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가 사라진 자리, 도장만 남았다. 한미일보 그래픽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11월 7일)로 항소심의 형량 상향이 불가능해졌다. 여당은 ‘상소 남발 자제’를 내세웠고, 야당은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겨냥해 “환수의 길을 스스로 막았다”고 공세를 폈다.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국무회의 발언의 맥락부터 짚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 “검찰이 되지도 않는 기소와 면책용 항소·상고로 국민을 괴롭힌다”며 “일반적 지휘든 예규 변경이든 하라”고 주문했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항소·상고 제한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제도 변경을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형식상 개별 사건을 특정하지 않은 정책 지침이었으나, 대장동 1심(10월 31일) 직전의 공개 주문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지시로 기능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따라서 이 발언이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에 직접 연결됐는지에 대해 정부는 투명하게 관련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이번 결정은 국가가 스스로 법리 교정의 통로를 닫았다는 점에서 중대하다. 1심은 특경법상 배임을 배척하고 업무상배임만 유죄로 판단했으며, 사후수뢰·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등에서 무죄 또는 부분 무죄가 적지 않았다. 항소심에서 손해액 산정과 대가성 판단을 다시 세워 환수·추징 확대 가능성을 열어야 할 사건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금지가 작동해 형량 상향은 봉쇄됐고, 1심 무죄·부분 무죄의 재구성 여지도 구조적으로 축소됐다. ‘자제’라는 포장으로는 사실을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포기된 것은 재판이 아니라 국가 상소권이 지탱하던 공익의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동인은 분명하다.
첫째, 1심에서 무죄 또는 부분 무죄로 본 핵심 쟁점이 항소심에서 뒤집힐 경우, 이재명 대통령 관련 분리 기소 사건의 사실·법리 평가에 간접 파급이 생긴다.
둘째, 대장동 본류가 길어질수록 여권의 정치적 비용이 누적된다.
검찰 수뇌부와 법무부 장관은 이 두 위험을 피하려 조기 셧다운을 택했고, 그 수단이 무항소였다. 이는 검찰권을 정치 일정에 종속시킨 결정이며, ‘법리적 자제’라는 말로 미화될 수 없다.
책임의 방향은 분명하다.
구체사건 지휘는 법무부 장관에서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단일 경로여야 하고, 실무 조정은 총장 라인(대검 지휘부)이 맡는다. 지검장 단계까지 항소 방침이 올라갔다가 막판에 뒤집혔다는 정황은 수뇌부 책임을 가리킨다. “항소 실익이 낮다”는 해명은 사실의 일부만 떼어낸 변명에 가깝다. 피고인 항소로 재판은 계속되는데, 국가만 상향·확대의 길을 닫아버렸다.
법률적으로도 직권남용 소지가 크다.
장관과 총장은 검찰청법 제8조에 근거한 지휘·감독 권한을 가지지만, 그 권한이 구체 사건의 상소권 행사 자체를 정치적 필요에 따라 차단하는 방향으로 행사되었다면 직권을 위법·부당하게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 특히 상급 지휘로 인해 공판부가 보유한 법령상 상소권의 실질적 행사가 가로막혔다면 형법 제123조가 금지하는 권리행사 방해에 해당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직권남용 성립에는 ‘의무 없는 일 강요’ 또는 ‘권리행사 방해’에 관한 엄격한 요건이 요구되므로, 지휘의 목적·경위와 내부 결재 문서, 공판팀 상소권의 법적 지위가 쟁점이 된다. 본지는 이 부분을 [검증 중]으로 표기하되, 현 단계 정황에 비추어 구성요건 충족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절차 적합성에도 의문이 남는다.
공소심의위원회 개최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대검 공지와 수사팀 공식 입장 어디에도 회의 소집·의결 흔적이 없고, 유사 사안에서 개최 사실을 외부에 공표한 전례를 감안하면 미개최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이 있다. 절차를 생략하거나 무력화했다면, 이는 예규 및 내부 절차 위반 의혹과 맞닿는다.
이번 선택은 법치의 후퇴로 기록돼야 한다.
고도의 공익과 거액이 얽힌 설계형 범죄 의혹일수록 상급심 검증을 통해 판결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그마저 정치적 이해로 봉쇄한다면 남는 것은 검찰권의 자기부정뿐이다. 검찰 수뇌부와 법무부 장관은 무능과 파렴치를 감추지 말고, 결정 경위와 책임 소재를 문서로 공개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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