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화엄사 대웅전 불단 [문화재청]
인류의 역사는 문명의 발달사인 동시에 종교의 역사이기도 하다. 첨단 과학과 인공지능이 세계를 지배하고 우주 개척을 논하는 21세기 최첨단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종교를 향한 인간의 갈망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오히려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빈곤을 느끼는 현대인들은 여전히 사찰과 교회, 성당을 찾으며 신앙의 끈을 놓지 못한다.
과학이 세상의 물리적 법칙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이 시대에, 인간은 대체 왜 종교라는 초월적 세계를 끊임없이 창종(創宗)하고 갈구하는 것일까. 그 기원의 가장 깊은 심연에는 다름 아닌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가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죽음의 공포와 무력감의 방어기제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만년에 루브르박물관 앞에 쓰러져 동상을 끌어안고, ‘나를 어떻게 해달라, 더 강력한 신은 없느냐’고 울부짖었다.
이 비장한 외침은 인간이 종교를 찾는 가장 근원적인 동기가 죽음이라는 절대적 운명과 그에 따른 존재론적 불안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구상의 수많은 생명체 중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인지하고 예측할 수 있는 비극적 능력을 지녔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 Heidegger)가 간파했듯, 인간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 즉 ‘죽음에 이르는 존재’이다.
인간은 이 필멸성을 자각하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며, 종교는 바로 이 불안의 심연에서 피어난 구원의 밧줄이다. 사후세계, 윤회, 혹은 영생이라는 개념을 통해 종교는 죽음이 허무한 소멸이 아닌 새로운 시작임을 선언하며, 죽음의 공포를 다스릴 심리적 보금자리를 제공해 왔다. 즉, 종교의 탄생은 죽음이라는 절대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 영혼의 치열한 방어기제인 셈이다.
무력감을 달래는 심리적 방어와 의미 추구
심리학의 거장 지그문트 프로이트(S. Freud)는 종교를 인간의 무의식적 나약함과 공포가 만들어 낸 산물로 보았다. 그는 저서 ‘환상의 미래’에서 종교를 “자연의 위압적인 힘과 삶의 고통,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이라는 가혹한 운명에 맞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유아적 욕구가 투사된 정신적 환상”이라고 규정했다. 아이가 두려울 때 아버지를 찾듯, 성인이 된 인간 역시 통제할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초월적인 ‘절대적 존재’를 만들어 내어 의지한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공포는 단순히 심리적 위안에 그치지 않고, 죽음과 고통에 대한 적극적인 '의미 추구'로 이어진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 Frankl)이 강조했듯 인간은 의미를 향한 의지를 지닌 존재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허무와 이유 없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과학은 죽음을 단순한 생물학적 정지로 설명할 뿐 영혼의 납득을 주지 못하지만, 종교는 이를 전생의 업(Karma)이나 영적 성장을 위한 숭고한 과정으로 승화시킨다. 죽음 뒤에 신성한 우주적 계획이나 사후의 삶이 존재함을 믿음으로써,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현생의 삶을 지속할 실존적 힘을 얻는다.
유한성을 넘어 영원(완전성)으로의 도약
더 나아가 종교적 의례와 공동체적 유대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의 외로움을 함께 극복하는 사회적 장치가 된다. 에밀 뒤르켐(É. Durkheim)이 말한 도덕적 공동체는 결국 ‘죽음 앞에서의 고독’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연대의 광장이다.
나아가 에이브러햄 매슬로(A. Maslow)가 말한 ‘자기 초월의 욕구’나 불교의 깨달음 역시, 결국은 필멸하는 좁은 자아(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어나 영원하고 완전한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갈망의 표현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존재임을 인지할 때 비로소 위대한 초월을 꿈꾸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종교를 만들고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은 결코 유약한 미신적(迷信的)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거대하고 외적인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려는 영혼의 가장 처절한 ‘심리적 보금자리 구축’이며, 유한한 존재의 한계를 뚫고 영원한 진리에 닿고자 하는 인간만의 ‘가장 고귀한 정신적 도약’이다.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과학이 현생을 밝힌다면 종교는 죽음의 어둠을 밝힌다. 인류가 존속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죽음을 자각하는 한,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려는 창종의 역사와 진리를 향한 갈구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업(業, Karma): 본래 산스크리트어 ‘카르마’의 번역어로 인간의 ‘행위(Action)’를 뜻한다. 불교 및 인도 철학에서는 단순한 움직임을 넘어 몸(身), 입(口), 마음(意)으로 짓는 의도적인 모든 온·오프라인 활동을 의미한다. 내가 지은 행위는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과보(결과)를 낳는다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우주적 법칙을 내포하고 있다. 칼럼 내에서는 현생의 해석되지 않는 고통을 ‘과거 생의 행위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 수용하여 실존적 위안을 얻는 종교적 기제로 설명된다.

◆ 응천 스님
대한불교호국종 총무원장
호국승군단 초대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