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5월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상문 역사학 박사·한국군사평론가협회 회장·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지난 5월 4일, 김문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이하 김문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이하 이재명)를 히틀러와 스탈린에 견주어서 공박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을 향해 '헌정질서 역행'이라고 비판한 이재명에게 “적반하장, 후안무치”라고 반박했다. 김문수는 이재명의 민주당이 또 다시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을 추진하려는 것에 대해선 “히틀러보다 더하고 김정은도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며 “김정은이 대법원장을 탄핵했다는 얘기를 들어봤나, 시진핑이 이런 일이 있었나, 스탈린도 이런 일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얘기를 듣고 보니 김문수가 직관력이 있어서 그랬는지 짧은 말 속에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말대로 이재명과 민주당이 "히틀러, 김정은, 스탈린, 시진핑의 나라보다 더 못한 나라로 끌고 가려고 한다"는 말이 맞다. 나는 김문수의 말에 100% 동의한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지난 5월 4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그런데 부연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김문수는 설전이다 보니 길게 말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다 대선에 바빠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보충 설명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미한 몸이지만 나라도 나서서 역사의 사실을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짬을 내기로 했다.
히틀러는 독일사회 뿐만 아니라 전 유럽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지만 그 수단과 방법에선 탄핵을 일삼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히틀러보다 더 하다는 김문수의 말은 큰 틀에서 보면 정당한 평가의 궤도에서 벗어난 게 아니다. 내가 그렇게 보는 근거는 조금 길지만 아래에 보충 설명을 해놓았다. 동시에 이재명은 스탈린과 히틀러와 비슷한 부분이 굉장히 많다는 점을 증명하겠다.
히틀러는 어릴 적 정육점 주인 유대인에게 자기 홀어머니가 강간 당하고 히틀러 자신도 그에게 자기 그림이 찢겨지고 무시당한 경험 때문이었는진 분명하지 않지만 평생 유태인을 증오하면서 자신을 거부한 부르주아지 사회에 대해서도 강한 적의를 품고 살았다. 히틀러는 합스부르크 왕조에 대해서도 반감을 표출했다. 합스부르크왕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 역사유물론에 의해 부르주아지들과 함께 반대해야 할 국가였지만 히틀러는 마르크주의자들의 노선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적이 됐으면서도 초기 이 때는 자신이 공산주의자인 것처럼 굴었다.
이재명은 정치적 이념의 좌표를 사회주의 이념에 두고 있어서 그런지 이론과 현실을 제대로 분간 못하는 정치적 백치 같은 모순된 언행이 자주 눈에 띈다. 이재명 역시 히틀러처럼 돈 있고 잘 사는 부자들에 대해서 강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가 지난 국정농단 상황시 맨 먼저 이재용 삼성 회장을 구속해야 한다고 외쳤고, 불법경영권 상속으로 얻은 이재용의 수익 10조원 가량을 전액 환수해야 한다고 수차례 촉구한 것이 이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또 8년 전 쯤 일이었던가? 이재명은 삼성을 겨냥해서도 “재벌해체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힘 주어 말한 바 있다. 그때는 그렇게 말하는 게 자신의 정치적 선명성, 즉 좌파진영 사람들에게 당차고 대범한 좌파 정치지도자라는 이미지를 형성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놓고 이번 대선에선 내가 언제 그런 적이 있느냐는 듯이 변신했다. 