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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표 예산 쟁점②] ‘AI 예산’ 1조 시대… 혁신인가, ‘AI 워싱’인가
  • 김영 기자
  • 등록 2025-12-02 12: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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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혁신펀드·공공AX·부처별 AI 사업, 목적·기능 중복 논란
  • “AI라는 간판만 바꾸면 예산이 늘어난다”… 구조적 검증 필요
  • ‘AI 투자’ 보다 ‘AI 라벨링’이 더 빨리 늘어나는 기현상

AI 예산 1조 시대지만, 실제 투자는 데이터센터·GPU 인프라보다 행정 라벨링에 집중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한미일보]

이재명 정부가 2026년 예산안에 AI혁신펀드, 공공AX(행정 AI 전환), 부처별 AI 사업까지 모두 합쳐 1조원 규모의 ‘AI 패키지’를 일괄 배치하면서 “AI 시대 국가전략 투자”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국회 예산 심사에서는 “AI라는 간판을 붙여 예산을 부풀리고 있다”는 정반대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핵심 쟁점은 중복성, 성과지표, 그리고 부처 간 조정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로 압축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구호’가 아니라 AI 예산이 실제 혁신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구조적 검증이다.

 

정부가 내세운 첫 번째 항목인 AI혁신펀드는 1000억원 규모로 조성돼 AI 스타트업과 신기술 기업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투자 대상과 목적은 이미 국민성장펀드가 공언한 ‘AI·반도체·바이오’ 분야와 거의 동일해 중복 논란이 불가피하다. 

 

야당은 정책금융기관과의 역할 충돌, 회수 전략 부재, 리스크 관리 기준 미설정 등을 지적하며 “국민성장펀드의 축소판” 또는 “AI 버전 정책펀드”에 가깝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혁신을 위한 신규 설계가 아니라, 기존 펀드의 간판 분화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행정 시스템을 AI 기반으로 전환하는 공공AX 예산도 1000억원으로 편성됐지만, 정작 사업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정량 지표는 어디에도 없다. 행정 생산성 향상은 업무시간 단축이나 민원 처리 속도 개선, 인력 재배치 효과 등으로 측정할 수 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 

 

부처별로 이미 존재하는 디지털 전환 예산과 중복된다는 지적도 거세다. 행안부, 기재부, 과기부, 복지부 등 모든 부처가 DX 사업을 운영하는 상황에서 공공AX가 기존 사업과 어떻게 구분되는지에 대한 설계도는 제시되지 않았다. 

 

민간 클라우드·데이터 표준과의 충돌 역시 해결되지 않은 쟁점이다. 공공AX는 “무엇을 혁신하는지”보다 “무엇과 충돌하는지”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산만 책정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부처별 AI 사업의 급증도 ‘혁신 시너지’라기보다 ‘간판 변경’으로 보이는 사례가 많다. 

 

‘AI’라는 명칭이 붙은 사업만 20개를 넘기지만, 대부분은 기존 데이터 정비, R&D 과제, 공공시스템 개선 사업을 AI 항목으로 재포장한 형태다. 

 

공공데이터베이스의 단순 업그레이드가 ‘AI 분석 고도화’로 바뀌고, 민원 챗봇 개선 사업이 ‘AI 기반 스마트 민원 시스템’으로 확장되며, 기존 기술개발 과제가 ‘AI 응용’으로 편입되는 식이다. 

 

형식은 AI지만 내용은 동일한 사업이라는 점에서 국회 예결소위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AI 워싱(AI Washing)’이라 규정했다.

 

핵심 문제는 AI 예산의 증가 속도보다 AI 라벨링이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성장펀드와 AI혁신펀드, 부처별 AI 사업은 투자 대상이 뒤섞여 중복을 피하기 어렵고, AI위원회·과기부·행안부·산업부가 각자 독립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조정 체계는 사실상 공백 상태다. 성과 검증 체계가 부재한 탓에 예산 투입만 존재하고 정책 효과를 측정할 구조가 없다. 

 

정작 국가의 AI 경쟁력을 좌우하는 계산능력(Compute), 모델 개발 역량, 초고성능 컴퓨팅(HPC) 인프라는 OECD 평균 수준에 머물고 있어 기술 선도보다 예산 확장이 먼저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이처럼 AI 예산이 빠르게 증가하는 배경에는 “AI는 미래 경쟁력”이라는 강력한 문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문장은 사실이지만, 검증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예산은 구조가 아니라 구호를 따라가게 된다. 

 

정부가 설정한 다양한 AI 사업이 정책적 필요보다 정치적 정당성의 논리에 따라 확장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미일보 분석처럼 지금 한국의 문제는 AI 구호는 넘치지만 AI 전략은 부재한 구조에 가깝다.

 

결국 AI 예산의 위험은 ‘부족함’이 아니라 ‘무분별함’이다. 

 

한국이 AI 분야에서 확실한 전환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혁신이 아니라 중복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성장펀드와 AI혁신펀드의 경계 설정, 공공AX의 성과 지표 확립, 부처별 R&D·데이터 사업의 재정렬, 그리고 전담 조정 기구의 명확한 설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한국의 AI 예산은 “AI라는 이름만 붙이면 예산이 증가하는 구조”로 굳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어떤 구조로, 누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쓰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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