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탱크데이’ 이벤트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진상조사 결과 고의성이 없었음이 밝혀졌음에도 광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의 언론과 정치 언어는 양심과 지성이 거세된 채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침탈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텀블러 이미지를 역사에 연결하고 제품 출시일을 엮어 기괴한 음모론의 퍼즐을 맞추는 광경은 숫자와 역사를 연결하는 중국의 ‘소분홍(홍위병)식 사상 검열 및 역사 알박기’ 수법과 소름 돋도록 닮아있다. 가짜뉴스와 억지 해석이 지배하는 이 우울한 코미디에 이성을 집중하면 인간 자유 정서의 파괴이자 시장의 탄압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소분홍(홍위병)식 사상 검열’ 닮아
과거 2008년의 광우병 선동, 2010년의 천안함 음모론, 2014년의 세월호 불행, 그리고 2023년 후쿠시마 처리수 사태, 오늘의 스타벅스 사태는 사회적 갈등을 자양분 삼아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이 늘 한결같았다. 공격 목적이 있으면 의도를 만들었고, 인과관계가 없으면 파편들을 모아 “설마”라는 의심의 씨앗을 뿌리면, 맹목적 추종자들은 분노하며 ‘정의’의 죽창을 든다.
광우병 광란의 끝자락에서 진실을 마주했듯, 이번 탱크와 사이렌의 합작 사건에서도 우리는 좌파 전체주의 세력이 반대 진영을 사냥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공격과 방어의 메커니즘 표본을 보게 될 것이다.
갈등을 정치 소재로 삼는 그들은 ∆고의적으로 의도를 만들거나 상대에게 나쁜 의도가 없으면 ‘설마’의 의혹으로 침묵하는 다수의 틈을 파고들고, ∆일방적 독선으로 자기들의 믿음을 확장하고 반기를 들면 탄압하며, ∆밑천이 들통나면 뻔뻔하게 ‘어쩌라고’의 적반하장의 방패 뒤로 숨어버릴 것이다.
이 조악한 정치적 주술을 해부하는 것은 자유인의 순수 자존심의 영역이며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양심 세력의 책무다.
▲1단계(공격): 의도를 만들고 의도가 없으면 ‘설마’로 이성 마비
문제가 된 광고 기획서 작성자가 누구인지? 상징적 시안을 보내고 받은 이메일 포렌식으로 누가 고의로 개입한 것은 아닌지? 사회적 문제를 만들기 위한 의도적 공격성 여부를 살펴야 한다.
갈등을 양산하는 악마들이 대중 선동의 굿판을 벌일 때 가장 먼저 꺼내 드는 무기는 광우병 파동처럼 갈등의 의도적 생산, 교묘한 의혹 제기, 즉 ‘설마’라는 심리적 덫이다. 팩트와 논리가 존재해야 할 자리에 그들은 불안과 감정적 성역을 채워 넣으며 대중을 선동한다. “설마 대기업이 아무런 의도 없이 특정한 날에 저런 숫자를 썼겠는가?”
그들에게는 기업의 사과와 해명에는 관심이 없다. 과거에 ‘멸공’을 외쳤던 기업인이라는 괘씸죄 하나를 단죄하기 위해 5·18이라는 역사의 성역을 몽둥이로 깎아 휘두르고, 매장 앞을 서성이며 직원에게 폭언하고, 타인의 취향을 검열하는 집단적 광기를 부린다.
이는 홍위병을 선동하여 지식인과 자본가를 조리돌림하던 마오쩌둥의 삼류 통치술과 정확히 일치한다. 연예인의 언행을 문제 삼아 중도 하차시키는 홍위병식 행태가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그대로 복제되고 있다.
▲2단계(확장): ‘사이렌’의 선동과 낙인으로 진지(陣地) 확장
대중과 언론에 의심의 덫이 깔리면 악마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확산하기 위해 ‘선동’이라는 고도의 기동성을 발휘한다.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마녀 ‘사이렌(Siren)’이 달콤한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홀려 바다에 빠뜨렸다는 선택적 기억으로 대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진영 논리를 절대선으로 주입한다.
이 선동 기동전이 성공하면 곧바로 ‘낙인’을 찍고 진지를 구축한다. 과거 보수 성향 청년들의 소통 창구였던 ‘일간베스트(일베)’를 사회적 해악이자 절대악으로 규정해 폐지론을 몰아붙이고, 자신들의 생각에 반하는 모든 정당한 비판과 이견을 ‘적폐’라는 파괴적 명칭으로 낙인찍어 사회적인 격리를 추진해도 되는가?
▲3단계(역공): 의도적인 거짓 음모가 들키면 ‘어쩌라고’ 적반하장
정교하게 짜인 선동의 세트장도 가짜는 결국 백일하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텀블러 마케팅을 겨냥한 음모론이 억지이자 의도적 확대해석으로 밝혀지면 선동가들과 친위대들은 반성이 아닌 안면몰수의 “어쩌라고”로 응수할 것이다.
거짓이 탄로 나면 “공익 차원의 의혹 제기였다”라며 발을 빼고, 대기업의 영업을 침해하고도 “의심도 못 하냐”라며 도리어 목소리를 높인다. 유태인을 대상으로 불매운동을 펼친 나치 정권은 무지와 만행이 들통나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적반하장의 뻔뻔함을 보였다. 이 같은 태도는 국가와 기업 시스템을 파괴하는 공포스러운 악행이자, 무지한 추종자들과 권력이 결탁해 만들어낸 전체주의의 민낯이다.
▲집단지성 절대 반지의 대반격: 양심과 용기로 던진 질의서
이번 스타벅스 사태는 젊은이들이 현 사태에 의문을 품고 질문하게 만들었다.
∆2만3000여 명의 임직원을 거느린 기업인은 문제가 생기면 여론의 물매를 넘어 무한책임을 져야 하고, 위정자는 명백한 죄마저 사면받아야 하는가?
∆자유시장경제을 보호해야 할 국가와 정부의 불매운동 주도는 탄핵 사유가 아닌가?
∆과거 역사가 현재의 발목을 잡는 헌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역사 피해의식으로 보편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 다원성을 위축시켜도 되는가?
한편 스타벅스 사태를 지켜본 젊은이들은 선동가들이 적반하장 방어기제로 쓰던 “어쩌라고”를 진화한 진짜 버전으로 그들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어쩌라고? 내 돈으로 내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겠다는데.”
과거 같았으면 광풍에 숨을 죽였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대기업 회장을 입건하는 저열한 홍위병식 선동을 향해 대중은 차가운 냉소로 맞받아쳤다.
“그 삼류 선동의 유통기한은 광우병 파동 때 이미 끝났다.”
집단주의적 광기를 무력화하는 날카로운 무기는 개인이 자유와 시장경제를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아무리 광장에서 선동의 북을 치며 사법 단죄의 굿판을 벌여도 자유의 가치를 학습한 시민들은 이미 선동 무대를 등지고 떠났다.
광기는 대중의 서늘한 냉소와 외면 앞에 먼저 굴복한다. 이번 스타벅스 사태는 대중이 더 이상 홍위병식 선동에 속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양심으로 깨어난 자유 집단지성의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에게 불의에 항거하는 양심과 용기가 있다면,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여 위선적 악마를 심판하고 법치를 바로 세워 대한민국을 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