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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우 칼럼] ‘계엄은 내란’이라고 해야 출세하는 세상
  • 이신우 前 문화일보 논설고문
  • 등록 2025-11-17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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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일 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위에 계엄군 헬기들이 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최초 통일 제국 진나라의 진시황이 사망하자 환관 조고는 시황제의 유서를 위조한다. 날조된 유언장에 따라 똑똑하고 강단 있는 시황제의 장남 부소와 명장인 몽염에게 자결을 명령한다. 대신 어리석기 짝이 없는 둘째 아들 호해를 2대 황제의 자리에 앉힌다.


  조정의 권력은 자연히 조고에게 돌아간다. 그래도 마냥 안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조고는 어느 날 황제 앞으로 사슴을 끌고 와 말을 바치겠다고 말한다. 호해는 웃으면서 “승상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오? 사슴더러 말이라니?”라고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조고는 계속 말이라고 우겼다.


  그러자 황제는 주변의 신료들에게 “이게 말로 보이냐?”고 물었다. 조고가 갑자기 뒤로 돌아 조정 신료들의 반응을 주욱∼ 살폈다. 누가 자신의 주장에 토를 다는지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겁에 질린 신료들은 하나둘 “네, 말입니다”라고 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정치·사회에서 권력자가 진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호도할 때 비유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비상계엄은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비상계엄을 선포한 대통령을 내란범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누가 자기네 논리를 진실 왜곡과 호도라고 비판하는지를 두 눈 부릅뜬 채 감시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열린 국무회의에서 안규백 국방장관에게 비상계엄 연루자들이 군 인사 진급 대상에 포함됐다며 “(가담이) 확인되면 당연히 (승진에서) 배제할 수 있고, 승진 후라도 취소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유의 어법으로 말했다. “잘 골라내시라.” 누가 조정 뜰 안으로 끌려온 ‘사슴’을 ‘사슴’이라고 하는지 잘 골라내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중장급 진급 인사 과정에서 인사 대상자들은 군인사 관계자로부터 특정 질문을 받아야 했다. “계엄은 내란인가.”


  뻔하다. 대한민국 헌법 규정이 어쩌고 하면 진급 탈락이다. 기독교 신자들에게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겠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럼 이런 공산당식 사상 검증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십자가를 밟았고, 사슴 아닌 말이라고 했고, 또한 계엄은 내란이라고 고백했다.


  물론 그중에는 사슴은 사슴일 뿐이라고 말한 진급 대상자도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이런 식이라면 진급 안 하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선지 그들은 진급할 수 있었다.


  이날 인사에 따라 육군에선 한기성·정유수·이상렬·이일용·최성진·이임수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군단장에 보직됐다. 박성제·어창준 소장은 중장 진급과 함께 각각 특수전사령관과 수도방위사령관에 보직됐고, 권혁동·강관범 소장은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각각 미사일전략사령관과 교육사령관 보직을 받았다. 합참 작전본부장에는 육사 50기인 강현우 중장이 진급과 함께 기용됐다. 기존 육군 중장 중에서는 박재열 7군단장이 전략사령관으로, 박후성 2군단장이 육군사관학교장으로 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조선일보 11월 14일 보도)


  언론은 특정 진급 탈락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성명을 밝히지 않았다. 필자는 중장 승진한 자들의 이름을 알고 싶지 않다. 다만 역사를 위해 이름들을 남겨둘 뿐이다. 


  우리는 “이런 식이라면 진급 안 하겠습니다”라고 발언한 대상자가 누구인지를 반드시 규명해 내야 한다. 그리고 역사의 책장에 반드시 그 이름을 기록해 둬야 한다. 군인의 충성 대상은 정치가 아니라 헌법이다. 그들은 자신의 충성 대상으로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을 지목했다고 첨언해 두어야 한다. 

 

  만에 하나라도 전쟁이 났을 때 우리는 그들을 군 지휘관으로 다시금 소환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백성은 살아남을 수 있다. 자신의 출세와 환락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국민과 헌법을 외면할 수 있는 자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다.


  이재명 정부가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두려워하는 지를 알 수 있는 사건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죄 관련 재판에서 벌어졌다. 지귀연 판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로, 현재 내란 사건 재판을 심리 중이다. 지 판사가 검사석을 향해 물었다.  


  “여인형 씨도 부르는 게 어떨까요? 조금이라도 하면 어떨까요. 검사님들 준비 가능하실까요?”

  검사들은 갑자기 침묵했다. 그러자 지 판사가 다시 말했다.

  “슬픈 표정하지 마시고요.”

  뒷좌석에 앉아 있던 한 여성 관계자가 애써 웃음을 삼키는 장면이 목격됐다. 검사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내란 주요 임무 종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다. 검사 측이 여인형의 증언을 기피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다 알고 있지만 그러나 굳이 말하지 않는 그것!


  방첩사령관 뿐이 아니다. 문상호 정보사령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정부, 그리고 내란 재판 검사들은 12·3 비상계엄 이후 여인형, 문상호, 노상원 씨 등을 중세식 지하감옥에 가둔 채 철저히 숨겨왔다. 지겹도록 불러내는 곽종근 특전사령관과는 전혀 다르다.


  이재명 정부는 노, 여, 문 세 명을 왜 이토록 대중과 격리시키려 드는 것일까. “사슴은 사슴일 뿐”이라고 할까 봐? “이런 식이라면 감옥 가겠습니다”라고 할까 봐? 아니면 중앙선관위 말이 나올까 봐?


이신우 前 문화일보 논설고문·‘부정선거와 내란범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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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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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SKim33162025-11-18 04:02:20

    문제: 윤석렬 대통령 석방을 가장 싫어할 사람은?

    답: 황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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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1-17 14:05:34

    전과범들은 국회에 몰려있고, 위대하신 영웅 윤카는 사형수 방에 계시고, 우파들은 아스팔트로 나오지 않음으로써 적에 동조하고 있는 지금,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는 글을 읽고 박수칩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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