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마두로가 집권했던 13년 동안 베네수엘라는 부정선거를 비롯해 온갖 불법적인 일이 자행됐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이었다. [사진=아메리카협의회(AS/COA)]
법의 실종은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들고 이미 존재하던 불평등을 악화시켜 여성들을 범죄와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도록 만든다.
니콜라스 마두로가 집권했던 13년 동안 베네수엘라는 부정선거를 비롯해 온갖 불법적인 일이 자행됐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과 아동이었다.
미국의 NGO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2023년 세계보고서에서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박해와 체포·고문·살해에 대해 다루면서 여성과 원주민에 가해지는 폭력의 실체를 폭로했다.
불법 무장 단체 판치는데 사법부는 유명무실
국민해방군(스페인어: Ejército de Liberación Nacional, ELN), 애국국가해방군(FPLN), 그리고 콜롬비아 혁명군(FARC)에서 파생된 무장 단체들은 주로 국경 지역에서 활동하며 시민에게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일상생활을 규제했다.
대표적으로 2022년 1월1일 콜롬비아 아라우카주와 베네수엘라 아푸레주에서 반군 연합체인 동부공동사령부와 국민해방군 간에 영토 장악을 둘러싼 충돌을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두 단체 모두 살인, 강제 이주, 강제 징집(아동) 등 인권 유린 행위를 자행했다.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는 “베네수엘라 보안 요원들은 ELN 전투원들과 합동 작전을 수행했으며 그들의 학대 행위에 공모했다”며 “베네수엘라 당국은 이들의 학대를 막기는커녕 이들을 반대하는 인권 옹호 단체들을 박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사법부는 일련의 사태에 나 몰라라 눈 감고 있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차베스 집권기인 2004년부터 사법부를 권력의 시녀로 길들여 왔다. 법원은 정부가 관련된 범죄에 대해서는 어떤 법적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유엔 진상조사단(Fact-Finding Mission, FFM)은 2021년 보고서에서 사법 당국의 죄상을 낱낱이 까발렸다.
그들은 △불법 체포에 대한 소급 영장 발부 △재판 전 구금 명령 △미약한 증거에 기반한 구금 유지 △고문 피해자 보호 실패 등 여러 인권 침해에 공모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광산 개발 과정에서 원주민 인권 유린
마두로 정권은 2016년 원주민과 협의 없이 14개 원주민 거주지를 포함하는 특별 광산 지역을 지정했다.
산림 훼손은 기본, 광산 인근 원주민들은 금에서 불순물을 분리하는 데 사용되는 수은 때문에 심각한 중독 증상을 겪었다. 일부 주민은 강제로 이주당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체포 후 캐나다 광산기업 골드 리저브는 베네수엘라 정부에 압류된 금·구리 광산 회수를 추진할 계획을 내비쳤다. 골드 리저브가 운영하던 브리사스 광산. [사진=골드 리저브]
휴먼라이츠워치는 정부의 묵인 아래 베네수엘라 남부의 불법 금광을 장악한 집단들이 자행한 끔찍한 학대 행위(사지 절단), 총격, 살인, 강제 노동, 성 착취를 폭로하고 있다.
일례로 2016년 3월20일 아마존 주 외딴 야노마미 원주민 공동체와 볼리바르 국군(FANB) 간의 충돌로 원주민 4명이 사망했으며 총상을 입은 16세 소년은 카라카스 군 병원에 3개월 이상 감금당하기도 했다.
또 2022년 6월에는 불법 채굴에 반대, 살해 위협을 받아온 원주민 지도자 비르힐리오 트루히요가 총에 맞아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유엔재난관리청(UN FFM)은 그해 9월 ELN을 포함한 보안군과 무장 단체들이 광산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인권 유린 행위를 언급했으며, 검문소에 근무하는 FANB 요원과 광산을 관리하는 무장 세력에 의해 여성과 소녀들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보고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낙태가 범죄기 때문에 이런 경우의 임신조차 본인에게는 낙태 결정권이 없다.
굶주림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
2022과 23년 유엔 베네수엘라 인도주의 대응 계획에 따르면 보건, 식량 안보, 물, 위생, 위생 등 분야에서 지원이 필요한 인구가 520만 명이었다.
