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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 판결 ‘모순투성이’ 베스트 ③‘독재’를 막기 위한 계엄이 ‘독재’보다 잘못됐다?
  • 임요희 기자
  • 등록 2026-02-26 20: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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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왼쪽)와 지귀연 판사. 

이번 재판에서 지귀연 판사는 역사를 끌어오거나 비유를 드는 일이 많았다. 

 

“대통령도 처벌 가능하다”는 증거를 찾으려니 로마 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17세기 잉글랜드까지 샅샅이 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않았던 시절의 예만 나열해 대통령 판결의 설득력은 더더욱 떨어졌다. 

 

황제 칙령의 바탕에는 로마 시민의 지지가

 

지 판사는 “로마 시대에는 국가의 기본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내란죄로 처벌했지만, 황제 시대에 이르러 황제에 대한 반역 행위까지 내란죄로 처벌하게 되었다”고 했다. 

 

로마의 정치제도는 △왕정(BC 8~6세기) △공화정(BC 6~1세기) △제정(BC 1세기~AC 5세기)의 변화를 거쳤다. 지 판사가 말한 황제 시대가 제정로마시대다. 

 

제정로마시대에는 5현제 시대를 비롯해 유능한 황제들이 나라를 통치해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구현하고 최대 영토를 기록하며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또 로마법을 제정해 제국 내 민족에게 적용했는데 이는 유럽 법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 시절 황제는 입법, 행정, 사법의 최종 권한을 행사했는데 칙령(Edicta)이라 해서 황제의 명령이 곧 법이 되었다. 당연히 황제에 대한 반역은 국헌 문란 행위로서 내란죄 처벌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이 시기 황제들이 전횡을 누리면서 칙령을 남발한 게 아니다. 5현제 시대의 경우 황제는 능력 있는 자를 양자로 삼아 황제를 물려주어 정치적 안정을 유지했다. 황제의 칙령이 곧 법이었지만 그 판단은 현명하고 믿을 수 있는 것이어서 로마시민은 평화를 누렸다. 요는 황제의 권위 뒤에는 로마시민의 인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지 판사는, 뒤를 이은 중세 시대에도 이러한 성향은 여전했다며 그러다가 영국에서 의회가 생기고, 의회가 200가지 잘못을 시정해 달라는 취지의 결의문을 내자 이에 분노한 찰스1세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의회의사당에 난입해서 그 자리에서 의회를 강제로 해산시켰다고 전했다. 

 

이어 “이러한 내전을 통해서 결국 찰스1세는 반역죄 등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며 “이때 판결을 살펴보면 왕이 국가에 대해서 반역을 하였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정한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지 판사는 “이때부터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의회에 대한 공격을 하는 것은 왕이라 하더라도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어 반역죄가 성립한다는 개념이 널리 퍼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결국 “의회를 공격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 처벌로 이어지는지 말하기 위해 그는 로마-중세-근세의 역사를 끌어온 것이다. 정말 그는 이런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 걸까. 

 

의회 해산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독재 정치

 

그럼 의회파 군사를 이끌고 왕당파를 격파한 올리버 크롬웰은 의회를 잘 이끌었을까.

 

찰스1세를 처형한 크롬웰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653년 4월20일, 군대를 이끌고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의사당에 난입하여 당시 집권 중이던 잔부 의회(Rump Parliament)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1649년 1월30일 찰스1세를 처형한 크롬웰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653년 4월20일, 군대를 이끌고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의사당에 난입하여 당시 집권 중이던 잔부 의회(Rump Parliament)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의회가 군부의 요구를 묵살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의 새로운 의회 구성법을 통과시키려 하자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크롬웰은 무장한 병사들을 이끌고 의사당에 난입한 후 의원들을 향해 “당신들은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그동안 해온 좋은 일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제 그만 가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떠나라!”며 해산을 명령했다.

 

토머스 해리슨 소장이 윌리엄 렌달 의장을 의자에서 끌어 내렸고, 병사들이 의원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의회를 해산한 크롬웰은 1653년 12월, ‘통치장전’에 따라 호국경(Lord Protector)에 취임하여 무시무시한 군사 독재를 시작했다. 그는 “왕보다 더한 독재자”라는 비난을 들었다.

 

크롬웰은 1658년 말라리아로 사망했는데 그의 지독한 독재에 몸서리가 처진 영국인들은 망명 가 있던 찰스 2세(찰스 1세의 아들)를 왕으로 추대하며 왕정복고(스튜어트 왕조)를 실현했다. 

 

그리고 왕이 된 찰스2세는 이미 죽은 크롬웰을 땅에서 파내 참수한 뒤 그 머리를 기둥에 매달아 온 백성이 보도록 했다.

 

자, 이제 찰스1세가 사형당한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의회를 해산시켰기 때문에 사형당한 게 아니라 기득권 싸움에 밀려 단두대에 올랐다. 

 

백성 입장에서도 찰스1세라는 존재가 그렇게 몸서리쳐지는 존재였다면 굳이 망명간 왕자를 다시 찾아와 왕위에 올릴 이유가 없었다. 

 

찰스1세도, 크롬웰도 의회를 해산시켰다. 여기서 의회 해산은 수단에 불과하다. 백성을 비탄에 빠뜨린 것은 의회 해산 그 자체가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독재정치’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목적은 결코 의회 장악이 아니었다. 그는 국회의원을 해치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이유도 없었다. 단지 부정선거를 통한 ‘일인 독재’ ‘일당 독재’를 막고자 했을 뿐이다. 그 수단으로서 국회에 270명의 비무장 병력을 보냈다. 

 

‘독재’를 막기 위한 계엄이 ‘독재’보다 잘못됐다는 게 말이 되나. 부정선거를 가리켰는데 그것을 가리킨 손가락만 물어뜯는 검찰과 경찰, 법원이라니….

 

임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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