이재명은 이재용을 만난 자리에선 그에게 “삼성이 잘 살아야 삼성 투자자가 잘 산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재명은 이 같은 자신의 돌변을 두고 “유연한 사고의 실용주의”, “어려운 시기 기업 응원의 의미”라고 해명했지만 누가 봐도 갑자기 치르게 된 대선에서 보수 및 중도층의 표를 얻기 위해서 한 말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말이 달라지니 그가 또 어떻게 말을 바꿀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재명의 "실용주의"란 게 말이 좋아 실용주의이지 포장만 보고도 알맹이의 질을 바로 알아 차리는 안목 있는 분들에겐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번드르한 포장지로 포장된 불량품일 뿐이다. 국가의 미래는 생각지도 않는 “기본사회”, 허황된 궤변의 극치인 “호텔경제학”이 표상하듯이 이번에 그의 실용주의란 게 어떤 내용과 형식을 지니는지 식견 있는 유권자들은 정확히 알게 된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래도 히틀러는 하사관 생활을 했듯이 군대 경험이라도 했지만 이재명은 군대 근처에도 못 갔다. 어릴 때 소년공 시절 프레스에 짓눌려서 왼팔이 굽었다는 이유로 군에 가지 않았다. 이것도 내가 자세히 살펴본 바로는 말이 앞뒤가 안 맞는 게 너무 많다. 우연히 군에 들어간 히틀러는 연락병으로 근무하다가 1920년에 퇴역했다. 제대할 때까지 그는 뒤에서 독일노동자당을 지원하면서 저속한 표퓰리즘적 편견을 명료하게 표현하는 비범한 재능을 발휘한 게 먹혀 들어갔다. 우연한 계기였지만 이로부터 히틀러는 정치 선동가로서의 자각과 자신감을 갇기 시작했다. 그가 신념에 찬 거짓말을 하고 정직함을 가장하는 법을 터득한 것은 이 시기였다.
독일사회와 독일인들에 대한 히틀러의 불신은 경멸과 조화를 이루었다. 사람이란 공포, 탐욕, 권력욕, 질투에 의해 움직이고, 때로는 수단이나 작은 동기에 의해서도 움직인다는 점을 간파한 히틀러는 마키아벨리의 고전적인 정치관을 알았던지 정치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간의 그런 약점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아는 기술이라고 결론 짓기도 했다.
이재명은 지난 대선시 대머리 '환자'들에게 알고 보니 어이 없는 선심성 정책을 선전했다가 유권자들의 반발로 크게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자신의 “10대 공약”에서 뺐다가 다시 집어넣는, 그래서 즉흥적인 발상이거나, 아니면 언제 또 바뀔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믿음이 가지 않는 “기본사회”와 관련된 퍼주기 등 포퓰리즘적 정책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이것을 보면 참모들이 한 것인지는 분명하게 알 수 없지만, 이재명도 스탈린처럼 국가재정을 망치는 일이지만 표현을 명료하게 어필시키는 재능은 조금 있어 보인다.
1920년대 후반부터 히틀러는 뮌헨에서 국가사회주의의 독일노동당을 나치스로 개명하고 SA로 불린 “돌격대”(Sturmabteilung)라는 암살단을 모집하여 운영했다. 목적은 도시의 거리마다 테러, 협박, 폭력을 퍼뜨려서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려고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조직의 회의가 열릴 때마다 대원들은 히틀러의 경호원처럼 행동했고, 히틀러는 회의에서 자신의 말에 반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지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폭력을 행사한 게 사실이다. 히틀러는 배후에선 잔인한 갱들이 거리를 지배하도록 획책하면서도 겉으론 바람직한 사회를 꿈꾸게 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뭔가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 들거나 한국사회에서도 미래에 일어날 수 있겠다는 직관이 들지 않는가? 이재명도 성남시장 재직 시절 자신의 정책에 반대한 시민들에게 삿대질에 폭언을 퍼부은 바 있다. 또 그가 성남 지역 국제파 조폭 두목과 같이 찍은 사진이 나돌아 다니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의 형사 사건 관련자들이 사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의문사를 한 게 지금까지 최소 6명 이상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뒤를 떠받쳐주는 세력으로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교수, 학자, 언론인, 정치인들이지만 배후에서 음성적으로 모르게 관련돼 있는 조직은 경기 동부연합, 성남의 국제마피아단, 대북 800만 달러 송금사건과 관련된 쌍방울의 김성태가 있었던 전주의 조폭(나이트파)이라는 사실은 언론에 보도가 될 만큼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재명에게는 당근과 채찍 두 가지 수단이 모두 있어서 그의 돈을 먹은 법관들, 정치인들, 언론인들이 돈을 먹고 배신하게 되면 본인이 어떻게 될지 잘 아는 것이다. 