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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시론] 삼덕제지·삼양식품의 같은 겨울, 다른 선택
  • 한미일보 편집국
  • 등록 2026-01-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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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덕제지는 왜 사라졌고 삼양식품은 어떻게 살아남았나
  • IMF 위기 넘긴 삼양식품… 냉정한 계산으로 노·사 단합
  • 삼덕제지 노조의 ‘투쟁’… ‘공장 폐쇄’와 몇 푼 위로금의 결말
1997년 12월3일,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하던 날, 이 나라의 산업 현장은 조용히 두 갈래 길로 갈라졌다. 신문 1면에 ‘국가부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이후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수많은 기업과 일터는 생존이라는 냉혹한 시험대 위에 올려졌다. 그리고 같은 시대, 같은 조건 속에서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한 두 기업의 운명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노동조합의 본질을 묻는 상징적 사례로 남아 있다. 안양의 삼덕공원으로 변한 삼덕제지 공장과 라면 공장에서 세계 식탁으로 뻗어나간 삼양식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삼덕제지 안양공장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삼덕공원. 이 공원은 2003년 8월, 고 전재준 삼덕제지(현 삼정펄프) 회장이 당시 시가 500억 원이 넘었던 공장부지를 안양시에 기부해 만들어졌다.

1997년 12월3일,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하던 날, 이 나라의 산업 현장은 조용히 두 갈래 길로 갈라졌다. 신문 1면에 ‘국가부도’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이후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수많은 기업과 일터는 생존이라는 냉혹한 시험대 위에 올려졌다. 

 

그리고 같은 시대, 같은 조건 속에서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한 두 기업의 운명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노동조합의 본질을 묻는 상징적 사례로 남아 있다. 안양의 삼덕공원으로 변한 삼덕제지 공장과 라면 공장에서 세계 식탁으로 뻗어나간 삼양식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IMF 위기를 넘긴 삼양식품 노조… 냉정한 계산에 근거한 선택

 

IMF 외환위기 직후 대한민국의 겨울은 잔인했다. 거리에는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가장이 넘쳐났고, 실업자 수는 공식 통계로만 170만 명을 넘겼다. 당시 언론과 정부 자료를 종합하면 실제 체감 실업 규모는 300만 명에 육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의 부채비율은 치솟았고, 금융권은 대출 회수에 나섰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하루아침에 사라졌고, 노조와 경영진은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는 극한의 치킨게임에 들어갔다.

 

삼양식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라면 산업의 원조로 불리던 이 회사는 IMF 직후 부채비율이 300%를 넘어섰고, 창업주 별세라는 내부적 충격까지 겹치며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은행은 자금 회수를 압박했고, 협력업체는 외상대금 결제를 요구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이 단계에서 노사는 정면충돌로 치달았을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당시 다수의 기업 현장에서는 공장 점거, 장기 파업, 격렬한 투쟁이 반복됐다.

 

그러나 삼양식품 노조의 선택은 달랐다. 사측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노조와 직원 대표들이 상여금 전액 반납과 임금 20% 삭감을 결의했다. 일부 직원은 퇴직금 중간 정산까지 미루며 회사의 현금 흐름을 지탱했다. 이는 감성적 희생에 관한 미담이 아니라 냉정한 계산의 결과였다. 회사가 사라지면 월급도, 퇴직금도, 노동권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히 인식한 선택이었다. 파업 대신 생산성을 높였고, 불량률을 줄였으며, 주말 특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삼양식품은 IMF를 견뎌냈다.

 

삼덕제지 노조의 ‘투쟁’ 선택의 결과… 사주의 ‘공장 폐쇄’

 

반면 경기도 안양의 향토기업 삼덕제지의 노조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1960년대 창업 이후 40년 가까이 지역 경제를 지탱해 온 이 제지 공장은 IMF 당시 노사가 한 차례 극적인 협력을 통해 위기를 넘긴 경험이 있었다. 상여금 반납과 임금 조정으로 회사를 살려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상급 노조 가입 이후 노사 관계는 급격히 경직됐고, 임금 인상과 복지 확대를 둘러싼 갈등은 대화가 아닌 투쟁으로 치달았다.

