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2024.11. / 대통령실 제공
편집위원·육사 40기계엄 관련 사과가 뜨거운 감자다. 국민이 생각하는 계엄은 민주당에 의한 의회 폭거와 집요한 줄탄핵과 국정 방해가 만든 역사의 산물이고, 계엄의 주체는 국민의힘이 아닌데 당 대표에게 “계엄 사과를 하지 않으면 집단행동을 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벼락이 떨어져 무너진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왜 그렇게 단단하게 설계했냐’며 사과를 요구하는 격이다. 내년도 지방 선거를 앞두고 계엄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중도 확장이 아니라 보수의 기반마저 허물겠다는 계략으로 보인다.
선거철마다 정치권은 ‘중도 확장’이라는 주술에 빠진다. 사이비 ‘중도 확장’은 그들의 귀족적 고고함은 감추고 톤을 낮추며 몸을 숙이고 겸손한 척한다. 그러나 민생 진심과 철학적 기초가 약한 상태에서 중도 확장은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까지 잃는 짓이다. 지지 기반을 굳게 다지지 않는 정당의 중도 공략은 기초가 약한 지반 위에 기둥과 지붕부터 올리는 엉터리 건축처럼 반드시 무너질 운명이다.
중도층은 단순한 집단이 아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발언을 아끼는 정세 관망형 샤이족, 마음속 지지 성향은 있지만 비난이 두려워 중도를 자처하는 소심족, 정치보다 생계가 먼저인 생계형 무관심층, 정치 혐오로 인해 정치 참여를 기피하는 회피형 중도층 등 중도의 의미와 결은 다양하다. 중도는 일정하게 고정된 지층이 아니라 시대의 기류와 정치 상황의 시류에 따라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뜬구름과 신기루 같은 층위다.
1. 중도층의 실체와 ‘중도 확장’의 허구성
정치인은 종종 ‘중도 확장’이라는 희망적 주문에 취해 자기부터 속인다. 내부 결속이 단단하지 않은데도 중도 확장과 외연 확대를 말하는 정치인은 대부분 두 가지 경우다. 하나는 중도의 특성도 모르고 상대 진영의 분열 전략에 속아 넘어간 경우, 다른 하나는 아예 상대 진영을 돕는 경우다. 똘똘 뭉쳐도 여당의 폭주를 막지 못하면서 20 여명이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은 자기 우물에 독을 푸는 행위다.
중도층은 바람에 흔들리는 깃털 같은 존재가 아니다. 중도는 신중한 무게를 가진 추에 가깝다. 양 진영의 정치적 속물주의에 실망하여 잠시 입장을 유보하고 정치 혐오에 빠질 수는 있지만, 그들도 최종적으로는 국리민복 구심력을 가진 쪽으로 이동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구심력이 약해지면 내부 암투가 생긴다. 지지 기반이 약한 정당이 펼치는 ‘중도 확장’은 세력 확장이 아니라 충성 세력 이탈로 이어진다.
중도층은 산술적 중립지대나 비어 있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이 아니다. 중도는 국익을 생각하고 안정적인 정책 중심을 세우는 쪽으로 이동하는 영리한 균형추다. 동절기에 양식을 주는 곳으로 이동하는 철새와 같다. 정치적 중심이 약한 정당이 중도를 붙잡겠다고 나서는 순간, 기존의 얄팍한 기반마저 무너뜨린다.
2. 지도부가 구심 기반을 다지면 지지세력이 외연을 확장한다
물리학에서 운동하는 물체가 회전을 유지하는 것은 중심을 향하는 구심력이 있기 때문이다. 정당도 안으로 지향하는 구심력이 강해야 멀리 뻗어 나갈 외연의 힘이 생긴다. 정치에서 구심력은 핵심 가치, 일관된 메시지, 응집력을 유도하는 도덕성과 정당성, 공동체를 떠받치는 안정적인 축을 의미한다. 생사를 함께 하려는 정치적 동지의식과 단결력과 구심력이 없으면 자당(自黨)의 대통령을 탄핵하는 참상이 생긴다.
한국 정치의 혼란은 중도 확장 실패가 아니라 구심력 부족에서 생긴다. 핵심 가치가 흔들리고, 원칙이 사라지며, 정세에 따라 말을 바꾸고, 지도부가 내부 가치와 질서를 무너뜨리면 정당은 민심을 잃고 당원과 지지 세력마저 반발심에 이탈하기도 한다. 반대로 구심력이 견고하면 자부심을 느끼는 지지세력이 외연을 확장한다.
중도 확장은 외연을 넓히는 기술이 아니라 중심 힘을 만들고 지키며 전파하는 기술에 있다. 중도 확장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자신의 강점을 약점으로 위장하여 실토하며, 달콤한 설득의 기술이 아니다. 인간의 특성을 이해하고 안정된 중심을 찾고 지키며 확산하는 현상이다. 국민에게 이로운 안정된 가치 중심이 만들어지면 중도층은 붙잡지 않아도 스스로 흡수된다. 꽃가루와 꿀을 많이 가진 꽃으로 벌이 찾아가는 이치와 같다.
정치에서 구심력의 공통 실체는 안보다. 안보는 군사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국정 운영의 안정성, 국제 정세에 대한 판단력, 동맹 유지와 관리 능력, 위기 대응력 등 국가 생존 활동이 안보의 범주다. 안보가 확고하면 중심이 무거워지고, 중도층은 말보다 유사시 국민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3. 구심력이 튼튼해야 원심력도 작동한다
원심력은 외연 확장을 상징한다. 상생 외교, 국가 이미지 개선, 새로운 위민 정책, 국민에게 다가가는 진정성 등은 모두 원심력이다. 원심력은 구심력이 단단할 때만 세력 확장에 기여한다. 구심력이 약한 상태에서 원심력을 키우면 연대 고리가 끊어지고 확장이 아니라 내부에서 붕괴가 발생한다. 정당성과 도덕성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어떤 처방도 방탄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모든 조직 운영의 기본은 튼튼한 구심력 형성 후에 외연 확장이다. 기반이 약한 배가 돛을 펼치면 전복한다. 안보라는 중심축이 흔들리면 외교는 신뢰와 방향을 잃는다. 반대로 안보 중심이 단단하면 외교도 흔들림 없이 확장력을 갖는다. ‘중도 확장’ 신봉자와 고의적 분열을 노리는 중도 나팔수는 ‘중도층을 얻는 길은 국리민복 중심을 잃지 않는 것’임을 깨닫고 참회하길 바란다.
계엄은 판결이 종결될 때까지 사과할 사안이 분명 아님을 덧붙인다.
한미일보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