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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조갑제의 위험한 확신
  • 김영 기자
  • 등록 2026-08-05 19: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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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관위 공식 해명을 검증된 사실로 단정…의혹 확정과 방향만 다른 오류
  • 상황판 수치만으로 당락 못 바꾸지만 투표자 수는 투표지 검증의 기준
  • ‘당락 조작 미입증’과 ‘부정선거 불가능’은 전혀 다른 명제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가 2022년 10월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 대표는 최근 선관위의 투표자 수 변경을 ‘오기 수정을 위한 변칙’으로 규정하며 부정선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조갑제 옹은 이제 필을 놓을 때가 된 모양이다. 세월이 필력을 무디게 한 것인지, 확신이 이성을 압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글만 놓고 보면 그렇다. 

그는 ‘투표율 수치의 정정만으로 득표 조작을 단정할 수 없다’는 타당한 지적에서 출발했지만, 별도의 검증 없이 이를 단순 오기 수정으로 규정하고 마침내 “부정선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절대명제로 뛰어갔다. 자신이 비판하는 선동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

의혹만으로 조작을 단정해서도 안 되지만, 참관인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조작 가능성까지 부정해서도 안 된다. 원로의 권위는 단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 앞에서 자신의 확신까지 의심하는 절제에서 나온다. 이번 글에서는 그 절제를 찾기 어렵다.

필자는 지난 5월 ‘검증 대신 낙인을 택한 조갑제와 정규재’라는 칼럼에서 조 옹의 태도를 비판했다. 부정선거 의혹이 허술하다면 공개된 자료로 반박하면 될 일을 그는 ‘정신질환’이라는 낙인으로 밀어냈다. 당시 필자는 “검증으로 이길 수 있다면 낙인이 필요 없다”고 썼다. 

그런데 선거관리 과정의 수치 변경 문제가 구체적으로 제기된 지금도 그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낙인 대신 ‘오기 수정’이라는 결론부터 내렸다. 검증해야 할 사안을 자신의 확신으로 대신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조 옹은 선관위 관계자들이 잘못 입력한 투표율을 바로잡고 최종 투표율을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이후 시간대의 수치를 고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를 “투표율 조작이 아니라 투표율 오기 수정을 위한 변칙”이라고 규정했다.

선관위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설명자료에서 시간대별 투표자 수는 입력·집계 시점에 따라 오차가 발생할 수 있는 잠정수치이며, 최종 투표자 수는 개표 완료 후 확정된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선거 당일 내부 메일에서는 기존 보고 자료에 큰 오류가 없으면 다음 시각 투표자 수를 보고할 때 가감할 수 있다고 안내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처리 방식이 정당하고 정확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오기 수정이라면 어느 시각에 어느 투표소의 어떤 수치가 잘못 입력됐는지부터 밝혀야 한다. 실제 투표자명부와 투표용지 교부 기록에 따른 정확한 수치는 얼마였는지, 누가 어떤 권한으로 수정했는지, 수정 전후의 값과 변경 사유가 로그에 남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앞선 입력 오류를 해당 원자료에 따라 바로잡은 것과 잘못 입력된 값을 그대로 둔 채 다른 투표소나 이후 시간대의 정상 수치를 가감해 최종 합계를 맞춘 것은 전혀 다른 행위다. 

전자는 정정이지만 후자는 실제 시간대별 투표자 수와 다른 통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최종 합계가 같다고 그 과정까지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방선거 종합관리지침은 선거관리시스템의 입력 내용을 수정할 경우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상급 선관위의 확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 옹이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최종 투표자 수가 맞느냐”가 아니라 “정상적인 수정 절차를 밟았느냐”여야 했다. 절차와 기록을 확인하지 않은 채 선관위의 해명을 사실로 확정하는 것은 수치가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부정선거라고 단정하는 것과 논리 구조가 같다.

한쪽은 의혹을 유죄로 확정하고, 다른 한쪽은 해명을 사실로 확정한다. 방향만 다를 뿐 조사해야 할 사실을 자신의 확신으로 대신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두 번째 오류는 상황판의 투표율 표시값과 투표자 수가 지닌 검증 기능을 혼동한 데 있다. 조 옹은 “부정선거가 되려면 투표율이 아니라 득표율을 조작해야 한다”고 썼다. 선관위 상황판의 표시값만 바꾼다고 각 개표소에서 확정한 후보자별 득표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여기까지는 맞다.