 

2003년 여름, 삼덕제지 공장은 장기 파업에 들어갔다. 46일간 공장 가동이 멈췄고, 거래처는 하나둘 등을 돌렸다. 제지 산업의 특성상 납기 신뢰는 생명줄과 같았지만, 그 신뢰는 단 한 번의 파업으로 무너졌다. 회사는 흑자를 내고 있었지만, 생산 차질이 반복되는 공장은 자본가의 관점에서 ‘불안정한 자산’에 불과했다. 

 

결국 당시 80세였던 창업주 전재준 회장은 충격적인 결단을 내렸다. 공장을 폐쇄하고 300억 원대의 부지를 안양시에 기증하겠다고 선언했다. 수백억 원의 자산을 포기한 이 결정은 노사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이 됐다.

 

2003년 11월, 삼덕제지 안양 공장은 문을 닫았고 공장 터는 시간이 지나 삼덕공원이 됐고 60여 명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다. 장기간 파업으로 노조원들에게 남은 것은 위로금 몇 푼과 평생직장을 잃은 현실이었다. 회사는 사라졌고, 노동권을 주장할 대상도 함께 사라졌다.

 

삼양식품 노조의 결정… 굴종이 아니라 미래 위한 투자

 

같은 시기, 삼양식품은 조용히 체질을 바꿔 나갔다. 비용 구조를 정비하고, 제품 경쟁력에 집중했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 ‘불닭볶음면’이라는 히트 상품을 출시했다. 매운맛이라는 한국적 특성을 전면에 내세운 이 제품은 유튜브와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글로벌 시장으로 퍼져 나갔다. 

 

삼양식품은 2024년 기준 연간 순이익 3442억 원대를 기록하며 경쟁사 농심을 크게 앞질렀다. 한때 2만 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120만 원을 훌쩍 넘었고, 직원들은 성과급과 장기 고용 안정이라는 실질적 보상을 누리게 됐다.

 

이 두 기업의 대비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과 기업이 어떤 선택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증 사례다. 삼양식품 노조의 결정은 굴종이 아니라 자신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였다. 단기 손실을 감수하고 장기 생존을 택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반대로 삼덕제지의 파업은 명분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일터 자체를 소멸시켰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투쟁이 곧 정의’라는 도식이 반복된다. 그러나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글로벌 시대에, 자본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떠난 자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수년간 수천 개의 기업이 한국을 떠났고, 돌아온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통계는 이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노동권은 지속 가능한 일터에서만 실현되는 것

 

삼양식품의 사례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노동자의 권리는 구호와 지속적인 파업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기업의 일터에서만 노동권은 실체를 갖는다. 파이를 키워 나눌 것인가, 아니면 쟁반을 엎어 모두 굶을 것인가의 선택 앞에서 삼양식품 노조는 전자를 택했고, 삼덕제지 노조는 후자를 택했다. 결과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 숫자와 현장으로 증명되고 있다.

 

1998년 겨울, 삼양식품 직원들이 상여금 반납 동의서에 서명하던 그 순간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가족의 생계와 자신의 미래를 계산한 현명한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계산은 옳았다. 반면 2003년 여름, 삼덕제지 공장 마당에서 파업하면서 불렀던 노동가는 지금 공원의 정적 속에 묻혀 있다.

 

이 두 장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교훈은 명확하다. 회사가 있어야 노동자가 있고, 일터가 있어야 노동권이 있다. 생존 없는 정의는 공허하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피크 코리아’가 조심스럽게 논의되는 이 순간, 삼양식품의 성공과 삼덕제지의 몰락은 한국의 모든 노동자에게 생존을 위한 냉철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한미일보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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