즉 히틀러처럼 이재명도 인간이란 존재는 공포, 탐욕, 권력욕, 질투에 의해 움직인다는 걸 동물적 직감으로 알고선 탐욕과 공포를 적절히 활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히틀러는 프로파겐더와 테러를 결합시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익히 알고 써먹었듯이 이재명도 이에 대해 공부를 했는진 알 수 없지만 이 비밀스런 '최종 병기'를 생래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히틀러는 대중을 휘어잡는 묘한 힘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대중이 어리석어서 현란한 말의 성찬 맛을 보고선 빠져나오지 못해 말려든 결과이긴 하지만! 아무튼 히틀러는 하층민들에게 호소력 있는 일종의 약자 코스프레, 서민적인 진지함으로 뮌헨 사교계의 살롱에 드나들면서 여성들에게 가면을 쓴 매력이 눈에 띄게 만들어 자신을 후원하게 만들었다. 그는 또 자신의 모든 정력을 독일의 선을 위해 헌신하는 은자나 금욕주의자로 묘사하여 여성들의 지지 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그런 이미지는 모두 거짓과 허구였음은 물론이다.
이재명도 대중을 자기에게 열광하도록 만드는 묘한 재주가 있다. 물론 그것 역시 대중의 어리석음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집단적 환각현상일 뿐이지만 말이다. 또한 마약을 흡입한 것처럼 대중이 선동과 포장기술에서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한 것이긴 하지만! 이재명은 거짓말을 섞어가면서 자신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죽도록 고생을 하면서 성공신화를 이룩했다거나 정의감을 가진 정직한 사람이라고 포장하고 그런 사람인 것처럼 가장하는 능력도 뛰어나 보인다. 물론 그런 것들은 내공이 단단한 사람을 만나면 단칼에 허물어지기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불만자들이나 살기 어려운 사람들, 지난 정권의 실정에 실망하거나 분노하는 이들은 깊은 수렁이 감추어진 것도 모르고 이재명의 말에서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도 그런 나라 망치는 무지랭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히틀러가 1930년대 초반 대중의 감정을 지배했듯이 이재명도 2010~20년대 일부 어리석은 한국 민중의 감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히틀러가 힘과 성공이 결합하면 커다란 매력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잘 알고 활용했듯이 이재명 역시 그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불안하고 희망이 없는 사회상황이 정치 지도자의 무능과 결부되면 비상식이 상식을 구축하고, 광기가 이성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시대적 배경에서 생성되는 공통분모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4년이 지나면서도 독일은 패전국으로서 승전국에 갚아야 할 전쟁배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어 무기력한 상태에서 혼란스럽고 분열 상황에 처해 있었다. 1달러에 1300억 마르크로 치솟은 엄청난 인플레이션, 기업과 가계도산, 실직자속출, 경제붕괴, 식량부족에 민중들은 희망과 낙이 없었다. 히틀러는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자신의 웅변으로 민중의 마음을 훔쳐서 독일국민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새로 나타난 정치지도자로 열광하게 만들었다.
1920~30년대 독일 상황은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부분적으로 겹치는 게 있어 다른 면도 있고 같은 양상도 있다. 1930년대 세계적인 불황이 독일에도 덮쳐 실업자가 600만 명을 넘어섰고 수많은 독일인들이 견고했던 삶의 터전이 허망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 히틀러는 고통을 받으면서 암담한 처지에 놓여 있던 독일 민중의 마음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의 환상적인 민중 선동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열망한 민중들은 가공스런 공포와 히틀러의 터무니없는 비전에 속아 넘어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열광했다. 결국 민중들은 선거에서 히틀러와 나치당을 잘못 선택하는 중대한 우를 범했다. 1933년 여름 경 히틀러는 독일 정부의 완전한 지배자가 됨으로써 독일 민중을 파국의 길로 몰고 갔다.