상황판의 표시값만 변경됐고 투표자명부와 투표용지 교부 기록, 공식 집계자료와 실물 투표지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면 당락과 사후 검증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다. 따라서 상황판 수치 변경을 곧바로 후보자별 득표수 조작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핵심은 변경이 단순 표시 단계에 그쳤는지, 선거관리시스템의 공식 통계와 검증자료에까지 반영됐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투표자 수 자체는 단순한 홍보용 숫자가 아니다. 투표자 수는 투표용지 교부 수, 투표함에서 나온 투표지 수, 무효표와 후보자별 득표수의 합계를 대조하는 검증 기준이다. 

은행원이 하루 업무를 마치며 장부와 현금을 맞추듯 선거에서도 투표자명부, 투표용지 교부 기록, 투표지 수, 후보자별 득표수 사이의 일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시간대별 투표자 수는 어느 시점에서 오류나 이상이 발생했는지를 추적하는 경보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투표율 수치의 변경이 곧바로 후보자별 득표수 조작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 투표자 수를 확인하는 기초자료가 근거 없이 변경됐다면 투표지 과부족 등 다른 이상 징후를 확인하는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변경의 대상과 경위, 근거를 조사해야 하는 이유다.

부정선거 역시 후보자별 득표수의 직접 조작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특정 유권자의 투표를 방해하거나 투표용지를 불법으로 발급·폐기하고, 투표함이나 개표자료를 훼손하거나 검증자료를 허위로 작성·은폐하는 행위도 선거의 자유와 공정을 침해한다. “후보자별 득표수를 바꾸지 않았으니 부정선거가 아니다”라는 말은 부정선거의 범위를 임의로 축소한 주장이다.

세 번째 오류는 ‘당락 조작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명제와 ‘부정선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뒤섞은 데 있다. 전자는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에 관한 판단이고, 후자는 선거제도에서 부정이 발생할 가능성 자체가 없다는 절대적 선언이다. 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논리적 간극이 있다.

각 개표소의 참관인들이 후보자별 득표수를 확인하고 개표상황표와 실물 투표지가 보존돼 있다면 중앙 집계 결과와 다시 대조할 수 있다. 이는 대규모 득표 조작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안전장치다. 

그러나 참관인이 현장에서 개표를 지켜봤다는 사실이 모든 전산 입력과 수정, 전송 과정까지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다. 

참관제도는 부정 가능성을 낮추고 사후 검증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이지, 모든 부정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신의 보증서가 아니다.

“조작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만으로 실제 조작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똑같이 “참관인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조작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정상적인 언론과 수사기관이 해야 할 일은 어느 한쪽의 확신을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원자료와 수정 권한, 전산 로그, 투표자명부, 투표용지 교부 수, 실물 투표지와 개표상황표를 서로 대조하는 것이다.

조 옹은 언론이 선동꾼들의 ‘조작’ 주장을 비판 없이 소개해 선량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질타했다. 경청할 대목은 있다. 언론은 의혹 제기와 범죄 입증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그러나 같은 기준은 조 옹 자신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시간대별 투표자 수는 잠정수치라는 선관위의 공식 해명을 별도의 검증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이를 근거로 “부정선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는 것 역시 사실에 기초한 반박이 아니라 확신의 선전이다.

의혹을 사실로 단정하는 것도 선동이지만, 검증하지 않은 해명을 사실로 단정하는 것도 선동이다. 

일부 부정선거론자의 과장된 주장이 선관위의 면책 사유가 될 수 없듯, 선관위의 잘못이 모든 선거 결과를 부정할 근거가 될 수도 없다. 

필요한 것은 조작과 결백을 먼저 선언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기록을 공개하고 숫자를 대조하는 검증이다.

평생 기자로 살아온 원로라면 누구보다 이 원칙을 잘 알아야 한다.

결론을 정해 놓고 사실을 끌어다 맞추는 순간 기자의 펜은 진실을 밝히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확신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변한다.

조갑제 옹의 이번 글이 위험한 것은 틀릴 수 있어서가 아니다. 검증하지 않은 확신을 진실의 이름으로 단정했기 때문이다.

김영 한미일보 편집인·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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