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연합뉴스]
시진핑 체제에서 역사는 과거에 대한 해석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권력을 유지하고 미래의 방향을 규정하기 위한 국가 경영 방침이다.
중국에서 ‘역사관’이란 학문적 취향이나 사상적 차이를 뜻하지 않는다.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하면 처벌될 수 있는가를 가르는 기준이다. 시진핑이 집권한 이후 중국 사회에서 역사 문제가 유난히 민감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련 공산당 붕괴 원인은 자기 부정”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로 선출돼 2013년 3월 국가주석에 올랐다. 집권 직후부터 그는 소련 붕괴를 반복해서 언급했다.
소련이 무너진 이유로 시진핑이 강조한 것은 경제 실패보다 이념의 붕괴, 그중에서도 공산당 스스로 자기 역사를 부정한 태도였다. 공산당이 과거를 스스로 깎아내리면, 현재를 지킬 명분도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 시진핑 역사관의 출발점이다.
2013년 1월5일, 시진핑은 당 고위 간부들을 상대로 한 내부 강연에서 이후 중국 정치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기준을 제시했다. 흔히 ‘두 가지 부정 금지’로 요약되는 원칙이다.
개혁개방 이후의 성과를 근거로 개혁개방 이전, 즉 마오쩌둥 시기를 전면 부정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마오 시기를 근거로 개혁개방 이후의 노선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 발언은 공식 문건으로 즉시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당 이론지와 관영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인용되며 사실상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 원칙의 목적은 중국 공산당의 역사를 시기별로 갈라 서로를 공격하는 도구로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소련은 1991년 12월26일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15개의 새로운 독립국이 생성됐다. 소련 해체 후 사람들이 레닌 동상을 끌어 내리는 모습. [사진=위키스]
중국 공산당의 역사에는 대약진운동(1958년 시작), 문화대혁명(1966~1976년)처럼 막대한 인명 피해와 사회 혼란을 낳은 사건들이 포함돼 있다.
중국 정부 스스로도 1981년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를 통해 문화대혁명을 “당과 국가, 인민에게 가져온 심각한 재난”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시진핑은 이런 기존 평가를 뒤집지는 않는다. 다만 그 평가가 “체제 전체를 부정하는 논리”로 확장되는 것을 강하게 차단한다. 잘못은 인정하되, 그 인정이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태도다.
이 원칙은 2021년에 들어서 제도적으로 더욱 분명해졌다. 2021년은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었다. 공산당은 1921년 상하이에서 창당됐고, 2021년까지 정확히 100년이 된다.
이 해를 맞아 시진핑은 전국적인 당사 학습·교육 운동을 지시했다. 이는 단순한 역사 강좌가 아니었다. 모든 당 조직, 공공기관, 학교, 국유기업에서 공산당의 역사를 동일한 기준으로 학습하도록 하는 대규모 정치 교육이었다.
같은 해 11월16일,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에서는 ‘당의 백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적 경험에 관한 결의’가 채택됐다.
흔히 세 번째 역사결의로 불리는 이 문서는 1945년, 1981년에 이어 세 번째로 채택된 대형 역사 문서다. 이 결의는 공산당 100년을 하나의 연속된 성공 서사로 정리하면서, 특히 “신시대”로 규정된 시진핑 집권 이후의 성과를 강조했다.
경제 성장, 빈곤 퇴치, 군 현대화, 국가 역량 강화를 핵심 성과로 제시했고, 시진핑 사상을 당의 지도 이념으로 명확히 자리 잡게 했다. 이 문서를 통해 시진핑은 자신의 통치 시기를 중국 공산당 역사 속 핵심 구간으로 공식화했다.
‘역사허무주의’라는 정치적 딱지
역사관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교육이다. 2019년 11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신시대 애국주의 교육 실시 강요’를 발표했다.
이 문건은 애국주의 교육의 목표, 내용, 대상, 방식까지 세부적으로 규정했다. 당과 국가의 역사, 혁명 전통, 영웅과 열사의 정신, 국가 상징에 대한 존중이 핵심 내용으로 포함됐다. 이는 권고 수준을 넘어 각급 학교와 기관이 따라야 할 지침이 되었다.
이 흐름은 2023년 10월24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서 통과된 ‘애국주의 교육법’으로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이 법은 2024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교육이 지침에서 법으로 격상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애국주의와 역사 인식이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라 법적 의무가 된 것이다. 법 조문에는 국가 통일, 민족 단결, 국가 안보, 당과 국가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명시돼 있다.
이미 그보다 앞선 2018년 4월27일에는 ‘영웅·열사 보호법’이 통과돼 같은 해 5월1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은 국가가 인정한 영웅과 열사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부정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단순한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법적 책임이 따르는 영역으로 규정한 것이다. 역사 인물과 사건에 대한 해석의 범위를 국가가 직접 설정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드러났다.
인터넷 공간도 예외가 아니다. 2021년을 전후해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은 ‘역사허무주의’에 대한 집중 단속을 실시했다. 당의 역사와 국가의 역사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콘텐츠를 신고 대상으로 명시했고, 실제로 게시물 삭제와 계정 제재 사례가 이어졌다.
여기서 역사허무주의란 학술 개념이라기보다 정치적 딱지에 가깝다. 공산당의 공적 서술과 어긋나는 해석을 묶어 지칭하는 표현이다.
‘기억의 선택’… 희생자 수마저 변경
시진핑 역사관의 또 다른 특징은 기억의 선택이다. 중국은 항일전쟁과 난징대학살 같은 사건을 국가 차원에서 강하게 기념한다.
난징대학살은 중일전쟁 때 중화민국의 수도인 난징을 점령한 일본 제국이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을 무차별 강간하고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패잔병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항복한 중국군과 민간인 남성들을 대량 총살했다. [사진=위키피디아]
2014년 12월13일, 중국은 난징대학살 희생자 국가추모일을 공식적으로 지정해 첫 국가 차원의 추모 행사를 열었다. 이후 매년 이 행사는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희생자 수를 30만 명으로 공식 표기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사회 일부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수치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숫자 자체가 중국 내부에서는 수정 불가능한 기준으로 취급된다.
이러한 역사관이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는 배경에는 조직의 규모가 있다. 중국 공산당 당원 수는 2024년 말 기준 1억270만 명을 넘어섰다. 2023년보다 약 109만 명 증가한 수치다.
기층 당 조직은 약 525만 개에 이른다. 학교·마을·기업·병원·연구소까지 거의 모든 생활 공간에 당 조직이 존재한다. 역사관 교육과 점검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다.
시진핑 체제의 역사관은 과거는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며, 그 관리는 현재의 통치와 미래의 국가 목표를 위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시진핑 체제에서 역사는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법과 교육, 조직과 검열을 통해 계속 작동하는 현재형 권력이다.
이 역사관은 중국을 하나의 방향으로 묶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역사 해석의 자율성을 크게 제한한다. 시진핑의 역사관은 다원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통일된 기억, 통제된 서술, 일관된 평가를 요구한다. 그것이 중국 공산당이 소련의 길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며, 시진핑이 구축한 역사 정치의 핵심이다.
시인, 역사·철학연구자

◆ 松山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로 전 이승만학당 이사를 지냈으며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 고문,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으며 ‘후크고지의 영웅’을 공동 번역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