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와 알고리즘이 국가보다 먼저 결정을 내리는 시대. 시장은 이미 헌법을 집필 중이다. 한미일보 그래픽
제2장 주식시장의 헌법 … ‘ETF와 패시브 통치의 시대’
(The Constitution of the Market)
주식시장은 더 이상 경제의 거울이 아니다. 법과 제도가 기업을 규율하던 시대가 끝나고, 지수와 알고리즘이 법을 대신한다.
이 헌법은 국가가 아니라 블랙록(BlackRock)·뱅가드(Vanguard)·스테이트스트리트(State Street), 세 운용사가 집필했다.
1. ETF와 패시브펀드 ‘시장 전체를 복제하는 통치’
ETF(Exchange Traded Fund) 시장 규모는 약 22조 달러, 그중 70% 이상이 세 회사에 집중되어 있다. 이 구조는 단순한 투자 방식이 아니라 ‘시장 전체를 복제하는 통치 메커니즘’이다.
ETF의 자금 유입은 국가의 재정정책보다 빠르게 기업의 생사를 결정한다. 지수 편입(Index Inclusion)은 더 이상 단순한 상장 규칙이 아니라, 자본의 승인 절차(Capital Approval)가 되었다.
블랙록의 운용 철학을 재구성하면 “우리는 시장을 소유하지 않는다. 다만 시장의 일부로 작동한다”이다.
ETF가 만든 이 구조 속에서 자본은 국가의 법률보다 먼저 작동한다. 시장이 법을 만들고, 국가는 그 법을 해석하는 시대, 그것이 ‘패시브 통치(Passive Governance)’의 실체다.
2. 의결권 ‘자본의 입법권’
2024년 기준, 미국 상장사 의결권의 30% 이상이 세 운용사에 집중되어 있다. 형식적으로는 ‘주주민주주의’지만, 실질적으로는 AI 알고리즘이 의결을 행사한다.
블랙록의 Voting Choice Program은 AI가 분석한 ESG, 재무, 산업 리스크, 데이터를 기반으로 표결을 자동화한다.
“AI가 대신 판단한다.”
— 블랙록 연례 보고서(2025.1)
이는 자본의 입법권이 인간에서 AI 알고리즘으로 이관되는 역사적 전환점이다. 법률이 아니라 데이터가 법적 정당성을 설계하는 시대, AI는 조언자가 아니라 ‘자본의 입법자’가 되었다.
3. AI 알고리즘 ‘새로운 헌법의 필경자’
블랙록의 알라딘 시스템(Aladdin System)은 전 세계 200여 개 기관의 자산·리스크 데이터를 매일 갱신한다. 그 프로세스는 국가의 금융감독보다 빠르고, 입법기관의 논의보다 정확하다. 즉, AI 알고리즘은 법률 밖에서 헌법을 갱신하는 필경자(Scribe)다.
AI는 단순히 시장을 해석하지 않는다. 시장의 행동을 예측(Predict)하고 규범화(Normalize)한다. 그 결과, 시장의 헌법은 국가의 헌법보다 먼저 작동한다.
“AI는 국가보다 먼저 결정하고, 국가는 그 결정을 합리화한다”
4. 시장이 만든 법 ‘국가의 무력화’
국가는 여전히 법을 제정하지만, 그 법은 시장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지수위원회의 한 줄 조정이 정부 정책보다 강한 명령이 되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추진(2025년 6월)은 주권의 행사가 아니라, 시장으로부터의 승인 청원이었다.
정치는 ‘설득(Persuasion)’의 언어로 움직인다. AI 자본은 ‘데이터(Data)’의 언어로 움직인다. 전자는 감정의 언어이고, 후자는 계산의 언어다.
그 차이가 곧 권력의 차이가 된다.
5. 비정치적 헌법 ‘AI 자본주의의 법전’
AI 자본주의는 국가를 대체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보다 먼저 결정한다.
정치는 여론을 설득하지만, AI 자본은 데이터를 설득한다. 이 체제는 ‘비정치적 헌법(Non-political Constitution)’이라 부를 수 있다.
