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 육사 40기 이재명은 워싱턴 D.C의 핵심 싱크탱크인 CSIS에서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시진핑에게 보낸 친서에는 양국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발전과 성숙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위대한 협상가"라고 칭송했다.
이는 대한민국 외교가 마주한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생존을 위한 이중주 악보’인지, 카메라가 회담을 중계하는 순간 서로가 교언영색(巧言令色) 얼굴로 이미지 정치를 한 것인지? 반미를 이용했던 정치인과 반미가 두려운 정치인 간의 후속 조치를 더 두고 봐야 진실을 자세히 알 것 같다.
1.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의 발언들을 모두 박제(剝製)해야 한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던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미중이 서로를 ‘위협’으로 규정하는 신냉전의 한복판에서, 낭만적 균형 외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 더는 양자택일을 피할 수 없어서 냉혹한 현실에 대한 공식적인 인정인지? 또 ‘내가 00한다고 하니 진짜 그럴줄 아나’ 청개구리 화법을 쓸지? 지켜보는 것은 국민의 몫이 되었다.
CSIS에서의 발언은 국제 질서의 ‘이성’을 향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시스템의 공식 선언이자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라는 구조적 현실을 인정하고, 한미동맹이라는 축 위에서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겠다는 논리적 귀결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트럼프를 향한 찬사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상대의 자존심을 채워주는 것마저 외교의 도구로 삼는 실용주의의 국익인지? 양다리 실용주의의 폐단인지? 더 두고 볼 문제다. 트럼프가 이(李)의 아부에 넘어간 것인지? 아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많은 요구에 순응하고 양보하도록 역으로 이용한 것인지? 제2막을 더 보기 전에는 평가를 유보해야 한다.
2.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가 반복되는가?
이재명 대통령의 180도 변신의 모습은 놀랍도록 낯이 익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걸어갔던 길의 데자뷰(Déjà vu)이기 때문이다. "반미면 좀 어떠냐"는 발언으로 상징되던 그의 이미지는 분명 기존의 질서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장군들 대상으로 호통을 치면서 ‘자주’를 외쳤고, 그의 지지자들은 한미 관계의 수평적 재조정을 열망했다. 그는 분명 ‘반미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2003년 청와대에 입성했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의 친미적 선택은 그의 지지자들마저 경악시켰다. 그는 진보 진영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의 가장 큰 현안이었던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 파병을 결정했다. 지지층의 이탈을 감수하며 한미 FTA 협상을 타결했으며, 역대 정권의 숙원이었던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실질적으로 관철시켰다. 겉으로 드러난 정책만 보면 그는 누구보다 ‘친미적’인 대통령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변신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가진 냉엄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한 결과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그가 꿈꿨던 ‘자주국방’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한미동맹의 확고한 신뢰가 선결 과제임을 깨달았다. 그는 동맹의 가장 어려운 부탁인 이라크 파병을 들어줌으로써 발언권을 얻었고, 미래의 경제를 위해 한미 FTA를 한국을 편입시켰으며, 오랜 난제였던 용산 기지 이전을 해결했다. 국익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적인 길을 걸었던 것이다.
3. 두 개의 얼굴, 하나의 국익을 향한 생존전략
CSIS에서의 전략적 선언과 트럼프를 향한 전술적 아첨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준 과거의 길과 정확히 일치한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때로는 국제 질서의 ‘이성’을 향해 논리적 언어를 구사해야 하고, 때로는 고도의 전략가인 트럼프의 이중 덫에 걸릴지라도 특정 개인의 ‘욕망’을 향해 심리적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이 지극히 다른 두 언어는 ‘국익’이라는 단 하나의 번역으로 완벽하게 호환된다.
이재명의 발언과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는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명분 있는 자주적 고립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비판받는 생존을 택할 것인가? 두 대통령의 박제된 모습은 대한민국의 지도자에게 주어진 길은 언제나 후자였음을 명백하게 조언과 증언을 하고 있다.
4. 선택은 이미 역사가 되었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재명의 발언과 노무현 대통령의 기록된 역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모순처럼 보이는 생존전략을 이해하고 감당할 것인가? 지도자의 선택을 단순히 변절이나 기회주의로 비판하며 과거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그 고뇌를 국가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미래를 향한 동력으로 삼을 것인가? 변조 방지를 위해 이 질문에 대통령실은 깊은 고민을 하고 공식적 답을 해야 한다.
이상과 현실, 명분과 실리, 원칙과 유연함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해야 하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국익이라는 대전제에 맞는 답을 선택해야 한다.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왕좌왕하거나 다시 좌회전 후진을 한다면 모든 진영으로부터 비난의 화살을 맞을 것이다. 비난의 화살을 대폭 줄이려면 미국에서 보여준 용기 있는 자세를 고수하길 바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두 길을 동시에 갈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운동권 이념이 배양한 감상적 오판과 평화 굿판을 거둬들이며, 오로지 국익을 위해서 그동안의 좌로 기운 인력 배치와 국가 파괴 정책을 검토하고 새롭게 더 변신하길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