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귀연 판사 [연합뉴스 사진 합성]
길을 가는 사람에게 경찰이 갑자기 수갑을 채운 후 “네가 저 가게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한다면 이보다 황당한 일이 없을 것이다.
증거를 찾는 것은 경찰의 일인데 다짜고짜 행인에게 죄짓지 않은 증거를 대라니….
심지어 “저 물건을 네가 속으로 탐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네가 그것을 욕심내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라”고 관심법을 적용한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 1심 선고가 그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원래 불가능한데 가능하다?
먼저 지귀연 판사는 “재직 중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원래는 불가능한데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대통령에 대한 불소추 특권이 명시돼 있다. 불소추 특권이란 재직 중 내란, 외환죄를 제외하고 형사상의 소추(기소)를 받지 않는 권리로 국가원수로서의 원활한 직무 수행 보장을 위해 재직 중 수사와 재판을 중단할 수 있는 특권이다.
우리나라 형법에 따르면 내란죄가 성립되려면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즉 헌법 기관을 무력화하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또 한 지역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위력을 가진 폭동을 일으켜야 한다.
하지만 계엄 시 국회는 조금도 무력화되지 않고 제대로 잘 열렸다. 또 어떤 지역의 평온이 깨질 만한 폭동도 없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했을 뿐 결코 내란죄라 부를 만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 판사는 “우리 헌법상 불소추 특권은 대통령 직책의 원활한 수행을 보장하는 데 그 취지가 있다”면서도 “이와 관련이 없는 수사까지 모두 제한하려는 취지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 자체가 불소추 특권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무슨 말을 이리 비비꼬아 놓았는지. 쉽게 말하면 계엄은 윤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이 없는 일이라서 수사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분명히 12·3계엄은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 수행 중에 행한 직무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지 판사는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대통령직 수행과 관련이 없는 일에 대한 수사”라는 억지스러운 궤변을 늘어놓았다.
검찰과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는 불가능한데 가능하다?
또 지 판사는 “검찰청법에 의하면 검찰은 원칙적으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서만 수사 개시가 가능하다”면서도 검찰의 수사권을 인정했다.
검찰은 과거 6대 범죄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부패범죄(뇌물, 알선수재 등) △경제범죄(사기, 배임, 횡령 등)에서 최근 두 가지 ‘부패범죄’ ‘경제범죄’와 관련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한 것만으로 수사권이 축소됐다.
대통령이 당연히 행해야 할 직무를 직권남용으로 몰아간 것도 황당하지만 심지어 계엄은 검찰 수사권 허용 범위인 부패범죄, 경제범죄도 아니었다.
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권과 관련해 “공수처법에 의거해 공수처도 원칙적으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에 대해서만 수사를 할 수 있을 뿐, 고위 공직자 등의 내란죄에 대해서는 수사를 할 권한이 없도록 되어 있다”면서도 “예외적으로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를 할 권한이 있다”고 공수처의 수사권을 인정했다.
아울러 “공수처가 어떤 고소·고발 사건을 수리했을 때 열거된 죄 중에 공수처가 수사 권한이 없는 범죄가 포함되어 있을 때 무조건 수사권이 있는 경찰로 보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효율적인 수사·수사 경제를 저해하지 않으면서 피의자의 방어권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가 되지 않는다면, 공수처의 수사권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가슴 졸이며 재판을 지켜보던 국민은 처음에 “어, 무죄인가?” 했다가 나중에 앞의 말을 뒤집고 마는, 지 판사의 이현령비현령 판결 때문에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검찰과 공수처에 수사권이 없다면서도 수사권이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내란죄 수사권 없는 공수처가 대통령을 내란죄로 몰아 수사한 게 진짜 수상한 일이고 수사받아야 할 일 아닌가.
“잘 나가다가 샛길로 빠진다”는 속담은 19일 선고를 두고 한 말이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