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은 권력이 되고, 깃발은 충성의 기준이 된다. 행정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선거조직으로 변하게 된다. 한미일보 그래픽[목차]
① 감사원의 눈을 멀게 한 개혁
② 충성의 행정국가=민주당 선거조직화
③ 검찰의 칼을 빼앗은 자들
④ 사법부의 인사정치, 대법관 증원법 이면
⑤ 개혁의 언어, 독재의 문법
“공무원도 검증받아야 한다. 정부의 기조에 맞지 않는 행정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지난 9월 초 대통령비서실 인사혁신비서관이 내부 회의에서 했다는 발언이다. 이 발언 이후 정부는 ‘공직자 검증 시스템 구축’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지방 공무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직무 적합도 검증’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표면상은 비위와 비효율 방지이지만 실제로는 정권 기조 준수 여부를 기준으로 공무원을 선별·배제하는 사상검증 체계가 국가 행정에 도입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구조가 장기적으로 행정조직을 ‘정권의 선거조직’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공무원 검증 강화는 행정혁신을 위한 개혁처럼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 내부 문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단어는 ‘충성’, ‘정책 일체성’, ‘조직 통제’다.
공직윤리를 강화하겠다는 명분과 달리 정권 기조 수용 여부가 인사평가의 중심축이 되는 구조가 설계되고 있으며, 이는 공무원의 자유로운 직무 판단을 마비시키고 정권 편의를 기준으로 한 행정 집행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에 설치된 ‘정부혁신 TF’는 이러한 구조를 명확히 드러낸다. 정부는 이를 “내란 가담 공직자 조사”라고 설명하지만 실제 지침은 훨씬 광범위하며 인터뷰(심문)와 서면조사, 디지털 기기 확인 등 포괄적 조사를 포함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부 부처에서는 공무원에게 개인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하거나 포렌식 조사 가능성을 언급하는 내부 지시가 있었다는 언론보도도 있고 비협조 시 대기발령 또는 직위해제를 검토했다는 사례까지 나오면서 공직사회는 이를 사실상 강제수사로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본인 동의”라는 표현을 내세우지만 상명하복 구조에서 동의는 사실상 ‘거부할 수 없는 동의’에 가깝다.
이 과정은 헌법의 근간과 충돌한다. 헌법 제7조의 공무원 정치적 중립,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 제18조의 통신의 자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가 공무원의 휴대전화와 디지털 기록을 열람하겠다는 것은 단순히 비위를 점검하는 차원을 넘어 정권에 비협조적인 공무원을 가려내려는 사상검증에 가깝다.
정부 내부 문건에 포함된 ‘정무적 신뢰도’ 항목이 실제 인사에 반영되는 순간 공무원 조직은 국민이 아니라 정권의 이해와 재집권 전략을 기준으로 움직이는 선거조직으로 바뀌게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 검증체계가 정작 이재명 대통령 본인의 과거 발언과 정면 충돌한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 수사 국면에서 여러 차례 “권력이 휴대전화를 뺏어서는 안 된다”, “휴대전화 포렌식은 사생활 침해이자 권력 남용”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공무원의 개인 휴대전화와 디지털 기록을 검증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이를 정권 충성 여부 판단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자신에게는 권력의 침해를 경계하면서 공무원에게는 정권 충성의 증명을 요구하는 이 이중기준은 검증 시스템이 왜 ‘권력 보위형 장치’로 작동하는지를 증명한다.
이 현상은 한국 현대사의 권위주의 국면과도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유신체제의 ‘공직 충성심사’, 1980년대 군부정권의 ‘관권선거’, 1990년대 ‘지방정부의 선거개입 사례’ 등은 모두 공무원을 ‘정권의 선거 기계’로 활용했던 전례들이다.
그 공통점은 명확하다.
첫째,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이견을 가진 공무원을 걸러내기 위한 검증이 도입되고
둘째, 공무원의 표현과 사생활까지 조사 대상으로 확대되며
셋째, 행정조직 전체가 정권의 재집권 전략에 따라 움직이도록 설계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검증제도는 이 역사적 패턴을 기술과 데이터까지 동원해 재현하고 있다.
이 검증체계가 향하는 곳은 단순한 내부 통제가 아니다. 정권이 말하는 ‘정책 일체성’은 사실상 정권 재창출 일체성으로 치환되고 행정의 기능은 국민 전체가 아니라 민주당 정권의 방어·유지·승리를 위한 선거조직 기능으로 전환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정권 기조에 어긋나는 통계와 보고는 스스로 봉인되며 정책 선택과 집행은 선거 전략과 재집권 필요에 따라 조정된다. 행정은 공공성과 전문성을 잃고 ‘국정 운영’이 아닌 ‘정권 유지’를 위해 움직이는 거대한 조직으로 변질된다.
선거조직화의 징후는 이미 행정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민감한 정책 통계의 발표 시점이 조정되거나 정부 비판 보고서가 내부에서 무력화되는 사례, 선거와 직접 무관한 사안임에도 정권 기조에 맞추어 표현을 변경하거나 자료를 수정하는 압력이 감지된다는 공무원들의 내부 제보는 이 구조가 이미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무원들은 이제 “정책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정권에 유리한가 불리한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선거조직화의 시작이며 가장 위험한 징후다.
검증은 통제가 되고 통제는 침묵을 낳으며 침묵은 행정조직을 정권의 의사에 종속된 선거 조직 기계로 변모시킨다. 이재명 정부의 공무원 검증체계는 ‘행정 효율화’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민주주의적 행정을 붕괴시키고 국가를 ‘정권 보위형 선거조직’ 국가로 되돌리는 위험한 실험이다.
검증의 이름으로 시작된 통제는 언제나 자유의 후퇴로 끝났고 지금 대한민국은 그 길목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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