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사태에 대해 의견을 말하는 한강 작가 [사진=연합뉴스]
한강이 진정으로 문학의 힘을 믿는다면, ‘인간 탐구’를 말한다면, 배재고 학생들을 ‘기성세대의 실패 산물’로 환원하지 말았어야 했다.
2026년 6월29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광주제일고와 배재고의 경기. 배재고 야구부 일부 선수들이 상대 더그아웃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를 외쳤다.
이는 불과 한 달 전 스타벅스코리아가 5·18 46주년을 앞두고 벌인 ‘탱크데이’ 프로모션 논란을 빗댄 응원이었다. 광주제일고 코치진이 즉각 항의했고, 심판이 제지했으며, 배재고 측은 경기 후 사과했다.
한강 “그냥 지나가선 안 된다”?
이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정지와 청룡기 남은 경기 몰수패를 결정했다. 배재고는 재심을 신청했고, 학생들은 광주를 찾아 공식 사과했다. 5·18 관련 단체 일부도 “배제 아닌 포용”을 강조하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 사건을 두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언론은 보도한다.
“그냥 지나가선 안 되는 중요한 사건” “기성세대로서 어떻게 하다가 우리는 이렇게 실패하게 됐을까?”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를 제대로 포착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야 한다” “충격이 또 다른 충격에 덮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식이다.
이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세대적 책임과 역사 교육의 실패를 지적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5·18을 절대적 성역으로 고착화하려는 오래된 프레임의 반복이다.
‘기성세대 실패’라는 프레임의 실체
이런 자조는 1980년 5월 이후 좌파 지식인들이 반복해온 전형적인 수사다. 5·18을 ‘순수한 민주화운동’으로만 규정하고, 그 서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거나 농담·풍자·지역 라이벌리 감정이 섞이면 즉시 ‘역사 인식 부재’ ‘혐오’ ‘사회적 실패’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며 더 강력한 이념 교육과 감시를 요구한다. 배재고 학생들의 응원은 고등학교 야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역 비하·상대 조롱 문화의 연장선에 있었다.
과거 부산 경남고 선수들이 서울 휘문고를 상대로 “한강이 바다를 이길 수 있겠나, 부산 함 놀러 온나”고 외친 사례처럼, 고교 스포츠 응원은 본래 거칠고 지역감정이 섞이기 마련이다.
이를 5·18 ‘조롱’으로만 해석해 국가적·세대적 위기로 끌어올리면,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정치적 동원이 시작된다.
명색이 노벨상 수상자라는 한강이 이 사건을 “기성세대의 실패”로 환원하는 것은 자신의 문학적 주제를 사회적·정치적 무기로 전환하는 행위다. 5·18은 1980년 5월17일 신군부의 계엄 확대와 5·18 광주 현장에서 벌어진 복합적 사건이다.
민간인 희생, 군의 과잉 진압, 일부 무장 세력의 존재, 이후 정치적 이용 등 여러 층위가 존재한다. 이후 정권은 이를 ‘폭동’으로, 그리고 자칭 민주화 세력은 ‘순교적 민주화운동’으로 단선화했다. 진실은 그 사이에 있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실패했다”는 말로 이 복합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더 철저한 피해자 서사 교육’만이 해법이라는 결론으로 직결된다.
실제 실패는 무엇인가?
배재고 학생들이 “몰랐다”고 진술한 부분이 있다. 이는 변명이 아니라 세대적 현실을 보여준다. 1980년생이 아닌 2000년대 후반~2010년대생 고등학생에게 5·18은 교과서와 기념식, 현장 학습으로 접하는 ‘공식 역사’다.
이미 수십 년 동안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과정이 5·18을 집중적으로 다뤄왔다. 그 결과가 ‘탱크데이’ 상업 이벤트에 대한 과민 반응과, 그 이벤트를 빗댄 고등학생들의 즉흥적 응원이다. 이는 교육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교육이 특정 서사만을 강요하고 비판적 거리두기와 복합적 이해를 차단했기 때문에 발생한 반작용일 수 있다.
진짜 ‘기성세대 실패’는 따로 있다. 5·18을 정치적 자산으로 독점하면서, 그 서사에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거나 다른 관점을 제시하면 ‘친독재’ ‘지역 비하’ ‘혐오’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배재고에 6개월 출전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린 야구협회와 서울시교육청의 신속한 ‘역사·인권 교육’ 추가 조치는 그 분위기의 산물이다. 고등학생의 스포츠 경기 중 응원을 국가적·역사적 범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 대가로 학생들의 진로(입시, 스카우트)까지 위협하는 것이 과연 교육인가?
충격의 연쇄와 선택적 분노
한강이 지적한 “충격이 또 다른 충격에 덮이는 것”은 사실 좌파 미디어와 지식인들이 가장 잘 활용하는 메커니즘이다. 5·18 관련 사소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중요한 신호’로 포장해 수개월 동안 이슈를 유지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실패’ ‘더 강한 교육’ ‘표현의 규제’를 요구한다.
반대로 북한 인권, 6·25전쟁의 실상, 다른 역사적 비극에 대한 조롱이나 왜곡, 또는 특정 정치 세력의 역사 왜곡 사례에는 같은 수준의 분노와 자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선택적 분노와 선택적 자조가 진짜 문제다.
사실, 배재고 사태는 ‘5·18 성역화’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농담, 풍자, 심지어 무례한 표현까지도 법적 한계 내에서 허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고등학생의 즉흥적 응원을 빌미로 세대 전체를 ‘실패’로 규정하고, 더 많은 이념 주입을 정당화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도덕적 권위주의다. 진정한 성숙은 5·18을 영원한 트라우마와 정치적 무기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의 복합성을 직시하고 다음 세대가 자유롭게 해석하고 때로는 비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강이 진정으로 문학의 힘을 믿는다면, ‘인간 탐구’를 말한다면, 배재고 학생들을 ‘기성세대의 실패 산물’로 환원하지 말아야 했다. 그들은 단지 2026년 6월 목동야구장에서 경기에 이기고 있던 고등학생들이었다.
그들을 통해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교육의 실패’가 아니라, 5·18을 둘러싼 과도한 정치화와 서사 독점이 낳은 세대 간 괴리와 반발이다. 그 괴리를 메우는 길은 더 많은 자조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정직한 복합성과 표현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사건이 우리에게 보내는, 진짜로 지나쳐서는 안 될 신호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