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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합의 없는 국회, 관행만 남았다
  • 김영 기자
  • 등록 2026-02-26 15: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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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행이 권한이 되는 순간, 합의 정치는 사라진다
  • 법사위는 입법의 문지기인가, 정치의 마지막 방패인가
  • 광주전남·대구경북 논쟁이 드러낸 국회 권한 구조의 역설

24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남·광주 통합특별시 설치를 위한 특별법안이 통과에 항의하며 퇴장해 빈자리가 보이고 있다. 2026.2.24 [사진=연합뉴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대구경북 행정통합특별법을 보류하고 광주전남 특별법만 의결한 사건은 단순한 지역 갈등으로 치부하기에는 의미가 가볍지 않다. 

 

이번 논쟁의 본질은 특정 지역의 이해득실이 아니라, 국회 권력 구조가 어디까지 변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합의 부족을 이유로 법안을 멈출 수 있다면, 그 합의를 판단하는 기준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지금 정치권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법사위의 본래 역할은 명확했다. 체계와 자구를 점검하고, 위헌 여부를 검토하며, 입법 과정의 마지막 기술적 관문을 맡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법사위는 오랫동안 ‘마지막 협상 테이블’로 기능해왔다. 여야가 첨예하게 충돌할수록 법사위는 속도를 늦추고 타협을 유도하는 장치로 작동했다. 

 

이 관행이 일정 부분 수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국회가 합의를 전제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2대 국회에 들어서며 상황은 달라졌다. 

 

입법 속도는 빨라졌고, 다수 의석 중심의 정치가 강화됐다. 상임위 단계에서 충분한 합의가 축적되지 않은 채 법안이 밀려오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법사위가 ‘합의 부족’을 이유로 제동을 거는 장면이 이전보다 훨씬 정치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합의 정치가 약해졌는데도, 합의를 전제로 만들어진 관행만 그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합의를 전제로 작동하던 국회의 관행은 어느 순간부터 전제가 사라진 채 껍데기만 남았다. 

 

상임위 단계에서는 일방독주와 강행 처리가 반복되는데, 마지막 관문에서는 다시 ‘합의 부족’이라는 명분이 등장한다면 그 판단 역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합의가 존재할 때는 관행이 균형 장치로 기능했지만, 합의가 사라진 환경에서는 관행이 오히려 권한의 비대화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한다. 

 

문제는 특정 법안의 찬반이 아니라, 강행은 한쪽에서 이루어지고 제동은 다른 쪽에서 걸리는 구조 자체다. 

 

결국 유불리에 따라 합의와 관행이 선택적으로 호출되는 순간, 국회는 절차적 정당성보다 정치적 계산이 앞서는 공간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광주전남 특별법을 둘러싼 ‘20조 지원’ 논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문제는 재정지원 규모 자체보다, 어떤 법안은 합의가 충분하다고 판단되고 어떤 법안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되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있다. 

 

합의라는 이름이 정치적 선택의 언어로 쓰이기 시작하는 순간, 법사위는 법률 심사 기관이 아니라 입법의 문지기로 보이게 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공방을 넘어선 사법적 기준의 확인이다. 

 

합의 여부라는 정치적 판단이 입법 절차의 정지 사유로 사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행사되는 권한의 범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는 결국 헌정 질서 안에서 정리될 문제다. 

 

국회 내부의 힘의 논리로만 해결하려 할수록 논쟁은 반복될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가 정당한 권한 행사인가를 사법적 판단의 영역에서 분명히 하는 일이다.

 

물론 법사위를 완전히 무력화하는 해법도 위험하다. 

 

국회에서 마지막 제동 장치가 사라질 경우, 입법 권력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합의 정치가 약화된 상태에서 관행만 유지되는 구조 역시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합의가 전제였던 권한을 합의 없는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결국 제도 자체의 신뢰를 갉아먹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국회가 직면한 질문은 간단하지만 무겁다. 

 

법사위는 입법을 정리하는 기술적 기관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 균형추로 남을 것인가. 

 

어느 쪽이든 선택은 필요하다. 합의 없는 국회에서 관행만 남겨두는 것은 제도의 안정이 아니라 혼란을 키우는 길이기 때문이다.

 

전국 단위로 선출된 대통령이 사법 심판의 대상이 되는 시대라면, 집합 권력을 가진 국회 역시 권한의 경계에 대한 헌법적 판단에서 예외일 수 없다. 

 

대표성은 책임을 면제하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더 엄격한 절차적 정당성을 요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되고 국회는 안 되는가”라는 질문은 특정 인물을 향한 구호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기준의 문제다. 

 

권력의 무게가 같지 않다면 책임의 방식도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책임 그 자체가 사라지는 순간, 대표성은 민주주의의 방패가 아니라 정치의 면죄부로 변하게 된다.

 

관행은 권한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권한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합의가 있을 때는 관행이라 부르고, 합의가 없을 때는 권한이라 부르는 정치라면 국회의 절차는 더 이상 중립적일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 지역을 둘러싼 공방이 아니라, 국회 권한 구조를 다시 묻는 냉정한 자기 점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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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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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2-26 20:43:58

    어차피 독재정치인데 불가능한게 무엇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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