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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요희 한미칼럼] 무기 선고는 전근대적 정치보복 행위
  • 임요희 기자
  • 등록 2026-02-20 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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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가슴에 못 박으면 자기 가슴에 대못 박힌다”

철스1세

지귀연 판사는 19일 선고에서 “대통령 처벌 가능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로마시대부터 영국의 찰스1세를 소환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21세기 대통령과 17세기 왕을 같은 위상에 둔다? 이것부터가 패착이다. 대통령과 왕을 비교한다는 자체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아닌가.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심판 받는다


왕은 종신제지만 대통령은 4년에 한 번씩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선거’라는 엄연한 국민심판제도가 있는데 어떻게 대통령과 왕의 위상이 같을 수 있는가. 대통령은 통치하지만 군림하지 않는다. 

 

반면 왕은 백성 위에 군림하며 왕위는 계승된다. 한 번 물려 받으면 죽을 때까지 해 먹는 게 왕이다. 나랏일을 못 해도 억지로 끌어 내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어서 목숨을 걸고 반역이나 해야 교체할 수 있다. 

 

찰스1세까지 갈 것도 없이 조선만 해도 광해군, 연산군처럼 일 못 해서 도중에 끌려 내려온 예가 존재한다.

 

물론 지귀연 판사는 의회를 겁박한 죄를 찾느라 17세기 영국 왕을 들먹였을 터다. 그런데 그때 의회가 어디 제대로 된 의회인가. 

 

현대적 의미의 의회 민주주의가 탄생한 게 영국의 권리장전(Bill of Rights) 이후인 1689년이다. 찰스1세(1600~1649)는 의회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 전 “왕권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며 마구잡이로 왕권을 휘두르던 인물이다. 

 

그때는 그런 시기였다. 국민의 대표들은 절대우위에 있는 왕권을 견제하고자 하고, 왕은 조상님들이 하던 대로 ‘찐 왕노릇’을 계속하고 싶어 했다. 한마디로 주도권 다툼의 시기였다. 

 

찰스1세는 ‘왕은 법 위에 있다’며 이미 폐지된 조세를 부활시키거나, 측근들에게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결국 왕당파와 의회파 간 싸움이 벌어졌고, 의회파 수장이던 올리버 크롬웰이 행정수반이 되면서 찰스1세는 1649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왕 목 자른 크롬웰, 부관참시 신세


찰스1세가 처형된 후, 영국은 왕 없는 공화정으로 운영됐는데 크롬웰이 정치를 잘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헌법을 무시하고 의회를 해산하더니 왕처럼 군림하며 10년간 엄격한 군사독재를 실시했다. 호국경(Lord Protector)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그도 왕이나 다름없었다. 

 

크롬웰은 1658년 말라리아로 사망했는데 왕정이 복고되면서 시신이 파헤쳐져 참수되고 머리가 기둥에 매달리는 끔찍한 부관참시를 당했다.

 

크롬웰의 지독한 독재에 몸서리가 처진 영국인들은 망명 가 있던 찰스 2세(찰스 1세의 아들) 를 왕으로 추대하며 왕정복고(스튜어트 왕조)를 실현했다. 그리고 그 뒤를 제임스2세가 이었는데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개신교 신자인 딸 부부에 의해 폐위돼 프랑스로 망명하게 된다.

 

그가 떠난 후 의회는 권리장전을 채택해 왕권을 제한하고 의회 중심의 입헌군주제 기틀을 마련했다. 다시는 왕이 왕권을 마구잡이로 휘두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권리장전 이전인 찰스1세 때는 제도의 미비로 의회가 제대로 된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찰스1세 축출 사건은 역모 수준의 내란을 통해 왕을 단두대에 세운 것이기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의 선고문에 끼워 맞추는 것은 억지다. 

 

찰스1세가 살던 17세기만 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산(토지)을 소유한 남성만 유권자가 될 수 있었다. 모든 성인 남녀가 1인1표를 행사할 수 있는 21세기에 들 예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실패한 계엄에 대해 탄핵이라는 대가를 치뤘다. 사형 구형까지 갈 게 무엇이며 무기징역 선고는 또 무엇인가. 

 

이번 무기징역 선고는 전근대적 정치적 보복행위로서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언제고 자기들 가슴에도 그보다 긴 대못이 박힐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든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다. 

 

지귀연. 참 독특한 이름이다. 귀하게 살라고 해서 지어준 이름일 텐데, 찰스1세 예를 든 것이며 이번 판결은 얕고 성급했다.

 

임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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