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일간지가 미국이 한국과 대만을 빼는 동북아 방어선을 검토 중이라고 23일 보도했다. / 닛케이신문 캡처.
日니혼게이자이신문 “美 전쟁부, 한국 빼는 아시아 新 극동방위선 수립 검토” 보도
‘과거 지극히 무거운 교훈’ 운운 ‘한국전쟁’ 빗대며 “트럼프 언행 보면 불안” 언급도
日신문 제시한 근거들 면밀히 살펴보니… 美 중심 ‘對中 新 냉전질서 재편’의 일환
미국 전쟁부(옛 국방부)가 내달 공표를 앞두고 세부 계획을 조율 중인 ‘미국가방위전략(米国家防衛戦略)’에 일본만 방위선에 포함하고 한국과 대만을 빼버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이 23일 보도했다.
닛케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이 새롭게 설정을 고려 중인 4개 패턴의 방어선 중에서 이 같은 최악의 방안도 포함돼 있으며, 이 방안이 현실화하면 북한과 중국이 더 강경해지고 동북아시아 분쟁의 위험성도 커진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일본 포함, 한·대만 제외 △한일, 대만 모두 포함 △일본·대만 포함, 한국 제외 △한일 포함, 대만 제외의 4개 패턴을 새로운 아시아 방위선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신문은 전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동북아 역내 안정을 위해서는 한일, 대만이 모두 포함되는 라인이 최선”이라며 “미국은 그동안 기본적으로 이 노선을 유지해 왔다”고 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만을, 또는 대만과 더불어 한국을 방어라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릴 경우, ‘과거의 지극히 무거운 교훈(過去に極めて重い教訓)’을 떠올려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1950년 해리 트루먼 행정부 당시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이 설정한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을 의미한다.
당시 미국이 한국을 제외하는 극동 방위선을 일방적으로 획정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해도 미군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북한 등 공산주의 적성국에 줬고, 결과적으로 전쟁을 초래했다고 비판받아 온 이슈였다.
신문에 따르면 미국은 남모르게 정보를 수집하는 데 열중하며 국가방위전략을 수립 중이라고 한다.
미 국가방위전략은 미국 정부가 약 4년에 한 번씩 미군이 참전하거나 관여하는 범주를 설정하는 중요 문건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국가방위전략은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 중심 안보질서에 중대한 도전자로 규정하고, 이 나라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방침에 따라 방어선을 설정했다.
미 전쟁부는 지난달 말까지 새 국가방위전략 초안을 마련했으며 현재 행정부 내부에서 회람 중인 단계로 전해졌다.
닛케이 신문이 본문에서 인용한 좌파 성향의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중-러 대응에 주안점을 둔 2018년 노선을 고쳐 미 본토 방어를 우선하는 초안이 마련됐다며 “이렇게 되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미군이 ‘내향(内向·자국 안보 우선 경향)’으로 되면서 유럽 또는 한일 등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역내에 부정적 파급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신문은 경계했다.
신문은 또 최종안이 결정될 때까지 세부 조정은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선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공개된 수준의 초안이 확정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다만 어떤 안건이 유력하게 검토되는지에 대해선 못 박지는 않았다.
미국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동북아 방어선. / 니혼게이자신문 온라인 캡처.
이와 관련해 신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이후 미국 본토 방어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강화해 온 데다 선점하듯 새 전략 구상에 나선 점에 주목했다. ‘미국 우선주의’에서 나아가 ‘미 본토 방어 우선주의’에 방점을 찍겠다는 포석으로 신문이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문은 미국이 △마약 유입을 막기 위해 카리브해로 군대를 보냈고 △불법 약물 수송 의혹을 받아온 베네수엘라 선박을 공격해 11명을 죽였으며 △러시아와 인접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발트 3국에도 군사 지원을 줄일 뜻을 공표한 사실 등을 근거로 나열했다.
이에 따라 유럽은 미군의 지원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체념하는 분위기가 감도는 반면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은 대중 전략으로 미군의 아시아 개입이 더 증강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고 신문은 봤다.
이와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가 미 본토 방어 우선주의에 입각한다면 아시아에 대한 미군 개입도 줄어들 여지가 있다는 우려도 보탰다.
