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칼럼니스트 시골집 신발장을 정리하다가 앙징스럽게 작은 여자용 신발 하나를 보았다. 먼지가 내려앉은 것을 보니 딸아이도 집사람 것도 아닌, 누군가 오래 버려둔 신발이 분명하였다. 꽃무늬가 장식된 조그만 단화, 돌아가신 어머니의 신발이었다. 150미리 정도의 작은 신발은 주인을 잃은 채, 신발장 안에서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효용과 가치가 사라진 신발이 가야 할 곳은 쓰레기통이겠으나, 나는 그 신발을 어머니의 유물함에 곱게 넣었다.
어머니의 전신(全身)을 담았던 신발에서 나는 어머니의 발을 그려보았다. 어머니의 발에 대한 추억은 아주 어린 시절을 거슬러 회귀하는 연어의 모습 같은 것이었다. 어린 시절을 향해 힘겹게 올라간 추억은 연어처럼 강의 자갈밭을 찾아서 무수히 쏟아지는 추억의 산란을 남기고 있었다.
어머니는 등으로 나를 업으셨지만, 나를 재운 것은 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장자장 입으로는 ‘자장자장 우리 아가’를 부르셨지만 발은 동동동 리듬을 타고 있었다. 그 가벼운 출렁거림으로 나는 잠 들 수 있었다.
어머니는 빨래를 다듬을 때면 먼저 댓돌 위에 옷감을 올려놓고 자근자근 밟았었다. 서너 살 무렵이었으니까, 아마도 누워 엎드리면 댓돌만큼의 높이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턱을 괴고, 어머니의 발을 처음 오래도록 바라본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온 집안을 울리던 청아한 방망이 소리. 똑딱똑딱똑딱, 가부장적 인습이 지배하던 시절, 여자로서의 한과 시름과 흥이 절로 녹아나는 그 소리는 사연만큼이나 푸른 색깔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망이 치는 소리는, 아주 오랜 추억 속에서 발아하여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의 발은 밭이랑 속에서도 있었다. 보리밭을 매거나 콩밭을 맬 때, 품앗이를 하는 아주머니들과 함께 이랑을 타고 가던 어머니는 길게 발자국을 남기셨다. 지네와 같은 절지동물이 남긴 촘촘한 흔적처럼 어머니의 발자국은 이 밭에서 저 밭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흔적 위에 수많은 땀과 한숨이 스며들고 있었음을, 밭일을 마친 그 수고로운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새끼 밥 먹여야 한다고, 푸성귀 담긴 바구니 머리에 이고 밭둑을 달려오시던 어머니.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다 토요일 오후에 한번씩 들르던 시골집. 어머니를 찾으러 밭으로 가다가 저만치 달려오시던 어머니를 보곤 하였다. 그때마다 어머니의 작은 발이 무척 바쁘게 서둘러 보였던 것은 지극한 사랑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식을 바라보던 기쁨 넘치던 그 눈빛을 옮겨오던 어머니의 작은 발. 그리하여 어머니와 발은 내 추억의 원류를 흐르는, 그리움을 비유하는 유일한 객관적 상관물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시신(屍身)을 염할 때, 나는 어머니의 발에 삼베신발을 신겨드렸었다. 그때서야,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는 나를 업고 오셨음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작은 발이 옮겨온 것은 추억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70을 넘어가는 내 나이와 시인로서의 삶도 역시 어머님이 그 작은 발로 옮겨온 것이었다. 그리고 무성하게 자란 손주들도.
그 해 11월 초겨울 비가 내리던 날, 어머님은 그 작은 발로 천국을 향해 걸어가셨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어두운 저승을 걸어가실 어머니의 발걸음을 위해, 시장에서 어머님의 열명길을 인도해줄 자라 한 마리를 사서 물가에 풀어주었다. 그리곤 자박자박 걸어가시는 어머님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시도때도 없이 눈가를 훔치곤 하였다.
이듬해 4월, 집 옆 대여섯 걸음 정도 되는 쪽파밭에서였다. 돌아가시기 전, 그 해 가을에 어머니가 가꾸어 놓으신 쪽파밭이었다. 봄풀이 함께 자라고 있었다. 호미를 들고 나섰다. 가운데쯤으로 풀을 매고 가고 있을 때, 나는 문득 쪽파 포기 사이에서 희미한 발자국을 하나 발견하였다. 150미리 정도의 작은 발자국.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바라보고 만져보았던, 바로 어머니의 발이 남긴 작은 발자국이었다.
발자국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안 순간, 감전이라도 된 듯 내 등골엔 고압의 전류가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면서 떨리는 손으로 발자국을 어루만져 보았다. 그리고 발자국 위에 엎드리고 말았다. 발자국에 얼굴을 부비면서, 그리고 불효한 사람의 가슴 깊이에 그 발자국을 새겨넣으면서 사랑하는 이름을 불러보았다. 아아,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