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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보 심층기획 –❸] 죽음을 소비하는 사회… 5·18 ‘기억의 제도화’와 ‘진실’
  • 김영 기자
  • 등록 2025-07-31 10: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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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가 정한 진실은 진실인가
  • 제도화된 기억,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 기억은 애도인가, 권력의 무기인가
5·18 민주화운동은 이제 단순한 지역 기억이나 저항의 상징이 아니라, 대한민국 헌정 질서와 정치적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억'은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다. 이번 기획은 "국가가 정한 진실은 진실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5·18을 둘러싼 제도화된 기억이 어떻게 '죽음'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검토한다. <편집자 주>

5.18기념식에 참석한 여야 대표 2023.05.18  

목차

1. 안동댐 시랍 시신과 음모론, 인간 심리의 그림자

2. 세월호 10주기, 기억이 권리 아닌 권력으로 바뀌다

3. 5.18 기억의 제도화 , 국가가 정한 진실은 진실인가

 

“5·18은 민주주의의 뿌리입니다.” 


매년 5월,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이 말을 반복하며 광주를 찾는다. 헌화, 묵념, 성명 발표, SNS 게시물. 모든 요소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추모와 선언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을 더 묻게 된다.


우리는 진실을 기억하는가, 아니면 기억된 진실을 믿는가?


5·18은 본래 시민들의 항거와 계엄군의 폭력적 진압이라는 극단적 충돌 속에서 발생했다. 그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와 조작의 벽을 넘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후 진상규명위원회, 특별법 제정, 국가 기념일 지정, 교육과정 반영 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 5·18은 국가가 공식 승인한 ‘정의로운 기억’이 되었다.


그러나 기억사회학은 말한다. “기억은 제도화되는 순간, 권력이 된다”


현재 5·18 유공자 명단은 법률상 비공개다. 보훈처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며, 선정 기준 또한 구체적으로 공표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일부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유공자 선정의 정당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유공자 지위의 진위를 둘러싼 허위등록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제도화된 기억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는 단지 ‘명단 논란’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가 정한 기준에 따라 누구는 기억되고, 누구는 배제되는 구조 자체가 문제다. 공식 기념식에 초청되지 못한 유족,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 정치적 목소리를 낸 이유로 배제된 증언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종종 ‘망각된 피해자’로 불린다. 국가기록원과 유족 증언에 따르면, 공식 집계와 실제 희생자 수 간 불일치가 존재하고, 일부 유가족 단체는 특정 사건을 문제 삼았다는 이유로 공식 행사에 배제되기도 했다.


현행법상 5·18과 관련된 주요 특별법은 세 가지다. 1990년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법’, 2002년의 ‘5·18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그리고 2018년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이다. 


이들은 진실 규명, 피해 보상, 유공자 예우라는 목적을 내세우지만, 동시에 '국가가 승인한 진실'을 제도적으로 고착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과거 자유로운 학문적 검증과 토론이 가능했던 영역도, 현재는 일부 조항에 따라 ‘허위사실 유포’로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예컨대, 5·18 북한군 개입설은 2020년 제정된 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실 무근'으로 결론 났음에도, 여전히 일부 정치권과 커뮤니티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정부는 이를 '역사 왜곡'으로 간주해 처벌하고자 하나, 일각에서는 "국가가 정한 진실만을 강제하고 있지 않은가"란 반론이 존재한다.


더욱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도 존재한다. 계엄군 발포 명령의 최종 책임자는 여전히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신군부에 협조했던 다수 인사들—특히 당시의 행정·군·정보라인 인사들—은 제대로 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2023년 국가보훈처 보고서와 2024년 5월 당시 유족회 성명에 따르면, 사망자 명단의 정확성과 일부 누락 의혹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매년 5월 18일이면 광주를 찾는다.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정신 계승’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으로 계승하는 것은 광주의 정신인가, 아니면 정치적 정당성인가?


이 현상은 '죽음의 소비'라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죽음은 공공의 트라우마로 공유될 때, 강력한 감정 동원을 일으킨다. 미디어는 이를 콘텐츠로 재가공하고, 정치인은 정당성 확보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추모 콘텐츠를 상단에 노출시키고, 포털은 주요 뉴스를 ‘광주’로 채운다. 광고는 따라붙고, 후원은 이어진다.


정치적 죽음은 언제나 감정을 전제한다. 감정은 투표로 이어지고, 슬픔은 프레임이 된다. 하지만 그 감정이 정교하게 설계되고, 재현되고, 강화되는 순간—우리는 '진실'이 아니라 '설계된 진실'을 소비하게 된다.


기억은 애도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지금의 기억은 종종 정당성의 방패이자, 정치적 호출의 도구로 변모하고 있다. 이 프레임에서 벗어난 비판은 ‘망언’으로 낙인이 찍히며, 다르게 묻는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당한다.


죽음을 소비한다는 것. 그것은 단지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죽음을 통해 이익을 얻고, 정당성을 강화하며, 반대자의 입을 막는 것이다. 추모는 반복되고, 행사와 상징은 점점 더 정교해지지만, 그 반복 속에서 진실은 지워지고, 기억은 무기로 변한다.


다시 묻는다.

우리는 누구의 죽음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누구의 죽음을 소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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