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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개혁으로 포장된 독재의 완성… ④사법부의 인사정치, 대법관 증원법 이면
  • 김영 기자
  • 등록 2025-11-19 18: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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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율화’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사법 장악
  • 사건은 줄지 않았고, 판결은 달라졌다
  • 사법의 독립이 인사의 기술로 바뀌는 순간
이재명정부가 추진하는 감사원 개편, 공무원 검증, 검찰 구조조정, 대법원 증원 등을 비롯한 일련의 제도개혁은 ‘정치적 중립 강화’라는 명분 아래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헌법에 보장된 권력 분립과 행정 견제 시스템의 재구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미일보>는 이를 ‘개혁이라는 이름의 국가 권력 재설계’로 규정하고, 감사원·공무원·검찰·사법부의 제도 변화를 축으로 삼은 권력 집중의 메커니즘과 그 민주주의적 함의를 검증한다. 〈편집자 주〉

권력이 법률과 헌법을 재해석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끝이 독재였다는 사실을 세계사는 말해 준다. [그래픽=한미일보]

[목차]

① 감사원의 눈을 멀게 한 개혁

② 충성의 행정국가=민주당 선거 조직화

③ 검찰의 칼을 빼앗은 자들

④ 사법부의 인사정치, 대법관 증원법의 이면

⑤ 개혁의 언어, 독재의 문법

 

“사건 폭증에 대응하려면 대법관을 늘릴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이 내세운 이번 증원안의 출발점은 효율성이다. 그러나 사건이 몰리는 곳은 대법원이 아니라 1·2심 법원이고, 재판 지연을 해결하려면 늘려야 할 것은 대법관이 아니라 판사다. ‘대법관 증원’이 추진되는 순간, 논쟁의 중심은 효율이 아니라 사법 권력의 재편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논의의 초점이 인사 문제가 아니라 ‘법률 해석 권한이 누구에게 집중되느냐’로 이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헌법상 최종심 기관이지만, 분쟁의 99%는 1·2심에서 처리된다. 대법원으로 올라오는 사건의 비중은 전체 사건의 1% 안팎이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사건 폭증’을 근거로 대법관 증원을 추진하고 있다. 사건이 많은 곳이 대법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법관을 늘리겠다는 발상은, 재판 효율과 무관한 다른 목적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불러온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지금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릴 경우, 향후 2~3년 내에 임기 만료 예정자까지 포함하면 이재명 정권이 임명할 수 있는 대법관은 20명이 넘게 된다. 여기에 대법원장을 포함하면 사실상 대법원이 정권의 손에 의해 재편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때부터 사법부는 ‘사건을 해결하는 기관’에서 ‘헌법과 법률을 해석하는 정치기관’으로 변하게 된다.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4명의 대법관으로 운영되지만, 인원이 늘어나면 소부 중심 체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다수결 이전에 사건 배당만으로 판결 방향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구조다. 이 구조는 단순한 효율성의 문제를 넘어 ‘해석 권력’의 재배치를 의미한다. 결국 법은 효율이 아니라 코드에 따라 배치된 인사의 손에 쥐어지게 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미 “사법부 코드 인사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헌법학자인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법관의 성향을 정부와 여당 입맛에 맞게 재구성하려는 위험한 신호”라며 “재판 효율을 명분으로 삼는다면 대법관을 1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효율이 아니라 권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논의의 핵심은 ‘판사 부족’이 아니라 ‘해석권 재편’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공방도 거세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법안을 “사법 개혁이 아니라 사법 장악안”이라고 규정하며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방탄하기 위한 제도 설계”라고 비판했다. 반면 백혜련 민주당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은 “현 정권이 22명을 임명하면 다음 정권도 동일하게 22명을 임명한다”며 “사법부 장악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대법관 증원안 통과라는 정치적 계산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임기·정년·대법원장 교체 등의 변수를 고려하면 백 의원이 주장하는 ‘중립적 구조’라는 논리 또한 여전히 검증이 필요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인사정책이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헌법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대법원의 해석이 바뀌면 법률도 달라지고, 법률이 달라지면 민주주의의 구조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해석이 바뀌고, 그다음 법이 바뀌고, 마지막에 민주주의가 바뀌는 것이다. 대법관 증원은 그 첫 단계이자 가장 정교한 단계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헌법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길목은 독재로 가는 길목과 정확히 겹친다.


몇몇 해외 사례가 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베네수엘라, 터키, 헝가리 모두 대법관·헌재 재편을 통해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 베네수엘라는 대법관 수를 늘린 뒤 정권 친화적 인사를 채워 반대 판결을 봉쇄했고, 터키는 ‘사법 개혁’을 명분으로 법관 선발·배치권을 장악했으며, 헝가리는 법원 정년을 낮춰 기존 판사를 대거 퇴출시킨 뒤 우호 인사로 교체했다. 


공통점은 단 하나다. 사법부를 공격하지 않고도 사법부를 점령하는 방식…, 인사의 기술로 독재를 실현한 것이다.


이재명 정권이 말하는 ‘사법 접근성 향상’과 ‘사건 효율화’는 그럴듯한 언어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것은 빠른 판결이 아니라 공정한 판결이며, 사법 개혁이 아니라 사법 독립이다. 사법부가 스스로의 인사 독립을 지키지 못하면 재판의 독립성 또한 보장될 수 없다. 


대법관이 많아진다고 사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임은 분산되고, 판결은 정치화되며, 법은 효율의 이름으로 충성의 논리에 종속된다.


권력은 개혁을 말하지만, 그 언어는 통제를 향한다. 베네수엘라·터키·헝가리도 그렇게 무너졌다. ⑤편에서는 그 말들이 어떻게 독재의 문법이 되는지를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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