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한 잉여가치 개념이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설명한 분업과 시장의 원리는 문학을 통해 세상에 전달된다.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가 묻고 답하다’(이경태, 2023) 표지 중에서. 박영사
사상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개념으로 출발한다. 철학자의 문장 속에서 정리되고, 학자들의 논쟁 속에서 다듬어진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한 잉여가치 개념이나,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설명한 분업과 시장의 원리는 처음에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이론이었다. 이 단계에서 사상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널리 퍼지지는 않는다. 이해하려는 의지와 훈련이 필요한 영역에 머문다.
그러나 사상은 오래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더 넓은 통로를 찾아 내려온다. 그 핵심 통로가 문학이다.
추상적인 개념을 인간의 삶으로 바꿔놓는 힘 ‘문학’
문학은 추상적인 개념을 인간의 삶으로 바꿔놓는다. 추상적인 이론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바꾸고, 인물의 선택과 갈등 속에 녹여낸다. 독자는 이론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특정한 시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19세기 유럽 문학은 이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은 탄광 노동자의 삶을 통해 계급 갈등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독자는 노동 문제를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에 가까운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나 ‘하드 타임스’ 역시 산업사회에서의 빈곤과 불평등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독자의 판단 기준을 형성한다. 이 작품들을 읽은 사람은 더 이상 빈곤을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사회 구조라는 틀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러시아 문학에서는 이 흐름이 더욱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는 혁명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노동자의 각성과 투쟁은 단순한 이야기 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방향 제시다.
독자는 개념을 배우지 않아도 이미 특정한 세계관에 접속하게 된다. 반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악령’은 혁명 사상의 위험성을 묘사하면서 또 다른 방향의 판단을 제시한다. 같은 시대, 같은 문제를 다루면서도 문학은 서로 다른 사상을 전달한다.
이 단계에서 사상은 중요한 변화를 겪는다. 그것은 더 이상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공감의 대상이 된다. 독자는 논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인물의 고통, 선택, 실패를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 기준은 다시 언어를 바꾼다.
문학을 통해 형성된 판단은 일상 언어로 내려온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잉여가치’ 같은 말을 쓰지 않는다. 대신 “착취당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계급 구조’는 몰라도 “약자는 보호받아야 한다”라는 문장은 자연스럽게 쓴다. 이 순간 사상은 완전히 형태를 바꾼다.
언어는 사상을 규정하는 틀이다
이 변화는 20세기 문학에서도 반복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전쟁과 개인의 선택을 다루면서 개인의 책임과 결단이라는 감각을 독자에게 심어준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대공황 시기의 농민을 통해 사회 구조와 경제 문제를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작품은 발표 직후인 1939년 미국 사회에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노동과 빈곤을 바라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었다.
언어와 사상의 관계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은 조지 오웰의 ‘1984’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뉴스피크’는 단순한 언어 개혁이 아니다. 사고를 제한하는 도구다.
단어가 사라지면 개념도 약해진다. 표현이 제한되면 판단의 범위도 줄어든다. 오웰은 언어가 사상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사상을 규정하는 틀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점은 실제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소련에서는 ‘동지’ ‘인민’ ‘반동’ 같은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표현들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이었다. 누가 ‘인민’이고 누가 ‘반동’인지에 따라 평가가 달라졌다. 언어가 곧 세계를 나누는 도구가 된 것이다.
이제 사상은 완전히 다른 단계에 들어선다. 개념에서 시작해 문학을 거쳐, 생활어로 굳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을 사상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냥 상식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그런 거다” “다 그렇게 한다”는 말은 논증이 아니라, 이미 내면화된 기준의 표현이다.
특정 단어가 상식의 세계로 진입할 때
한국 근현대 문학에서도 같은 흐름이 반복된다. 해방 이후 현실 참여 문학은 사회 문제를 지속적으로 강조했고, 특정 표현들이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일상 언어로 자리 잡았다.
“억압” “해방” “민중” 같은 단어는 문학을 통해 확산되었고, 이후에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사용되는 표현이 되었다. 이 단어들을 사용하는 순간, 사람들은 이미 일정한 방향으로 판단을 내리게 된다.
결국 생활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판단 기준이다. 사람은 사건을 분석하기 전에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말이 이미 방향을 정해놓는다. 어떤 표현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같은 사건도 전혀 다르게 해석된다.
그래서 어떤 사회를 이해하려면 제도보다 언어를 먼저 봐야 한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지, 어떤 표현을 거부하는지, 거기에 그 사회의 기준이 드러난다.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질서다.
자유주의 시장 질서 역시 이 원리 위에 있다. 그것은 법이나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대가를 지불한다” “공짜는 없다”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같은 표현이 생활 속에서 반복될 때 비로소 작동한다. 이 말들이 자연스러운 사회에서는 굳이 이론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미 언어가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상의 마지막 형태는 책이 아니다. 문장도 아니다. 말버릇이다. 사람들은 철학서를 읽지 않아도 사상을 사용한다. 일상 속에서 이미 그것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상태에서, 사상은 가장 깊고 강하게 작동한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역사심리학 해설서 ‘신화가 된 조선’(2026)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