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항공기를 이용해도 하늘나라에 간 조종사와 탑승객 179명을 이승으로 데려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는 있다. [사진=연합뉴스] 1월 말까지 이어지는 무안공항참사 국정조사에서는 참사의 근본적 원인인 ‘콘크리트 둔덕’의 탄생 배경을 규명하는 일이 관건이다.
국민 다수가 무안공항참사를 정치적 인재로 받아들이고 있고 정부 여당에 우호적인 사람들마저 이번 일은 꼭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개중에는 여전히 조종사 탓을 하는 이들이 있다. 심지어 재임 기간도 아니었던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 탓을 하기도 한다. “콘크리트 둔덕이 아니었으면 181명이 다 살았을 것”이라는 과학적인 결과가 나왔는데도 말이다.
콘크리트둔덕의 뒷배는 누구인가
세간에서는 세 명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무안공항은 김대중 재임 시기(1998~2003) 정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1999년 착공했다.
당시 김대중은 호남 소외론을 해소하기 위해 호남 출신 인사들을 대거 요직에 배치했고 호남 곳곳에 공항, 고속도로, 교량을 건설하는 등 인프라 투자에 집중했다. 특히 무안국제공항은 DJ의 정치적 고향인 호남의 핵심 기반 시설이자 숙원 사업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호남은 투자 대비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호남 발전은 곧 국가 발전”이라는 김대중의 구호는 허공의 메아리로 남게 되었다.
작년 연말 이재명정부는 대통령실 주도로 1조 원을 투입해 광주 군 공항을 무안으로 이전 통합(2027)하기로 결정하면서 공항 이름을 ‘김대중공항’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누구도 무안공항에 투여된 김대중의 지분을 무시할 수 없음이다.
그 다음으로 회자되는 인물이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다.
당시 ‘동교동계 2인자’이자 해당 지역구 의원이었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실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공항의 조기 개항과 전시 행정 성과를 위해 국제 안전 기준에 어긋나는 콘크리트 둔덕 설치를 묵인하거나 강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착공 당시 한화갑의 지역구는 ‘전남 목포시·신안군을’이었으나 공항 건설이 본격화되던 2000년 제16대 총선 때부터 무안공항이 속한 전남 무안군·신안군이 그의 지역구로 편입되었다.
국민의힘에선 “당시 정권이 호남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해 안전 규정 준수보다 공항의 외형적 완성에 치중했으며, 그 결과 활주로 끝 안전 구역에 설치해서는 안 될 치명적인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서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항을 설계할 때 활주로 끝 안전구역(RESA)에는 로컬라이저(방위각 정보 제공 시설)가 세워진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과 공항시설법에 따르면 이 안전구역에 시설물을 설치할 경우 부러지기 쉬운 구조(Frangible)로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렇다면 이 위험하기 그지없는 콘크리트 둔덕은 어떻게 들어서게 된 걸까. 국힘 측은 “공항 건설 주체가 해당 시설의 위험성을 알고도 서류상으로만 안전 기준을 맞춘 것처럼 ‘꼼수’를 부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 번째로 거론되는 인물은 문재인정부 시기인 2017년부터 2020년 연말까지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낸 김현미다. 그는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되어 3년6개월간 재임하던 중 부동산 통계 조작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한번 조작 경력이 있다는 이야기.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국정조사장에서 국토부의 내부 문건들을 직접 공개하며 국토부가 시설 결함을 인지하고도 10개월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사실을 실체적 증거로 입증해 보였다.
여러 증거를 통해 사실이 드러나자 국토교통부도 참사 이후 처음으로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가 안전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국토부는 콘크리트 둔덕에 대해 “규정에 부합하지 않고, 2020년 개량 사업 때 개선해야 했다”는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그곳에 단 한 사람이 없었을까
어쩔 수 없고 다 무사안일에 절어 있고 비리 투성이었다고 하자. 어쩌면 단 한 사람이 없었을까. 단 한 사람만 정의로웠다면 그들은 살았다. 2020년 보수 기간에만이라도 제대로 점검했다면 콘크리트 둔덕은 거기 없었다. 그게 마지막 기회였다.
2024년 12월30일 전남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설계하고, 건설하고, 외면하는 이 3단계 부정이 만들어 낸 참사가 무안공항참사다.
아직도 조종사의 실수를 따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2025년 3월 SBS에서는 무안공항참사 이후 국내 여러 항공사에서 모의 비행 훈련을 진행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현직 조종사들이 고도와 속도, 기상 등 참사 여객기와 조건이 같다고 할 때 양쪽 엔진이 모두 꺼지는 투엔진페일(Two Engine Fail) 상태에서 착륙을 시도해 보니 착륙에 성공하는 것조차 희박한 확률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22년 차 조종사조차 시뮬레이터로 성공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당시 조종사와 관제탑 간의 교신을 살펴보면 조종사의 활주로 선택 의사와 관제탑의 지시에 이견이 있었다.
조종사는 버드스트라이크 발생 후 둔덕이 없는 1번 활주로로 착륙 의사를 밝혔지만 관제탑은 둔덕이 있는 19번 활주로로 착륙을 지시했고, 조종사가 이를 수락했다. 그리고 비행기는 착륙 후 활주로를 이탈하며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하여 폭발했다.
복항이 문제라고? 복항은 착륙 위치와 타이밍을 찾는 과정이다. 핑계 댈 것을 대라, 사람들아. 비슷한 세부공항사고(2022)에서 조종사는 3회의 복항 끝에 착륙에 성공했다. 그때 그 대한항공은 로컬라이저을 부수고 멈춰, 자기도 살고 탑승객 전원을 살려냈다.
순직한 제주항공 조종사는 유능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현명한 사람이었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훌륭한 기장이었다. 그에게 누명을 씌워서는 안 된다.
어떤 항공기를 이용해도 하늘나라에 간 조종사와 탑승객 179명을 이승으로 데려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는 있다.
운 좋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해야 한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