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뤼터(오른쪽) 나토 사무총장은 26일(현지시간) 유럽 일각에서 제기되는 독자방위론에 대해 “유럽은 미국 없이 스스로 방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사진=EPA 연합뉴스]
2026년 1월 다보스 포럼을 전후로 불거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른바 ‘그린란드 구상’은 짧은 기간 국제정치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다가 빠르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결과적으로 이 구상은 정책으로 구체화되지 못했고,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군사적 수단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 사안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다. 미국의 동맹 인식과 향후 전략 구상을 엿볼 수 있는 단서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린란드… 북극 방어의 핵심 거점
그린란드 문제를 둘러싼 논의의 출발점은 명확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2019년 첫 임기 당시에도 그린란드 매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바 있으며, 당시 덴마크 정부는 이를 즉각 일축했다. 2026년 초 이 이슈가 다시 부상한 것 역시 돌출 발언이라기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전제로 한 장기적 군사·지정학적 구상과 맞닿아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냉전기에 그린란드는 북극 방어의 핵심 거점이었다. 냉전이 절정에 달했을 당시 미군은 그린란드 전역에서 100여 개의 군사·보급 시설을 운용했으며, 현재도 30여 곳을 여전히 운용 중이다. 나토 체제하에서는 덴마크와의 협정에 따라 필요할 경우 미군 기지 증설이 가능하다.
이 점만 놓고 보면 현행 동맹 구조 속에서 미국이 군사적 필요 때문에 굳이 그린란드를 ‘미국 영토’로 편입해야 할 이유나 그럼으로써 얻을 수 있는 실익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에 관한 관심은 현재의 나토 체제보다는 ‘나토 이후’를 상정한 시나리오에 가까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만약 나토가 해체되거나 친중이 강화되면, 동맹국 영토에 주둔한 미군은 철수 압박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린란드를 미국 땅으로 편입할 경우, 유럽의 안보 구조 및 정치 지형과 무관하게 북극 방어 거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발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관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2025년 8월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평택 기지 부지의 소유권 문제를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미국 방어 능력의 한계… 그린란드 논의의 또 다른 배경
군사 기술 환경의 변화 또한 이 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미국은 오랫동안 미사일 방어 체계(Missile Defense System·MD)를 통해 본토 방어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마하 5~20에 이르는 러시아의 극초음속 미사일과 치르콘(Zircon), 아방가르드(Avangard), 킨잘(Kinzhal), 오레시니크(Oreshnik), 사르마트(Sarmat) 등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그리고 중국의 둥펑(DF)-17, 27, 31, 41 계열을 완전히 방어할 수 있는 수준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미국의 방어 능력은 여전히 상당 부분이 미래 기술 개발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와 같은 방어 능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차세대 방어 기술과 방어망 확장을 추진 중이다. 레이시온(Raytheon)의 고성능 레이더, 우주 기반 센서, 이른바 ‘골든 돔(Golden Dome)’으로 불리는 우주 방어 구상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 체계는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기술적·재정적·정치적 제약으로 실전 배치와 광범위한 방어망 구축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러한 한계 탓에 그린란드를 거점으로 한 방어 구상 또한 상징적 의미를 넘어서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에 대한 인식도 다시 주목된다. 그는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거듭 비난하며 미국이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한국에도 같은 논리를 적용해 방위비 분담 증액을 압박해 왔다는 점에서, 동맹을 바라보는 그의 일관된 시각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희토류 실익 점검과 방위비 협상… ‘그린란드 구상’의 배경
희토류 역시 거론되었지만, 이 부분은 과장되거나 오해된 측면이 적지 않다. 그린란드에는 희토류를 포함한 다양한 광물 자원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영구 동토 지대인 그린란드에서의 채굴 비용이 중국 대비 4~6배에 달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정제·가공 시장의 85~90%를 장악하고 있어, 단기간에 경제성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다보스 포럼을 전후해 그린란드의 군사·지정학적 가치를 강조하며 나토와 유럽연합(EU)을 압박했다. 하지만 덴마크와 EU의 즉각적 반발, 공화당 내 탄핵 경고, 그리고 군사·경제적 실익의 한계로 인해 “군사적 수단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히며 한 걸음 물러선 상태다.
이에 따라 그린란드 편입 발언은 실행 가능한 정책이라기보다, 미국이 감당해 온 안보 부담을 나토와 동맹국들의 방위비 분담과 역할 확대를 요구하기 위한 협상 전략으로 해석된다. 같은 맥락에서 거론된 평택기지 미국 편입 발언 역시 한국에 더 큰 방위비 부담을 요구하는 트럼프식 거래 외교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한미일보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