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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12·3 계엄 ‘의혹과 음모의 충돌’
  • 김영 기자
  • 등록 2025-12-03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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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혹은 검증을 요구하고, 음모론은 검증을 차단한다
  • 체제는 봉쇄를 택했고, 윤석열은 책임을 택했다
  • 12·3 사태의 본질은 내란이 아니라 ‘충돌의 구조’다

누가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 12·3 계엄 1년, 책임과 판단의 무게가 한국 민주주의에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래픽=한미일보]

12·3 계엄 1년이 되는 지금, 이 사건을 여전히 ‘내란’이라는 정치적 언어로만 규정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오해하는 일이다. 내란 자체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이 사태를 만든 구조적 충돌, 다시 말해 ‘의혹을 제기하는 자’와 ‘의혹을 제기하는 자를 음모론자로 규정하는 자’의 충돌을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취약한 지점을 놓치게 된다.

 

한국과 미국 모두 최근 선거를 둘러싸고 거대한 의혹과 거대한 반발이 동시에 존재했다. 

 

미국은 우편투표, 한국은 사전투표가 충돌의 중심이었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부정선거’라는 단어의 진위를 떠나, 근거 있는 의혹을 제기하는 집단이 존재했고, 동시에 그 집단을 음모론자라고 규정하며 봉쇄하는 권력구조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과 음모의 충돌은 제도가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라 체제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쪽의 주장이 옳으냐가 아니라, 의혹을 검증할 제도적 통로 자체가 차단돼 있다는 점이다. 

 

의심은 가능성이지만 의혹은 근거 있는 추론이다. 그리고 의혹은 검증을 요구한다. 검증을 거부하는 행위가 바로 '음모론'이다. 이 단어는 논박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는 수단이 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이 구조가 반복되면 선거제도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선거제도의 결함이 드러나는 순간, 그 책임의 무게가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선거관리위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시·도의원들까지 모두가 그 제도의 정당성 위에 서 있다. 선거제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곧 이들의 정통성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모든 사람은 언제나 음모론자로 불린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편투표 문제를 집요하게 제기했지만, 제도 개혁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선거 제도를 둘러싼 관료조직, 선거업무 종사자, 민주당·공화당 양당 구조가 형성하는 거대한 저항의 벽은 미국 대통령도 넘어서기 어려웠다. 한국에서만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선거제도를 둘러싸고 ‘검증을 요구하는 힘’과 ‘검증을 차단하는 힘’이 충돌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부의 구조적 현상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12·3 계엄은 단순히 ‘맞다·틀리다’의 정쟁이 아니라, 의혹과 음모의 충돌이 가장 극단적 형태로 터져 나온 사건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밝힌 계엄의 이유는 부정선거와 간첩 문제였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대통령직 파면에 이어 내란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으며, 지금도 영어의 몸이 되어 큰 정치적 고초를 겪고 있다.

 

그러나 그가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묻는다면, 정치적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가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검증 책임’을 수행하려 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외면하거나 정치적 부담 때문에 회피해 온 일을, 그가 정면으로 감당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히 평가받아야 한다. 


그 시도가 겉보기에 실패로 끝난 듯한 것은 아쉽지만, 이는 도리어 중요한 사실을 드러냈다. 부정선거 검증이란 것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책임이 얽혀 있어 아무도 감당하려 하지 않는 일이라는 점이다.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순간, 책임은 한 개인이나 한 기관이 아니라 체제 전체로 확산된다. 이는 곧 정치적·사회적 균열을 의미한다. ‘상자를 여는 순간 나라가 두 쪽’이라는 표현은 정치적 과장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의 실제 구조적 반응에 가깝다.

 

그 점에서 윤석열의 선택은 ‘정치적 모험’이 아니라 낡은 체제에 책임을 묻는 당연한 행위였다.

 

국가 최고책임자가 선거제도를 검증하는 일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그는 그 책무를 자신이 가진 가장 강력한 법적·제도적 수단을 통해 시도했다. 그 시도가 완전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은 책임을 피하지 않은 정치였고, 오히려 국가 지도자가 해야 할 일에 가까웠다.

 

그 선택을 비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책임을 회피해 온 역대 대통령들과, 책임을 선택한 윤석열 중 역사 앞에서 더 평가받아야 할 이는 누구인가.

 

12·3 계엄 1년. 이 사건의 본질은 내란이 아니다. 

 

의혹과 음모의 충돌, 그리고 민주주의가 가장 두려워하는 질문. 

 

“이 체제는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해답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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