이 부분 역시 공교롭게도 한국의 현 상황과 일부가 포개진다. 한국에도 실정의 연속으로 끝나는 무능한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민중들의 실망감이 쌓여 있다. 겉으로는 한국이 경제력 세계 10위 안팍 권, 군사력 세계 5~6위권에 오르내리는 중견국가이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적체된 문제들(경제침체, 취업난, 청년 실업 고공행진, 성장동력 상실, 소득 감소,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인구감소, 세대간 및 성별간 갈등, 골이 깊어가는 상호 불신 등등)에 직면한 민중들의 심리를 이재명은 근거 박약한 장밋빛 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히틀러가 선거 유세에서 자신이 독일 국민을 지상낙원으로 이끌 메시아처럼 묘사했듯이 이재명도 자신을 한국의 침체 국면을 타개해낼 메시아인 것처럼 포장하고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그때부터 “진짜 대한민국”이라고 호도하면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을 이룬 지난 80년의 우리 현대사를 모두 단절시켜 버렸다. 정말이지 역사에 기록될 폭거다!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하기 위해선 피눈물도 없는 냉혈적 인간성이라는 것도 히틀러와 이재명이 공유하는 부분이다. 히틀러가 전쟁 전 포로수용소를 만들어서 독일 체제의 반대자들을 예방 차원에서 구금하였다. 전쟁 중에는 수많은 유태인들과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수용소로 이동시켰고, 이들은 생체 실험 대상이 되기도 했고, 아사자와 타살자, 폴란드 아우슈비츠(Auschwitz)의 대형 가스실에서 죽은 질식자 등 사망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런데 히틀러는 이와 같은 희생자들의 고통에 대해서 동정은커녕 눈곱만큼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유태인은 단 1명도 남김없이 다 죽여 없애서 씨를 말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도 성남시장 재직시절 자신에게 고분 고분하지 않고 비판적인 시민운동가를 시장 직권으로 병원에 입원시켰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친형 이재선도 그렇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기는커녕 당당하게 시장으로서 직분을 행사한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동생의 비밀을 하나도 빠짐 없이 알고 있던 이재선이 왜 행정 입원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선 별도의 주제로 밝힐 게 있음!)
김건희 특검촉구 제3차 국민행동의 날과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유죄 판결에 반발해서 일으킨 비상 행동에서 이재명과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제각기 “이재명은 죽지 않습니다!”, 국민이 지켜줄 것이라며 “저들이 아무리 이 대표의 정치생명을 끊으려 해도 이 대표는 결코 죽지 않는다”고 외친 바 있다.
그렇다! 국민들이 죽어 나갔으면 나갔지 이재명 자기는 죽지 않았다. 이 문제 역시 인간의 양심과 깊은 상관성이 있다. 이는 자기가 알고 지내던, 혹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6명이나 죽어 나가도 일체 송구스럽다거나, 미안하다거나, 유감이다라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냉혈한! 자기의 목적 달성에 장애가 된다 싶은 것에 대해선 모두 안면 몰수해버리는 피도, 눈물도 없는 매정한 인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성격도 히틀러와 이재명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한 면이다. 군인으로 있으면서, 또 마을 카페를 어슬렁거리던 간판쟁이에서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식 음모를 통해 정부 공직자가 된 히틀러가 양심이 없었듯이 이재명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 듯하는 게 없어 보인다. 스스로 자신에 대해 심리적 자제도 하지 않았기에 손에 쥐어진 권력을 이용함에 전혀 거리낌 없어 보인다.
