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기념식에서 홍석현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중앙일보]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이라더니 요즘 중앙일보-jtbc의 오너 홍석현(77)이 꼭 그러하다. 지난해 가을, 그러니까 유동성 위기로 중앙그룹 공중분해 소식이 들리기 채 1년도 안 되던 무렵 홍석현은 한가롭게도 자기네 출판사에서 에세이집 한 권을 펴냈다. 제목은 ‘인생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중앙북스).
이 책을 떡하니 장식한 호기로운 카피 한 줄이 이러하다.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은 한 리더의 성찰과 고백”. 뭔 내용이지? 그의 고백에 따르면, “내가 걸어온 길에서 얻은 바를 책의 형태로 정리해 보고 싶었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 책은 “인생이 내 영혼에 남긴 문양”을 담고 있다는 말이다.
놀랍다. 그때 벌써 중앙그룹 공중분해 위기는 손써볼 수 없을 정도로 깊숙하게 진행 중이었다는 걸 지금 우린 다 알고 있다. 자본잠식 상황은 그 훨씬 이전 상황이었다. 당시 홍석현-홍정도 부자는 부도 위기를 틀어막아 보려고 여기저기 손 내밀고 부동산 매각에 정신없었을 상황이었다.
그런 최악의 국면에서 홍석현은 “진정한 어른” “내 영혼의 문양” 등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는 얘기다. 나는 문제의 그 책을 올해 초 구입해 훑어봤다. 그의 멘탈은 정말 누구도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기괴하다는 걸 재확인했다.
그중 압권은 “내 피에는 잉크가 흐른다”는 선언이다. 기자 생활을 단 하루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자신은 기자 DNA를 타고났다는 자랑이었다.
“아침 일과를 신문 읽기로 시작하는 것은 60년 넘은 습관이고, 1994년 중앙일보 대표가 된 다음에는 신문 읽기가 주 업무가 되었다. 요즘은 종이신문의 입지가 예전만 못하고 나 역시 모바일로 뉴스를 많이 접하지만 집무실에서 종이신문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 잉크 냄새 진한 종이의 매력을 떨치지 못하는 신문쟁이의 피다”(43쪽)
그렇게 신문쟁이 피를 자랑하던 홍석현은 지금 몰락 직전이다.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하고 뺀질댈 줄 알았던 홍석현이 저렇게 휘청댈 줄은 누구도 몰랐다.
사실 언론사 부도 자체가 흔한 일이 아니다. 은행과 채권단에서 봐 주기 마련인 탓이다. 그러나 아들 홍정도가 방만 경영의 끝을 달리고, 부채비율이 2013년 22.9%에서 지난해 2620%로 100배 치솟는 최악의 경영 상황은 누가 봐주고 말 것도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지금 홍석현의 처신이다. 그는 지금도 현실부정 속에 무책임하게 논다. 얼마 전 중앙그룹 산하 기업 5곳의 기업회생 절차를 알리는 기자회견장을 기억하시는가? 단상엔 부회장 홍정도만 혼자 나와 “죄송하다”며 세 번이나 고개 숙였다. 명색이 중앙그룹 오너인 홍석현의 모습은 일절 찾을 수 없었다.
그와 달리 2년 전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 신청 때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아들 윤석민 회장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직접 등장했다. 당시 그는 93세였다. 그럼에도 진지한 표정으로 “워크아웃 조기졸업에 혼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과 채권단에게 진지하게 들렸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남과 다른 게 홍석현이다. 정말 결정적일 때 언론사주로서의 책임감과 담쌓은 듯하는 것이 그의 주특기다. 평생을 그렇게 얹혀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중앙일보-jtbc란 게 그가 개척한 언론이 아니지 않는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만든 언론사를 아버지 홍진기에 이어서 위탁 운영해왔을 뿐이다.
1994년 홍석현을 중앙일보 사장으로 임명했던 것도 그의 매부인 이건희 삼성 회장이었다. 그는 자기 손으로 일군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지만, 책임감도 정말 제로다.
기막히게도 홍석현은 요즘 주변에 “난 잘못이 없다”는 말을 하고 다닌단다. 원 세상! 예전 좌빨 아나운서 손석희를 영입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시동을 건 것 등은 모두 그의 결정이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중앙그룹 공중분해 위기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언론사의 연구 대상이 맞다. 그 중심에 있는 홍석현-홍정도 부자도 우리 시대의 반면교사이자 실패학의 사례로 점검되어야 맞다.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체제 위기 10년째인 한국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홍석현-홍정도 부자처럼 ‘열린 보수’를 말하는 무책임한 언론사주는 기필코 몰락한다는 점이다.
세상이 다 알지만, 좌파연하는 점부터 두 부자는 꽤나 닮은꼴이다. 우선 아들 홍정도는 강남좌파다. 노무현을 존경한다고 떠벌이는 친구가 아니던가? 그리고 뭣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가치 있는 정보”라는 발언으로 악명 높다.
그건 최악의 가짜뉴스 선언이었다. 그건 2015년 중앙일보 창간 50주년 행사 공식 발언이란 점이다. 당시 홍석현은 무얼 했지? 단하에서 아들의 그 말에 태연자약하게 박수 치고 있었다.
“야, 그게 무슨 망발이냐?”하고 혼쭐 냈어야 할 홍석현은 그렇게 무책임했다. 기겁할 일은 이후 둘은 한 몸인 양 움직였다는 점이다. 즉 언론 현장 최악의 빌런(악당) 두 명이 동시에 등장한 꼴이다. 실제로 홍정도의 그 발언 1년 뒤 홍석현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태블릿PC를 내세워 선동 언론의 시동을 걸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홍정도가 강남좌파라면, 홍석현은 ‘열린 보수’를 제창한 사람이다. 즉 홍석현-홍정도 부자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헐겁고, 보잘것없는 사상 무장의 대명사인 셈이다. 실제로 홍석현의 모토인 ‘열린 보수’는 지난 30년 보수언론 중앙일보의 사실상 사시(社是)로 통용돼 왔다.
그 결과 그 매체를 어중간한 중도 신문으로 변질시킨 근본 원인이었다. 아니 그 이상의 파괴적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조·중·동’을 보수언론이라고 볼 수 없는 배후엔 문제의 바로 이 열린 보수론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언론 위기의 배경엔 홍석현-홍정도가 있다는 뜻이 아니고 뭔가?
더구나 홍석현은 자신의 호언대로 “진정한 어른”도 아니고, “영혼에 문양을 새긴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세상이 다 아는 대통령병 환자였다.
노무현 시절 임명된 주미대사직을 발판 삼아 유엔 사무총장에 등극하고, 화려한 국내 컴백과 함께 대통령직에 오른다는 그림대로 움직였다. 그런 헛꿈이 정상적인 언론 사주로서의 책임있는 처신이 아니었던 것만은 너무도 분명하다. 바로 그런 게 지금 공중분해 위기의 중앙일보-jtbc 사태에 원인(遠因)이다.
이 글은 홍석현-홍정도를 다루는 칼럼의 첫 번째다. 바로 뒤이어 홍석현의 사람됨과 생각을 별도로 점검해 보겠고, 후속으로 홍정도란 최악의 천둥벌거숭이 언론 경영자의 못 말리는 생각과 행태도 차례로 들여다보겠다.

◆ 조우석 평론가
시사평론가. 서울신문 기자, 문화일보 문화부장,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출신의 대한민국 대표 문화통이다. KBS이사회와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를 역임하며 한국출판평론상(2008)과 제25회 서울언론인클럽 언론상 칼럼상(2010)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