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기적의 전투’ 주인공 프랭크 댈리 미 육군 준장(당시 중령). [사진=키튼 댈리 제공]
6·25전쟁사 중 가장 유명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가평 기적의 전투’의 주인공 프랭크 댈리 미 육군 준장(당시 중령·1913∼1990)의 증손자가 한국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평 전투는 1951년 5월26일과 27일 이틀간 경기도 가평에서 벌어졌던 전투다. 미국 유타주 방위군(Utah Army National Guard) 제213야전포병대대(213th Field Artillery Battalion) 240명의 장병들은 중공군 4000명의 공격을 막아내며 진지를 수호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350여 명이 전사하고 830여 명을 생포하는 와중에 미군의 인명피해는 단 한 명도 없어 ‘가평의 기적(Miracle at Gapyeong)’으로 불린다.
프랭크 댈리(왼쪽)와 증손자 키튼 댈리. [사진=키튼 댈리 제공]
가평에 있는 미군 한국전 참전 기념비 앞에서 묵념하는 키튼 댈리와 일행들. [사진= 키튼 댈리 제공]
6·25전쟁이 막을 내린 후 댈리 준장은 병사들과 함께 고향을 돌아가 편안한 여생을 보내다가 1990년 세상을 떴다.
가평군과 유타주 시더시티엔 이 전투를 기리는 참전기념비가 나란히 건립돼 있다. 2009년엔 두 도시가 자매결연을 맺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한국 땅을 밟은 지 70여 년이 지나 증손자 키튼 댈리(20)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모르몬교) 선교사로 활동하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
그는 선교사 활동을 하면서 증조할아버지의 이름이 새겨진 군번표를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타주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본산이고, 댈리 준장과 대대원 대부분도 신자였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신자들은 희망에 따라 18∼19세 무렵 선교 활동을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키튼 댈리는 2년 임기 선교사로 지원했는데 한국에 가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교회 지도부는 지원자의 개인 정보를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선교지를 배치한다고.
키튼 댈리는 아버지로부터 ‘가평의 기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기에 한국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발전상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그는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증조할아버지도 한국의 놀라운 성취를 보면 매우 자랑스러워하실 것이다. 할아버지가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내게 큰 자극이 된다.”
그는 지난해 5월 가평에서 열린 기적의 전투 74주년 기념식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선교사 기간엔 선교지를 떠나거나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선교에만 집중하는 게 원칙이지만, 특별히 참석해 가족 대표로 연설했다.
유타주 시더시티에 건립된 ‘가평 기적의 전투’ 참전기념비. [사진= 키튼 댈리 제공]
키튼 댈리는 “70여 년 전 일을 여전히 감사해하는 한국인들을 보며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운명처럼 느껴졌다. 가평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특별한 장소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서 그는 영어교실, 농사일 돕기 등 다양한 활동으로 종교를 알리고 있다.
그는 10월, 2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다. 이후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할 예정이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