예컨대 1934년 히틀러는 독일 군대와 SA의 숙청으로 연결된 일련의 사건을 일으켜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었다. 사망자 수가 최소 500명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 그들을 처형하기 전에 재판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자 히틀러는 “나는 독일 국민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다. 내가 바로 최고의 정의다. 그리고 장래 국가에 해가 되는 일을 시도한다면 그의 운명은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1934년 8월 19일, 4,600만 명의 유권자들이 독일 총통을 뽑는 선거에서 히틀러가 거의 90%의 표를 휩쓸어 버렸다.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지역순회 첫 경선에서 이재명도 비슷한 수치의 득표를 했다. 출마한 세 후보가 각기 ‘90대 5대 5’의 표를 얻은 득표율로 얻어 이재명이 누적 89.56%로 90%에 가까운 득표율을 거둬 압승한 것이다. 9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보인다는 건 내가 예전에 지적한 바 있지만 독일이 그로 인해 파쇼 국가로 나아갔듯이 한국도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다.
여성과의 추문이 없지 않은 것도 공통적이다. 히틀러는 37세 전후 자신이 머물던 베르테스가덴(Bertesgaden) 여관 주인의 딸로 16세에 불과한 마리아 라이터(Maria Reiter)를 시작으로 많은 10대 소녀들과 성관계를 맺었다.
이 가운데는 16세의 겔리 라우발(Gelli Raubal)이라는 소녀도 있었는데 그녀는 아돌프 히틀러의 이복 누이 안젤라(Angela)의 딸이었다. 즉 히틀러는 자신의 미성년 질녀를 정부로 삼아서 성노리개로 데리고 놀았던 것이다. 나중에 히틀러의 정부들 중 여러 사람이 사망하는데 겔리는 비명횡사한 첫 번째 여인이었다.
히틀러의 또 다른 정부였던 여배우 레나트 뮬러(Lennart Müller)는 1937년 창밖으로 몸을 던져 죽었고, 히틀러가 한때나마 사랑했던, 그래서 1945년 4월 29일 이미 폐허가 된 베를린의 총통 관저 지하 은신처에서 결혼식을 올린 후 그 다음날 함께 동반 자살한 에바 브라운(Eva Braun)은 히틀러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이재명에겐 지금까지 자신의 많은 사건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자살도 하고 의문사한 경우는 많지만 여성이 그 때문에 죽은 일은 없었다. 그러나 한 여배우와의 스캔들은 이미 한국사회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자신이 당사자라고 밝힌 모 여배우의 분노 섞인 하소연 등을 들어보면 이재명은 자신이 총각이라고 속이고서 세간의 눈을 피해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지속한 바 있다고 한다. 이재명은 극구 부인하지만, 또 더 이상 입밖에 올리지도 않지만 이 스캔들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가 돼 버렸다. 불같은 그의 성격에 만약 그 여배우의 말이 정말 사실이 아닌 날조한 것이라면 가만 놔뒀을까?

그러면 이재명은 스탈린과는 어떤 공통성이 있을까?
지난 세기 한때 러시아인들에게는 스탈린이 히틀러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구했고 미국인들이 러시아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위대한 영도자(Великий Лиде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의 역대 짜르가 통치한 4세기 동안 황제들이 죽인 것보다 더 많은 수백 만 명의 자국민들을 죽인 살인자라는 또 다른 명성을 갖고 있다. 이 점에서 스탈린은 히틀러와 비교 되는 막상막하의 살인자다. 이재명은 희대의 살인자인 이 두 사람과 달리 살인 혐의는 없다. 교사범 혐의는 있을진 몰라도!
그러나 미래의 일은 모르는 일이다. 지난 인류 역사를 보면 성격이 유순하며, 우유부단하고 물렁한 자가 갑자기 상황에 따라서 살인자, 범죄자로 돌변하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이재명은 유순하고 우유부단하기 보다 대단히 과단성이 있어 보이는 성격이다.
스탈린도 그렇듯이 이재명도 가정환경이 불우한 집에서 자란 것이 비슷하다. 1879년 12월 21일 그루지아 카프카스 지역의 소도시 고리다는 곳에서 탄생한 '요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주가쉬빌리'(스탈린의 본명, Ио́сиф Виссарио́нович Ста́лин)는 구두 수선공의 부친 슬하에 난 네 명의 아이들 중에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었다.