그러면서 신문은 아직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국익을 고려하면서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지켜야 할 방위선을 아시아 어디로 설정할지 입장을 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복수의 미 안보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군과 전쟁부·국무부 관료들은 이 중 가장 좋은 패턴(한일·대만 포함)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대세이지만, 미국 군대의 해외 개입에 신중한 입장이라는 JD 밴스 부통령 등은 한국과 대만을 방위하는 데 있어 미국이 어느 정도 깊게 관여해야 하는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고 신문은 주장했다.
이에 따라 북한에 맞서는 방편의 하나로 한국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대신 미군의 한국 방위를 줄여나가자는 방안이 미 행정부 일각에서 비밀리에 논의되다 흐지부지됐지만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고 신문은 전망했다.
이에 더해 밴스 부통령은 대만 방위에도 의지가 크지 않다고 신문은 봤다. 신문의 관점은, 미군이나 미 의회에서 대만을 지켜야 한다는 대중 강경파가 대세를 이루는 것과 대조적이다.
결국 미군의 새로운 아시아 방위선은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에 달린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고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불안을 감출 수가 없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다만, 기사를 작성한 아키타 히로유키(秋田 浩之) 기자는 ‘언행’의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무역 적자와 관련해서는 중국에 화가 잔뜩 났지만 미군이 아시아 안보 수호에 깊이 관여함으로써 중국군 확장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근거로 꼽았다.
또한 세계지도를 일종의 체스 게임판으로 보고, 중국을 상대로 세력을 다투겠다는 지정학적 사고도 전무하다는 나름의 논거를 제시했다.
털시 개버드(가운데)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과 캐시 파텔(왼쪽 두번째) 연방수사국(FBI) 국장·존 랫클리프(오른쪽 두번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지난 3월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연방 의사당에서 열린 상·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해 있다. / FOX방송 캡처.
이는 미국 보수층의 일반적 인식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미국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자들은 중국을 주적(主敵)으로 꼽고 있으며 중국의 팽창하는 군사력을 제어하고 중국공산당(중공·CCP)의 씨를 말리기 위한 외교 전략을 트럼프 행정부가 구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신문은 트럼프를 잘 아는 전직 미국 정부 관리는 "미국과 중국이 종합국력(総合国力)을 걸고 전략적으로 대척점에 선 가운데에 있다는 시대인식이 트럼프 대통령에겐 없다"고도 단언했다.
일본 신문 기자의 시각은 미중 패권 다툼이 현재 전 세계 정치의 역학 구도를 결정하고 있다는 마가의 일반적인 관측과도 크게 괴리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적을 상대하면서도 군사 대립은 간과하고 있다는 관점은, 미국의 좌파 매체를 근거 삼은 데서 비롯된 오류로 볼 수 있다.
앞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시작 직후 정보·안보·수사기관장들은 중공을 일제히 ‘주적’으로 꼽은 바 있다.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지난 3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연방 상·하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서 “전 세계 패권국 지위를 노리는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적성국 가운데 ‘가장 능력을 갖춘 전략적 경쟁자(most capable strategic competitor)’로 평가된다”며 사실상 주적 개념을 못 박았다.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중공은 비대칭 공격을 통해 미국의 취약점을 공략하고 있다”고 했고,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중국·북한·러시아 등 미국의 적성국들이 더 높은 수준으로 협력하고 있다는 개버드 실장의 지적에 동감한다”며 “중공은 미국의 주요 인프라에도 해를 끼치고 있다”며 정보당국이 이들을 저지하는 데 공조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릭 크로포드(공화·아칸소) 하원 정보위원장은 “강력한 군사와 스파이 능력을 확장하는 중공의 위협이 태평양을 넘어 서구에까지 전 세계로 전이되고 있다”며 “심지어 무력 충돌하기 직전 수준의 공격성이 계속 증가하는 현실”이라고 했다. 마이클 베넷(민주·콜로라도) 상원의원은 미국의 안보와 미국인의 번영에 직결되는 중국의 침투 방식에 관한 미 정보당국의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었다.
이들의 언급은 닛케이 신문이 인용한 트럼프를 잘 안다는 전직 미국 관리의 발언과는 확연한 인식 차이를 보인다.
허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