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전경. 김대웅 법원장의 한마디는 멈춰 있던 헌법의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한미일보 그래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은 10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심 재판과 관련해 “이론적으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 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답변이 불러온 파장은 결코 작지 않다. 사법이 다시 헌법의 시간으로 돌아오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김 법원장의 발언은 단순한 가정법이 아니다. 그는 “불가능하지 않다”는 말로 사실상 헌법의 원칙, 즉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 면책이 아닌 ‘유예’임을 확인했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을 법 위에 둔 적이 없다. 다만 국정의 연속성과 충돌을 피하기 위한 ‘잠정적 정지장치’를 둔 것이다. 그 유예가 영구적인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헌법학계 다수의 해석이며, 허영·이인호·차진이 교수 등 주류 학자들은 ‘재판 가능성’을 다수설로 본다.
서울고법은 이미 지난 6월 18일, 파기환송심의 재판 기일을 지정했다가 ‘추후 지정’으로 변경했다. 표면상 이유는 헌법 84조의 적용이었지만, 그 내면엔 정치적 충돌을 최소화하려는 사법의 신중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신중함’이 길어질수록 헌법은 작동을 멈춘다. 법이 침묵하면 정치가 법을 대신한다.
김대웅 법원장의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은, 그 침묵을 깨는 첫 움직임이다. 재판은 헌법상 금지된 것이 아니라, 단지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유예된 상태에 불과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사법부가 스스로의 시계를 다시 돌리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재판의 독립은 권리이기 이전에 의무이며, 양심은 판단의 자유가 아니라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사법부가 정치의 눈치를 보며 ‘유예’를 ‘면책’으로 바꾸는 순간, 헌법 제103조는 종이 문장이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의 침묵이 아니라, 법관의 양심이 작동하는 재판이다.
이런 가운데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은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법관을 대폭 늘리면 사법 신뢰를 해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의 신뢰는 숫자가 아니라 공정에서 나온다”며 여당 일각의 대법원 구조 개편론에 우려를 표했다. 또 국민의힘을 ‘내란동조당’으로 규정한 일부 정치권 발언에 대해서도 “지나치다”고 했다. 문 전 권한대행의 견해는 사법 구조를 정치의 도구로 삼아선 안 된다는 자성의 메시지로 읽힌다.
이 언급은 김대웅 서울고법원장의 발언과 함께, 사법 내부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되묻는 흐름으로 연결된다.
하나는 “법의 침묵을 끝내야 한다”는 결심이고, 다른 하나는 “법의 자제는 신뢰의 기반”이라는 경계다. 결국 두 메시지는 같은 곳으로 수렴한다. 사법은 독립되어야 하고,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헌법 제68조 제2항은 대통령이 직을 상실하면 즉시 보궐선거를 통해 국민이 새로운 대표를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이 재판의 유예를 허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법치의 연속성과 국민주권의 순환을 동시에 보장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대통령의 재판은 정치의 사건이 아니라 헌정의 복원 절차이며, 헌법의 자기 방어다. 문 전 권한대행의 우려처럼 사법이 정치의 언어를 닮기 시작하면 신뢰는 무너진다. 동시에 김대웅 법원장의 발언처럼 사법이 침묵에 안주하면 헌법은 멈춘다.
법원은 선택의 문턱에 서 있다. ‘이론적 가능’이 현실의 기일로 전환되는 그날, 대한민국의 헌정은 다시 시간을 되찾게 된다.
법은 멈춘 적이 없다. 다만 기다렸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그 기다림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이미 대통령 파면을 두 번 결정한 국민이다.
지금이 헌정이 멈춰야 할 비상시국인가. 아니라면, 법은 예정된 길을 가야 한다. 재판은 정치의 복수가 아니라 헌법의 복원이다.
사법이 복귀할 때, 헌법의 시계는 다시 정확히 맞춰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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