스탈린은 아내와 아들을 마구 구타한 주정뱅이 부친의 학대를 받으면서 자랐고, 그가 열 한 살이 되었을 때 부친은 어떤 이와 싸움 끝에 살해당했다. 그 뒤 스탈린은 삯바느질과 세탁일로 아들을 키운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이 점도 히틀러와 같았다. 어린 시절, 스탈린은 천연두를 앓아서 얼굴에 마마 자국이 있었고 패혈증으로 왼팔을 쓰는 게 불편했다.
이재명도 스탈린처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부모와 가정, 자신의 성장과정, 검정고시 준비 등의 학업에 관해선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내가 지금까지 그가 자신이 직접 썼다는 회고록이나 다른 사람이 쓴 이재명 관련 책은 거의 모두 다 읽어봤는데, 그가 밝힌 가족사가 워낙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이 달라서 감춰진 게 많을 것이라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자신이 얘기한 대로 1964년에 태어났어도 몇월 며칠에 태어났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태어난 고향이 봉화에 가까운 안동군 도안면 예촌리 지통마을이라는 산골짜기 촌락이라는 건 알 수 있지만 이재명 부친과 시골에서 성남으로 온 이유에 대해선 자세하게 알 수가 없다. 이재명이 자기 부친의 직업을 말한 것만 해도 청구대학을 나와서 했다는 경찰, 공무원, 탄광 노무자 등등 대여섯 가지가 넘어서 부친이 무엇을 했는지는 지금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그의 부친은 초기에 나온 이재명의 책들과 나중에 낸 책에서 다른 성격의 사람으로 나온다. 부친이 굉장히 돈을 아까워 한 자린고비 같아서 아들이 공부하는 것까지도 극히 싫어했다고 부정적으로 서술했다가 나중에 도지사를 하면서 대통령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 뒤 새로 낸 자서전에서는 부친이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서 이재명에게 중고 영어 테이프까지 사준 자상한 아버지로 묘사 된다.
그리고 이재명이 성남에서 보낸 가정생활과 가족관계, 소년공 시절 공장에서 일하다가 다쳐서 왼팔이 불구가 되었다는 것, 검정고시로 중앙대학 법학과에 입학한 과정에 대해서도 여전히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이 쓴 여러 책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얘기를 한 부분이 많아서 의문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가 소개한 사법고시 패스와 변호사 시절, 성남시장과 도지사 시절 도정 활동 등등에 관해서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어떤 것이 부풀어진 것인지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아무튼 생장 과정에서 이재명은 스탈린과 비슷한 모습을 많이 보이지만 일치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말했지만 스탈린은 왼쪽 팔을 다쳐서 쓰기가 불편했다고 했지만 이재명은 처음엔 완전히 왼팔을 못 써게 돼 군대도 못 갔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그가 왼손으로 넥타이도 매고 골프도 치는 사진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닌 바 있다. 이 역시 정확한 진상을 알 수가 없다.
스탈린도 히틀러처럼 자신의 능력을 과대하게 포장하고 러시아 인민들에게 선전했다. 1917년 10월 볼셰비끼혁명(Большевистская революция) 성공 후 스탈린은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의 새 정부 활동의 중심부에 들어갔다. 그것은 그 이전까지 그가 짜르체제의 러시아 당국에 저항하다가 감옥에 투옥되거나 시베리아의 황무지로 유배되는 등 상당한 고생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이었던 셈이다. 그때부터 그는 “강철의 사나이”(Еловек из стали)라는 의미의 “스탈린”(Сталин)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10월혁명'의 주요 인물로 묘사하기도 했다. 스탈린은 볼셰비끼혁명의 최고 지도자 레닌(Влади́мир Ле́нин)의 권위와 명성을 이용하고자 그가 쿤트세보(Кунцево)에 있던 시골의 별장 벽에 레닌과 함께 기대고 있는 것처럼 사진을 합성해서 조작하기도 했다.
