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연합뉴스
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일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일본은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며 동아시아 전략지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 발언은 '강한 일본'을 내세우며 파격적 외교 안보 행보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왔고, 동시에 다카이치를 일본 정치권의 ‘강단 있는 지도자’ 반열로 올려놓았다. 발언의 핵심은 ‘대만 유사=일본 존립위기 사태=미·일 공동전쟁 가능성’이라는 큰 프레임을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이를 정치·지정학·군사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왜 지금 발언했는가: 정치적 의도와 ‘보통국가화’ 가속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직후 첫 국회 연설에서 “중국이 대만에 무력을 사용하면 일본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태”라고 규정했다. 이는 2015년 안보법제 이후 처음으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즉 자위대의 실전 개입을 총리가 직접 공개 언급한 사례다.
아베·기시다 정권도 ‘대만 유사=일본 유사’를 시사해 왔지만, 다카이치의 발언은 전략적 모호성을 의도적으로 걷어내고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정치적으로 정당화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그녀는 이미 방위비 2% 조기 달성, 장거리 타격능력 확보(토마호크 도입 등)을 선언해 왔고, 이번 발언은 일본 국민에게 “안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심어 ‘정치적 컨센서스’를 이끌어내는 수단이 되고 있다.
중국 팽창과 대만해협 위기 고조: 일본의 생존전략
중국은 최근 수년간 대만 주변과 동중국해에서 군사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으며, 센카쿠 영해에 대한 상습 침범도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서는 인공섬을 세워 군사기지를 구축하면서도 일본의 방어적 조치에는 과잉 반응을 보이며 ‘내로남불’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이 위협을 현실로 느끼는 이유는 명백하다.
대만이 중국에 넘어가면 미군의 제1도련선 붕괴,난세이 제도·오키나와가 최전방으로 노출,일본의 해상교통로(Malacca–동중국해–태평양)가 중국 해군 통제권 아래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일본 경제·에너지 안보의 핵심이 무너진다. 따라서 일본 지도부는 “준비되지 않은 채 전쟁에 수동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해 왔고, 다카이치 발언은 이러한 전략 현실을 국내에 각인시키기 위한 정치적 선제 신호로 이해된다.
미국과 조율된 역할분담: 미·일동맹 강화 신호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 억제를 위해 일본의 역할 확대를 지속 요구해 왔다. 2022년 일본의 안보전략 개편, 2% 방위비 계획, 장거리 타격능력 확보 모두 미국의 전략적 요구와 맞닿아 있다. 다카이치의 이번 발언은 워싱턴을 향한 메시지이다. 일본은 법적·정치적 준비가 되어 있다. 대만 유사 시 미국 단독 개입이 아닌 미·일 공동 억지체제를 유지한다. 그 대가로 핵우산 강화·미사일 방어 통합·정보 공유 확대를 기대한다. 즉, 일본은 ‘피 흘릴 각오’를 보여주는 대신 미국에게 ‘확실한 보호’를 요구하는 새로운 동맹 구조를 설계하는 중이다. 집단자위권 발동을 구체화하여 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중국의 경제 보복과 그 역효과
중국은 즉각 일본 대사 초치,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항공권 환불 조치, 여행 자제령, 일본 영화상영 금지 등 경제적 보복과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자격 부정을 거론하는 외교적 공격을 했다. 이는 2012년 센카쿠 국유화 당시와 유사한 ‘지갑외교’의 재연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미 중국 관광 의존도를 낮추어 왔고, 중국의 경제보복이 잦아지면서 일본 내 반중 정서와 강경대응 여론이 오히려 강화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과잉 반응이 “중국은 마음에 안 들면 경제로 보복하는 나라”라는 인식을 재확산시켜 일본의 보통국가화 추진을 오히려 돕는 형국이다.
지정학적 효과: 대만해협 위기 → 동중국해 ‘전구전’ 확대
일본이 “대만 유사=일본 존립위기”라고 공식 선언함으로써 전쟁 시나리오는 자동으로 확대된다. 대만 해협(해병대·공군) → 센카쿠·미야코·오키나와까지 전구 확장. 중국은 반드시 미국+일본 동시 상대를 상정해야 한다. 중국의 군사·해군 배치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일본의 장거리 미사일 도입, 미군과 공동 운용하는 기지확대는 제1도련을 중심으로 한 섬사슬(아일랜드 체인) 봉쇄전을 강화하며 중국 해군의 서태평양 진출을 차단하는 구조를 고착시킨다. 이는 중국이 가장 꺼리는 전략 시나리오이다.
국제정치적 파장: ‘재무장 일본’ 프레임과 한국·아시아에 대한 영향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의 이번 움직임을 “군국주의 부활”,“전후 제약 탈피”라고 규정하며 주변국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한편 한국·호주·필리핀·ASEAN은 일본의 역할 확대가 중국 견제에 도움된다는 실용적 판단과, 일본 보통국가화가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는 우려 사이에서 복잡한 태도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 한·미·일 안보 공조 속에서 일본 기지를 통한 미군 전력 운용, 자위대 활동 범위의 북한 주변 확대가 향후 새로운 전략 변수를 만들 수 있다.
군사적 함의로는 자위대의 해외전투군화 및 핵·잠수함 논쟁을 야기하고 대만 유사 개입은 자위대의 임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즉 일본 영토 방어 중심에서 대만 주변 해역·공역에서 실질 교전 가능성으로 확대된다. 상륙·수송·사이버·우주 등 전 영역 통합전력을 요구하며 사실상 중형급 해외전투군으로 변모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본 내부에서는 원자력 추진잠수함 보유, 장거리 타격능력 확대, NATO식 핵공유 논의가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일본 보통국가화의 가속페달을 밟은 의도적인 역사적 발언이라는 뜻인데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발언했을 리는 없다.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단순 외교적 돌출이 아니라, 일본의 보통국가화·전쟁가능국가화로 가는 본격적 정치 선언이다. 법적으로는 “대만 유사=존립위기 사태”라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조건을 구체화하였고 전략적으로는 중국에 전쟁비용을 급증시키는 강력한 억지 신호를 보낸 셈이다. 정치적으로는 일본 내부의 보통국가화·헌법개정 여론을 강화시킬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일본에게도 경제적 부담과 안보 리스크가 큰 고위험 전략이다.
그러나 이번 발언을 계기로 일본의 전략 궤도는 이미 전후 체제로부터 한 단계 더 멀어져, 새로운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핵심 축으로 재편되고 있다.
주은식 한국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