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9년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19.6.30 [사진=연합뉴스]
26일 공개된 조선중앙통신의 노동당 제9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는 북한의 대외 전략 방향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드러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존중한다면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며 북미 관계 개선 여지를 열어두는 한편, 한국에 대해서는 “동족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며 강경한 단절 메시지를 내놨다.
북미에는 조건부 대화의 문을 남기고 남북에는 협상 공간을 닫는 전형적인 ‘통미봉남’ 구도가 다시 확인된 셈이다.
이번 메시지의 핵심은 발언 내용보다 형식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인 담화가 아닌 당대회 보고라는 최고지도기관의 공식 문서에서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재확인했다는 점은 남북관계의 방향을 일시적 전술이 아니라 구조적 전략으로 고정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는 남한을 협상 당사자에서 배제하고 북미 직접 구도를 강화하려는 신호로 해석된다.
대미 메시지와 대남 메시지의 온도 차도 뚜렷하다.
미국에는 관계 개선 가능성을 언급하며 협상 여지를 남겼지만, 한국에는 “상론할 일 자체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북한이 협상 채널을 하나로 좁히는 방식으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남한의 역할이 커질수록 북미 협상에서의 지렛대가 약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기조와의 충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 정부는 평화 공존과 긴장 완화를 강조하며 대화 재개의 공간을 확보하려는 접근을 이어왔지만, 북한은 이를 “기만극”으로 규정하며 정면으로 부정했다.
북한이 대화 의지가 강한 정부를 상대로 초기 수위를 높여 협상 기준점을 끌어올리는 패턴을 반복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메시지는 돌발적 도발이라기보다 계산된 압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군사적 표현의 강도 역시 이전보다 높아졌다.
김정은은 선제공격 개념을 포함한 물리력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며 “한국의 완전 붕괴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실제 군사 행동의 예고라기보다 억제와 심리전 효과를 동시에 노린 언어라는 분석이 많지만, 발언 수위 자체가 시장과 외교 환경에 미치는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의 위협 메시지는 단순한 군사적 신호를 넘어 투자 심리와 환율, 대외 협상 환경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메시지는 한반도 정세의 무게 중심이 다시 북미 축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이 긴장 완화와 대화 공간 확대를 시도할수록 평양은 남한을 협상 구조 밖으로 밀어내며 군사적 긴장 수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미봉남 전략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선택할 가장 현실적인 수단은 대남 군사 긴장의 단계적 강화일 가능성이 크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북한의 선택은 외교가 아니라 압박이고, 그 압박의 통로는 남한을 향한 군사 긴장이다.
총성이 울리지 않아도, 위협의 언어만으로도 한국 경제는 이미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