1904년 6월, 스탈린은 순진하고 헌신적인 시골 농촌 처녀 예카테리나 스바니제(Екатерина Сванидзе)와 결혼했는데 3년 후 그녀는 발진티푸스로 아들 야코프(Яков)를 남겨놓고 죽었다. 모친의 조기 사망, 아들에게 애정을 보이지 않은 아버지 등의 가정환경에 만족하지 못한 야코프는 나중에 자살을 기도했는데, 스탈린은 자기 아들의 자살 기도가 실패한 것을 조롱까지 한 바 있다. 히틀러처럼 스탈린에게서도 냉혈한의 모습이 보인다.
스탈린은 현대 의학적 용어로 이야기하면 사이코패스적인 기질 혹은 정신병이 있었던 것 같다. 스탈린을 평가한 역사가 미란다 트위스트(Miranda Twist)가 얘기했듯이 그는 출세 지향적 행동, 끈기 있는 개성과 타협하면서 불안해하는 성격에 감정적이고 허영심이 강하며, 냉소적이고 앙심을 깊이 품는 기질이었다고 한다.
반면, 스탈린은 당시 최고의 권위와 명망 높은 지도자인 레닌을 모방하여 당원과 인민들 앞에서는 수수한 옷차림에 겸손한 태도를 보이면서 개인적인 금욕주의, 침착함, 능력과 부성애 등의 자질이 있는 인물인 듯이 연출해보였다. 스탈린이 권력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늘 당원들에게 자기를 다수의 의지를 구현하는 인물로 인식시켰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탈린은 1937년까지 매우 잔인한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처단했으며, 또 3,000만 명의 사람들을 기아로 고통 받게 만들었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사태까지 발생했다. 1930년대 참혹한 테러는 스탈린이 자기 권력을 지키고 정적을 없애는 주된 수단이었다. 2,5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강제로 퇴거당하고 3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해당했다. 군대에 대해서도 숙청으로 4만 여 명의 장교들을 체포하여 그중에 1만 5,000명을 총살시켰고, 나머지는 수용소로 보내 그곳에서 죽게 만들었다.
또한 그의 정적이었던 뜨로쯔끼(Лев Тро́цкий)가 스탈린의 살해 위협을 피해 1928년에 알마아타를 거쳐 도망간 멕시코에까지 살수를 보내 추적해서 1940년 8월 그를 얼음 깨는 송곳으로 무참히 살해하게 만들었다. (항간엔 도끼였다는 말이 유포된 바 있지만 송곳이었음!)
이재명도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있다는 것은 이미 국내 대중들에게 많이 인식되고 있다. 그가 썼거나, 여타 작가가 썼거나 이재명 관련 책을 거의 다 보고 이재명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를 주제로 대중 강연을 네 차례나 하면서 나도 일찍부터 그렇게 수긍한 바 있다. 심리학이나 정신 병리학 전공 전문가들이 연구 해놓은 개념에 따르면, 그는 사이코패스 정신질환자가 맞다. 사이코패스는 일종의 심리적 상태와 행위의 소유자로 정신의학에서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주요 특징으로는 반사회적 행동, 자기 도취의 나르시시즘, 겉으로 드러나는 피상적인 매력, 충동성, 냉담하고 감정적이지 않은 성격, 죄책감과 타자에 대한 공감 부족 성향의 언행을 보인다. 거짓말이나 범행을 저지르고도 그에 대해 미안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도 사이코패스의 주요 특징이다.
반사회적인 행동이란 보통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아닌 특이한 행동 양식과 의미가 상통하고 그런 언행이 사회와 그 구성원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가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보여준 갖가지 언행들, 예컨대 거짓말, 말바꾸기, 자기가 한 언행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딱 잡아떼는 오리발, 책임전가, 타인에 대한 내로남불, 적반하장식 언어 공격 등을 반추해보면 짚히는 게 있을 것이다.
