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29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라크루즈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베네수엘라가 무너진 이유를 말할 때 사람들은 보통 물가 폭등이나 독재 정권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가장 먼저 깨진 것은 제도나 숫자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시간을 느끼는 방식이 먼저 무너졌다.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때 시간은 앞으로 흐른다. 오늘 일하면 내일이 조금 나아질 거라 믿고, 그래서 돈을 모으고 공부를 하고 계획을 세운다.
내일을 잃어버린 사람들
내일이 오늘보다 낫다는 믿음이 사회를 움직인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에서는 이 연결이 끊어졌다. 오늘과 내일이 이어지지 않았다. 사회는 하루하루를 그냥 넘기는 방식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가난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원래 잘살던 나라였다. 석유가 많았고 중산층도 두터웠다. 학교와 병원이 있었고 도시 생활도 안정돼 있었다. 그래서 몰락은 천천히 내려간 게 아니라, 아래로 떨어진 느낌에 가까웠다.
예전에 잘 살았던 기억이 있는 사회일수록 지금의 상태는 더 괴롭다. 사람들은 오늘을 살면서도 계속 과거와 비교당했고, 그 비교는 분노보다 체념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습관이었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월급을 받으면 일부는 쓰고 일부는 남긴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월급을 받는 날이면 사람들은 바로 은행에서 돈을 찾아 슈퍼마켓으로 갔다. 하루만 지나도 물가가 올랐기 때문이다.
돈을 집에 두는 순간 손해가 됐다. 저축은 미련한 행동이 됐고, 계획은 쓸모가 없어졌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사람들은 미래 자체를 계산하지 않게 됐다. 시간은 오늘과 내일 정도로 줄어들었다.
시장 풍경도 달라졌다. 카라카스의 일부 상점에는 가격표가 없었다. 아침과 오후, 저녁 가격이 계속 달랐기 때문이다. 점원은 물건값을 말하기 전에 휴대전화로 환율부터 확인했다.
가격은 물건에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만 정해지는 숫자가 됐다. 장보는 일은 계획이 아니라 눈치 싸움이 됐다.
“외세 탓, 식민지 역사 탓, 이전 정부 책임…”
정권은 현재의 문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자 과거를 계속 끌어왔다. 외세 탓, 식민지 역사, 이전 정부 책임 같은 말이 반복됐다.
고문에 반대하는 2019년 9월 베네수엘라 시위. [AP=연합뉴스]
과거는 돌아보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지금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됐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됐는지를 따지지 않게 됐다. 그냥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시간은 앞으로 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이 과정에서 공부의 의미도 무너졌다. 오래 공부한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사는 구조가 깨졌다. 의사·교수·엔지니어가 택시를 몰고 노점을 했다.
길거리 환전이나 중개업이, 월급보다 돈이 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직업의 높낮이가 아니라, 오래 준비할 이유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젊은 사람들은 경력을 쌓기보다 당장 현금이 되는 일을 택했다. 사회는 스스로 다음 세대를 키울 힘을 잃었다.
학교도 비슷했다. 학교 문은 열렸지만 교사가 오지 않는 날이 잦았다. 교사 월급으로는 교통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결석보다 “오늘 수업이 열리느냐”를 걱정했다. 시험은 자주 미뤄졌고 졸업 시점도 불확실해졌다. 공부는 차곡차곡 쌓이는 일이 아니라, 하다 멈추는 일이 반복됐다.
생활은 점점 오늘 중심으로 바뀌었다. 오늘 먹을 것이 있는지, 오늘 약을 구할 수 있는지가 전부가 됐다. 병원에 의사가 있어도 약이 없었다. 항생제나 만성질환 약은 귀한 물건이 됐다.
사람들은 해외에 있는 친척에게 약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약 한 통이 몇 달치 월급 값이 됐다. 국가는 제 역할을 못 했고 사람들은 인맥으로 버텼다.
전기와 물도 자주 끊겼다. 정전과 단수는 사고가 아니라 일상이 됐다. 사람들은 냉장고에 무엇을 넣을지 고민하기 전에, 오늘 전기가 몇 시간 들어오는지를 계산했다. 빨래와 요리는 하루 일정이 아니라 몇 시간 단위로 나뉘었다. 긴 계획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선거 있었지만 결과 늘 같아
밤의 의미도 달라졌다. 해가 지면 가게는 닫혔고 거리는 비었다. 사람들은 “오늘 밤은 괜찮을까”가 아니라 “어느 시간이 가장 위험한가”를 따졌다. 안전은 법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피하는 요령이 됐다.
정치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는 있었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시위도 반복됐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시간이 쌓여도 변화가 없다는 경험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정치에서 손을 뗐다. 미워는 했지만,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사회는 싸우는 단계가 아니라 그냥 버티는 단계로 넘어갔다.
결국 마지막에 남은 선택은 떠나는 일이었다. “언제 나갈 거냐”는 말이 인사처럼 오갔다. 국경은 땅의 경계가 아니라, 미래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을 가르는 선이 됐다.
국경을 넘으면 다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남은 사람에게 국가는 시간이 멈춘 공간이 됐다. 떠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현실적인 선택이 됐다.
이 영향은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다. 부모는 아이에게 꿈을 묻지 않았다. 대신 “나중에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다. 공부는 나라 안에서 잘 살기 위한 게 아니라, 나라 밖으로 나가기 위한 준비가 됐다.
베네수엘라의 문제는 단순히 가난해진 것이 아니다. 미래를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노력해도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사라진 사회는 먼저 늙는다. 분노보다 피로가 앞서고, 희망보다 체념이 앞선다.
국가는 단순히 정부가 있는 공간이 아니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내일을 계산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장치다. 그 시간이 깨지는 순간, 돈보다 먼저 인간의 존엄이 무너진다. 베네수엘라가 겪은 일은, 사회가 어떻게 조용히 패배하는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다.
시인, 역사·철학 연구자, 번역가

◆ 松山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로 전 이승만학당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 고문,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으며 ‘후크고지의 영웅’을 공동 번역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