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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시선 [1] “겨울 햇살 오래 품은 감처럼”… 나호열 ‘스피커들 1’
  • 나호열 시인
  • 등록 2026-03-05 12: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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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커들 1

 

아침 뉴스는

입김처럼 허공에 떠서

서로의 얼굴을 가린다

사람들은

자기 말이 따뜻하다고 믿지만

거리에는

식지 않는 말들의 재만 쌓인다

시장통 끝

찌그러진 의자에 앉아

어제 떨어진 감 하나를

주워 닦는다

감은 말이 없다

그러나 겨울 햇살을 오래 품고 있다

누군가는 큰 목소리로 정의를 말하고

누군가는 더 큰 목소리로 분노를 판다

말은 많아졌는데 사람의 숨결은

점점 짧아진다

오늘도 나는

혀끝에서 맴도는 문장 하나를

주머니에 구겨 넣는다

이런 차라리 말을 아껴

나무 한 그루를 심는 편이 낫겠다

입김은 사라지고

나무는 겨울을 견딘다

말 많은 세상에서

모른 척 침묵의 뿌리를 내린다

조용히 

그늘이 되기를 기다린다.





◆ 나호열 시인

 

시인, 철학박사, 하모니카 연주자, 전 경희대 교수. 피난지인 부산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서울 정릉에 정착.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우울한 청소년기를 지나며 실존주의 철학에 매료되어 철학을 전공으로 삼았다. ‘울타리가 없는 집’(2023), ‘안부’(2021), ‘안녕, 베이비 박스’(2019), ‘예뻐서 슬픈’(2019),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2017), ‘눈물이 시킨 일’(2011) 등 14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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