예컨대 경기도지사 당선 후 모 공영방송의 인터뷰에서 이재명은 신임 경기도지사로서 향후 도정을 펼치면서 “자신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놓고 방송 진행자가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더니 바로 방금 전에 말해놓고도 자기는 “책임지겠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완전 부인했다. 그리고 오히려 방송 진행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냐고 되받아쳤다. 또한 대장동 개발사업을 처음에는 자신이 설계한 자신의 최대 치적이라고 자랑하다가 사실의 일부가 드러나서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즉각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상대 당이 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 이런 사례들이 워낙 많아서 일일이 밝히는 것이 자뭇 짜증 나고 번거로울 지경이다.
한편,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랬던 것처럼 이재명에게도 목적 달성을 위해 가식이긴 하지만 연출된 매력이 없지 않아서 수많은 지지자들이 그의 본 얼굴을 모른 채 그를 추종하고 있다. 『굿바이! 이재명』이라는 책에도 자세하게 소개돼 있지만 자기 친형과 형수에게 한 극한의 쌍말과 욕설을 봤을 때, 또 문재인 대통령이 권력을 약하게 쓴 것을 안 좋게 이야기하면서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봤을 때 잔인성과 충동성도 간취 된다.
모 여배우와의 '공짜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는 상대가 상당히 로맨틱하고 정감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을 보였다가도 그것이 문제가 되었을 때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보호심리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잘라서 부정하는 냉담성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침착성 내지 단호한 성격도 보여줬다.
스탈린의 성격 중 잔인한 면이 있었듯이 이재명도 확실히 잔인한 면이 있어 보인다. 이 말은 이재명이 스탈린처럼 살인마라는 소리는 아니다. 행위의 결과로서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 두 사람의 성정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도 성격에서 잔인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 말은 이재명이 권력은 잔인하게 써야 한다고 한 자신의 말에 근거해서 내리는 판단이다. 이 밖에도 히틀러와 비교하면서 얘기한 바 있듯이 이재명이 정신이 멀쩡한 자기 친형을 정신병자라고 몰아붙여 병원에 입원시킨 것이나 자신이 관련된 사건 관련자들이 여섯 명이나 죽었는데도 눈물을 보이기는 커녕 조금도 미안해지 않는 사실도 이재명의 성격이 잔인한 게 아니냐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살인행위는 우발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행위자의 성격이 잔인한 면이 있어야 그럴 가능성이 높다. 수 천만 명이 기아와 박해로 죽어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마오쩌뚱(毛澤東), 투옥, 처형, 강제노동 등을 통해 약 200만 명을 살해한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정권의 지도자 폴 포트(Pol Pot), 우간다 내전과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각기 대규모 학살을 주도한 이드 아민(Ide Amin),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처럼 특히나 집단 학살일 경우 잔인한 성격이 아니라면 그렇게 저지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스탈린 역시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재명도 동일한 성향의 인물로 보인다. 1921년 러시아 내전이 끝나갈 무렵 스탈린은 공업과 토지 등 경제정책의 국유화를 주도했고, 정치적으로는 일당 통치체제 수립,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거칠고 무자비한 탄압, 표현 및 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 폐지, 중앙 집권화된 러시아 공산당의 관료주의 강화 등을 초래시켰다.
지금까지 길게 예시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김문수는 이재명이 히틀러와 스탈린을 닮은 점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아주 짧게 간명하게 얘기한 셈이다. 내가 다시 바쁜 김문수를 대신해서 한 마디 더 보태자면, 내가 보기에 이재명은 세 가지 인성으로 구성돼 있을 것으로 보이는, 동서양 역사를 통털어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인간형의 인물이다. 내면에 히틀러와 스탈린과 이재명 자신의 성격이 각기 3분의 1씩 차지하는 합성이 존재하는 인물이랄까···.
서상문 역사학 박사·한국군사평론가협회 회장·환동해미래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