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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 한미시론] 무안공항참사 뒷배 밝혀야
  • 임요희 기자
  • 등록 2026-01-18 14: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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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 시 시멘트 둔덕에 부딪혀 179명의 사상자를 낸 무한공항참사 현장. [사진=KBS]

사고는 날 수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났을 때 손실을 얼마만큼 줄일 수 있느냐는 그 나라의 역량에 달렸다. 그 역량은 정부 관료의 양심과 관련이 깊다. 양심과 역량의 역학관계를 가장 잘 드러낸 사건이 무한공항참사다. 

 

2024년 12월29일, 전라남도 무안국제공항에서 항공기가 폭발해 179명이 사망했다. 생존자는 단 두 명. 참사 당시 유가족들은 정부로부터 정확한 상황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언론 보도에만 의존해야 했다. 

 

사건의 핵심은 ‘사망 원인’이다


국회 주도권을 쥐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은 ‘조종사’와 ‘새 떼’를 주범으로 몰며 항공사에 책임을 떠넘겼고 언론은 조종사가 새 떼 충돌로 망가진 오른쪽 엔진이 아닌, 멀쩡한 왼쪽 엔진을 실수로 꺼 버려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등의 기사를 내보냈다. 모 방송사는 수고스럽게 미국까지 날아가 타 공항 새 떼 관리의 모범적 예까지 취재해 왔다. 

 

사건의 핵심은 새 떼도, 항공기 결함도, 조종사 실수도 아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2025년 3월 한국전산구조공학회에 용역 조사를 공식 의뢰한 결과가 지난 1월8일 공개됐다. 이 결과는 유족들의 요구에도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것으로 SBS가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아니 사실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무안공항에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다면 탑승자 전원이 생존했을 것.”

 무한공항참사의 결정적 원인이 된 시멘트 둔덕. [사진=연합뉴스]

이 한 줄의 결과를 얻기 위해 학회는 슈퍼컴퓨터를 활용, 충돌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시나리오별 충격량과 중상자 수를 산출해야 했다. 그 결과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을 경우 사고기는 동체 착륙 후 770m를 활주하다가 멈췄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꼭 분석해야만 아나)

 

불과 1km도 안 되는 거리를 더 달리지 못해 179명의 목숨이 공기 중으로 사라진 것이다.

 

또 로컬라이저가 콘크리트가 아닌 부서지기 쉬운 구조로 설치돼 있었을 경우에도 중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과치가 있었다. (상식적인 답 아닌가)

 

카이탁공항 사고에서는 다 살았다


무한공항과 비교되는 공항이 카이탁공항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이었던 홍콩 카이탁공항(1925~1998)은 주변에 빽빽하게 자리한 고층빌딩과 병풍처럼 둘러싼 산, 사방의 바다 때문에 착륙이 어렵기로 악명 높았다. 

 

조종사는 곡예비행에 가까운 조종기술을 뽐내야 했는데 활주로에 착륙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근 란터우섬 부근에서 북동쪽으로 기수를 돌리며 고도를 서서히 낮추어야 했다. 

 

이때부터 비행기는 선박과 콘테이너가 빽빽하게 자리한 빅토리아하버를 지나 인구밀도가 높기로 악명 높은 구룡반도 서부 지역에 들어서게 된다. 

 

조종사는 비행기를 활주로와 일직선으로 맞추어야 하는데 구룡자이공원에 설치된 유도표지를 기준으로 삼아 활주로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3.7km 거리에서 47° 각도로 우회전하며 서서히 진입하게 된다. 

 

이때의 비행기 고도는 1000피트(300m) 미만이어야 한다는 매뉴얼이 있다. 조종사들은 보통 650피트(200m) 상공에서 우회전한 후, 140피트(43m) 상공에서 비행기를 활주로와 일직선으로 맞추어 진입했다.

 

이 장면은 비행기가 빌딩 사이를 지나는 유명한 사진으로 남아 있으며 영화 ‘구룡성채’에도 등장한다. 동체의 세세한 구조와 부속품까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비행기가 가까워져 펄쩍 뛰면 올라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1998년 7월5일 카이탁공항에 들어서는 마지막 비행기를 보기 위해 홍콩 시민들이 모여든 모습. [사진=사우스모닝포스트] 

늘 불안불안했던 착륙이었는데 결국 사고가 발생한다. 1993년 보잉 747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바다로 추락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비행기가 바다에 처박혔음에도 탑승자 296명 전원이 생존했다는 사실이다. 

 

카이탁공항은 여러 면에서 무안공항보다 여건이 안 좋았다. 무안공항은 뻘밭에 있었지만 카이탁공항은 고층빌딩이 빽빽하게 서 있는 시내 한복판에 자리해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큰 사고에서 전원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콘크리트 둔덕이 없었다는 것. 영국 통치를 받던 홍콩 정부는 양심적이었고 정당은 공정했다.

 

콘크리트 둔덕, 1999년 최초 설계 때부터 존재


무안국제공항은 김대중정부 시절 정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1999년 첫삽을 떴다. 

 

콘크리트 둔덕은 1999년 최초 설계 때부터 존재했고, 2007년 개항 시에도 규정상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시정할 기회는 또 있었다. 2020년 개량 사업 때 손봤다면 이런 참사가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 콘크리트 둔덕을 만든 사람은 누구이며, 만들도록 허락한 사람은 누구인가.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사람은 또 누구인가. 국토교통부, 한국공항공사, 공사 참여 업체 모두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 말대로 설령 조종사가 실수를 했다고 해도 승객들은 살 수 있었다. 국가 시설물이 사람을 죽였다. 이것은 한두 사람의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권력이 연루된 거대 범죄다. 

 

권력은 프레임에 능하다. 사고 발생 당시 ‘무한공항참사’라 불리던 명칭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국토부 보도자료에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뒤바뀌어 있었다. 

 

이런 배경에는 공항건설 주체를 보호하고 항공사에 책임을 덮어씌우고자 하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국토부 보도자료에 ‘제주항공사고’라는 명칭을 넣게 한 자는 누구인가. 그 사람을 찾아라. 거기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임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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