베네수엘라의 독립 정보 플랫폼 ‘HumVenezuela’의 2022년 3월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베네수엘라인이 식량 수급에 문제를 겪고 있으며, 1090만 명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 약 430만 명이 식량 부족으로 며칠씩 굶주리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해 3월 기준 약 840만 명의 중증 환자가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었고, 900만 명 이상은 의료 물품 부족에 있으며 의료 센터의 정전 및 정수 문제와 의료 종사자들의 이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고 했다.
HumVenezuela는 “문제가 이처럼 심각한데도 마두로정부는 2017년 이후 공식 역학 데이터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고 고발했다.
정부의 무능력으로 굶주리던 사람들의 선택은 월경(越境)이었다.
베네수엘라 난민 조정 플랫폼(R4V)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약 710만 명의 베네수엘라인이 탈출을 감행해 약 590만 명이 라틴 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국가로 이동했다.
이들 중 다수는 열악한 환경에 고립되거나 난민 지위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해 다시 북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멕시코 등 중미 국가는 정부의 비자 제한으로 공식적인 이동이 불가능했다.
결국 그들이 택한 방법은 콜롬비아-파나마 국경의 위험한 정글 지대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구간이 ‘다리엔 갭’으로 불리는 정글 지역이다. 다리엔 갭은 미국 알래스카부터 아르헨티나 남단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팬아메리카 고속도로가 유일하게 끊기는 구간이다. 험한 산과 하천, 빽빽한 숲이 총 106㎞가량 이어진다.
도로도 없고 공권력도 미치지 못하는 위험한 구간이지만, 남미에서 육로로 미국까지 가야 하는 이민자들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험한 정글을 통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2021년 한해, 그것도 1월부터 10월까지만 50구의 시신이 수습됐다.
파나마 당국은 “수습된 시신은 빙산의 일각일 뿐 정글 속에서 발견되지 않은 시신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글 지대에서 기아와 고립만큼 흔한 게 여성에 가해지는 성폭력이었다. 우거진 정글에서 여성을 보호할 안전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성폭력은 위력을 동반하기에 힘적 열세에 있는 여성은 속절없이 당하는 수밖에 없다.
다리엔 갭에서 발견된 이민자들의 시신이 파나마 묘지에 매장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럼에도 정글을 건너는 사람은 2021년 약 1500명에서 2022년 1~9월에만 10만7000여 명으로 100배 이상 증가했다.
2022년 5월 기준 약 7만6000명의 베네수엘라인이 미국에서 임시 보호 지위를 획득하기도 했지만 보호 기간은 2024년 3월10일까지였다.
그해 10월12일 미국 정부는 국경을 넘어오는 베네수엘라인의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들 대부분은 멕시코로 추방됐다. 물론 공식적인 미국 이민 신청이 가능한 이들도 있었지만 이들의 수는 극히 적었다.
나라를 통채로 말아먹은 마두로 정권
유엔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유엔인권최고대표관은 2021년 마두로정부로부터 어린이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냈다.
이에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2022년 8월까지 7개 주 1700개 학교에서 21만 명의 어린이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2022년부터 2023년 학기말까지 150만 명의 아동이 식사를 배급받을 수 있었다.
전 세계 인권 플랫폼은 최근까지 베네수엘라 이주민과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한 모금을 벌여 왔다. 그러나 외부의 도움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면 경제 위기가 닥치고 국민은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한때 베네수엘라는 천연자원과 안정적인 경제 시스템을 바탕으로 중남미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다.
그러나 1999년 우고 차베스 집권 이후 기울기 시작한 국력은 마두로 집권기에 이르러 급속하게 하락했다. 2013년 마두로 취임 당시 3300억 달러(약 478조)를 넘어서던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80%까지 감소했다.
또 2018년 기준, 물가가 13만%나 증가한 초인플레이션에 석유 생산 감소, 채무 불이행(디폴트)으로 신용 등급이 ‘정크’ 수준으로 강등됐다. 인구의 70% 이상은 극빈층으로 전락해 식량 부족, 식수 부족, 의약품 부족, 생필품 부족에 시달렸다.
‘두뇌 유출’은 기본이고 770만 명이 넘는 국민이 베네수엘라를 탈출했다. 이 와중에 마두로 정부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선거를 조작하는 등 인권 침해와 부패를 자행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베네수엘라 문제는 평화롭게,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많은 사람이 “물정 모르고 한가한 소리 한다”며 고개를 젓는 중이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