국가는 여전히 법전을 쥐고 있으나, 그 법전은 이제 AI가 미리 써둔 주석서(Commentary)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는 법을 쓰고, 시장은 헌법을 쓴다. 그리고 그 헌법의 필경자는 AI다”
제3장 세계 3대 자본체제 … ‘블랙록·뱅가드·스테이트스트리트의 삼권분립’
(The Three Pillars of Administrative Capitalism)
근대의 국가가 입법·사법·행정으로 권력을 분립했다면, AI 자본주의는 소유(Ownership)·집행(Execution)·기록(Record)으로 권력을 재편했다. 그 중심에 블랙록(BlackRock), 뱅가드(Vanguard), 스테이트스트리트(State Street)가 있다.
이 세 회사는 단순한 자산운용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행정기관(Administrative Organs of Capitalism) 이다.
1. 블랙록 ‘집행의 권력’
블랙록은 자본의 행정부(Executive Branch of Capital)다.
1988년 래리 핑크(Larry Fink)가 설립한 이 회사는 ‘리스크 관리’를 통해 금융권력을 행정화했다.
핵심은 ‘알라딘(Aladdin)’이다. 이 AI 시스템은 전 세계 200개 기관의 자산을 매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조정한다.
정부가 아닌 데이터가 미래를 설계한다.
블랙록의 경영철학은 단순하다. “정부 없는 통치”
(Governance without Government)
전통적인 국가(정부)가 수행하던 통치 기능이 시장, 자본, 네트워크, 국제기구, 혹은 인공지능(AI)과 같은 비(非)국가적 행위자들에게 분산되고, 그들이 사실상 규칙을 만들고 집행하는 상태를 말한다. 즉, 형식상 국가는 존재하지만, 실질적 권력은 시장과 알고리즘이 행사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국가의 규제 대신, 데이터의 행정이 존재한다.
AI가 위험을 계산하고, 리스크가 곧 정책이 된다. 이 체제는 자본의 관료제이며, 인간 없는 행정이다.
2. 뱅가드 ‘소유의 권력’
존 보글(John C. Bogle)이 세운 뱅가드는 “시장을 이기지 말고, 시장 전체를 사라”는 철학으로 움직인다.
그 결과, 뱅가드는 시장 자체가 되었다. 고객이 곧 주주이지만, 책임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익명화된 민주주의(Anonymous Democracy)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장은 모든 것을 소유하지만, 그 소유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
이 ‘무책임의 민주주의(Democracy of Irresponsibility)’가 오늘날 주식시장의 헌법을 구성한다.
3. 스테이트스트리트 ‘기록의 권력’
스테이트스트리트는 자본의 사법부(Judicial Branch of Capital)다.
이 회사의 역할은 기록, 수탁, 진실의 관리다.
18세기 미국 독립기부터 금융 행정의 인프라를 담당해왔던 그들은, 이제 데이터의 진실성을 보증하는 ‘사법기관’이 되었다.
알라딘과 연동된 ‘알파(Alpha) 시스템’은 자산 거래를 넘어서, 자본의 진실을 관리한다.
진실을 기록하는 자가 곧 헌법을 쓴다.
4. 결단(Decision) 없는 민주주의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정치신학(Political Theology)’에서 말했다.
“주권자는 법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예외에서 결단하는 자다”
그러나 AI 자본주의에는 결단이 없다. 법은 살아 있으나, 예외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알고리즘은 자동으로 투표한다.
결정(Decision)이 없는 민주주의는 결국, 무책임한 자동화에 이른다.
오늘날 주식시장은 더 이상 경제의 거울이 아니다. 그것은 법 위의 법, 헌법 위의 시스템이다. AI가 입법하고, 데이터가 집행하며, 서버가 판결한다.
국가는 이 체제 속에서 권력을 잃었지만, 아직 한 가지 권리만은 남아 있다.
그것은 ‘책임을 지는 능력(Accountability)’이다.
AI 자본주의의 완성은 인간의 부재로 끝나겠지만, 문명의 지속은 인간의 책임으로만 유지될 것이다.
“국가는 다시 헌법의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기술의 시대가 끝나고, 설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제2부. 국가의 귀환… 설계의 정치학(Politics of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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