성기였다.
이날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나서 그를 두둔한 게 대표적이다.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물은 방송 기자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불만을 표하며 카슈끄지는 논란의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마치 살인을 정당화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럴 수도 있다"고 발언했는데, 이는 빈 살만 왕세자가 미국을 떠난 후에도 오랫동안 논란으로 남을 말이라고 NYT는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