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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칼럼] 전두환 前 대통령 봉안(奉安), 감정보다 국가 정의로 풀어야
  • 박필규 객원논설위원
  • 등록 2025-11-20 00: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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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군도 예우하는 대한민국, 내부 갈등엔 왜 원칙이 없나?


전두환 대통령. 연합뉴스

객원논설위원·육사 40기11월23일은 전두환 전 대통령 서거 4주기(周忌)다. 그의 유해는 4년째 임시 안치된 채 장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북녘땅이 내려다보이는 전방 고지에서 백골로라도 남아 통일을 맞고 싶다”는 유지도 2023년 11월 ‘민족문제연구소 파주지부’를 비롯한 11개 파주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현행법상 자택 봉안도 어렵다. 산골 외에는 마땅한 해법이 없어 보인다. 


이 문제는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다. 역사 논쟁과 사회적 감정, 정치적 갈등이 얽혀 결론조차 내리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대립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안의 본질보다 진영 감정이 먼저 반응하는 좌우 갈등은 이미 내전 수준으로 깊어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을 막는 법적 근거는 국립묘지법 제5조와 정부 해석이다.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 혹은 “내란죄 등 중대범죄 유죄 판결을 받았던 자”는 안장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조항이 국립묘지 안장을 막고 있다. 


사면·복권이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법률상 명확한 규정이 없어 해석과 적용의 여지가 남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안현태 전 경호실장은 “사면·복권되면 국립묘지 안장 자격도 회복된다는 법무부 유권해석”에 따라 국립묘지 안장 사례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국민통합·정치적 대화합이라는 명분으로 1997년 12월 22일 특별사면과 복권이 되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지만 국가는 감정이 아닌 원칙과 품격과 정의로 움직여야 한다. 국가 원칙은 특정 시대의 정서나 정치적 호불호에 휘둘리지 않는 기준이며, 국가 품격과 정의는 국가 운영의 지속성을 지탱하는 토대다. 전(全) 대통령 봉안 지체는 우리가 국가의 기본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사례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민낯이다.


국가의 원칙과 정의가 무엇인지는 파주 적군(敵軍) 묘지가 증명하고 있다. 6·25 전쟁에서 북한군과 중국군은 명백한 적이었다. 우리는 국가의 존립을 걸고 그들과 싸웠고, 그 전쟁의 상처는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그들의 유해를 안치하고 관리한다. 이는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윤리와 국제관례, 제도적 책임을 지키려는 국가의 원칙과 정의의 선택이다. 적에게조차 원칙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지닌 제도적 성숙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적에게도 보여준 그 원칙을 내부의 갈등에는 적용하지 못하는가? 편가르기 감정 정치가 제도적 기준과 국가의 품격을 파괴하고 있다. 이제는 감정이 아니라 국가 정의라는 상위 원칙으로 갈등을 풀어야 한다.


봉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준이 필요하다. 


첫째, 전직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갖는 국가적 의전과 개인의 자격 논란을 분리해야 한다. 직위에 대한 절차적 의전은 헌정 질서의 문제이고, 개인의 안장 대상 자격 논란은 기록과 법리 해석과 정서의 문제다. 두 영역을 분리할 때 비로소 국가 정의가 바로 선다. 


둘째, 원칙의 일관성을 회복해야 한다. 동일한 사안을 진영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이중성을 벗어나야 한다. “사면·복권되면 국립묘지 안장 자격도 회복된다는 이명박 정부의 법무부 유권해석”은 전두환 대통령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 


셋째, 미래의 헌정 질서에 대한 안전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의 사후 예우가 정쟁의 도구가 되는 순간, 미래의 어떤 지도자라도 같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비정치적 의전 위원회에 의한 명확한 절차 규범을 제도화해야 한다. 


결국 이 문제는 특정 인물을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어떤 기준 위에 설 것인지에 대한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 계속 진영 논리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이중적인 이분법을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스스로 이중적 모순을 털고 국가 정의를 회복할 것인지? 국민통합·정치적 대화합 명분으로 전(全) 대통령 봉안 문제를 검토할 때다. 


전두환 전 대통령 봉안 문제는 개인이 아닌 국가의 문제다. 이제 정부와 국회의 책임 있는 결자해지가 필요하다. 정부는 논란을 이유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사후 예우 기준을 법제화해 정치적 감정에서 독립된 판단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회도 유불리 계산을 중단하고 여야 공동의 표준 의전 규범을 마련해 이중 기준을 없애야 한다. 이를 제도화하지 않으면 봉안 논란은 정권마다 재점화되는 정치적 내전이 될 것이다. 미래 갈등을 막는 게 국가 운영의 책무라면, 그 책무를 이행하는 것은 정부다.


파주 적군 묘지는 우리가 이미 국가 정의와 원칙을 지킬 능력이 있는 나라임을  말해 주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원칙을 국내 정치에도 적용하겠다는 결단이다. 정권의 감정이 아니라 국가 정의와 품격으로 결론을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내전 수준의 갈등을 넘어설 수 있고, 미래 세대에게 국가 정의라는 단단한 유산을 남길 수 있다. 


누구나 다 평등하게 죽는다. 정쟁으로 전(前) 대통령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 것은 시민단체와 위정자가 할 짓이 아니다. 


박필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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