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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 한미칼럼] 한동훈의 두 기준, 무엇은 조작이고 무엇은 내란인가
  • 김영 기자
  • 등록 2026-01-10 0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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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작과 내란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 탄핵·손절·부정선거 논쟁의 공통된 오류
  • 판단 기준이 무너지면 불신은 반복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사진=연합뉴스]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기준의 붕괴다. 

 

거짓은 반박할 수 있지만, 기준이 무너지면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판단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최근 계엄 논란과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논쟁에서 드러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은 이 기준 붕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보여준다.

 

한동훈은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당원게시판 논란에 대해 단호했다. 

 

출처가 불분명하고, 원본이 확인되지 않으며, 작성자와 의도가 특정되지 않은 주장들은 “조작”이며 “정치 공작”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의혹 제기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확인되지 않은 정황을 엮어 사실처럼 만드는 방식은 용납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이 기준은 엄격했고, 법률가로서 충분히 이해 가능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계엄을 둘러싼 내란 논쟁에서 한동훈은 기준을 유지하지 않았다. 

 

계엄 검토 또는 시도가 내란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 정치인 체포 가능성이 있었다는 진술, 국회 기능을 무력화하려 했다는 추정이 결합되며 ‘내란 가능성’이 정치적 판단의 전제가 됐다. 

 

그리고 그 결론은 대통령 탄핵의 불가피성으로 곧장 이어졌다.

 

문제는 입장의 차이가 아니다. 같은 수준의 증명과 정황에 전혀 다른 판단 기준이 적용됐다는 점이다. 

 

가족 의혹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은 정황은 조작”이라며 배제했지만, 헌정 질서의 최고 수단인 탄핵 판단에서는 ‘가능성’과 ‘진술’이 중대한 근거로 채택됐다. 

 

사안이 중대할수록 증명 기준은 더 엄격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형법상 내란은 가장 무거운 범죄다. 의도나 추정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무장력의 현실적 행사, 헌법기관에 대한 강압, 실행에 착수한 객관적 증거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계엄 논쟁에서 내란은 구성요건을 하나씩 입증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정황을 엮은 정치적 서사로 먼저 규정됐다. 법적 판단보다 정치적 결론이 앞선 구조였다.

 

이 지점에서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남는다. 

 

한동훈이 당원게시판 논란을 ‘조작’이라고 판단할 때 적용한 기준을 그대로 대입하면, 계엄을 내란으로 구성한 서사 역시 정치적 구성물로 분류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는 특정 인물을 공격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기준의 일관성을 묻는 질문이다.

 

여기서 판단의 기준은 한 단계 더 이동한다. 

 

내란 여부의 판단이 관계와 단절의 문제로 옮겨가는 순간, 사실과 책임의 논의는 정치적 태도의 검증으로 바뀐다. 

 

이때부터 법의 언어는 사라지고, 관계를 중심으로 옳고 그름을 가르는 ‘관계 정치’가 등장한다.

 

한동훈은 ‘윤 어게인’과 손절하지 않으면 보수의 미래가 없다고 말하고, 탄핵에 대한 사과 역시 윤석열과의 단절이 전제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정당성의 기준을 행위와 책임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에 두는 논리다. 

 

이것이 바로 관계 정치다. 누가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했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정치다.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또 다른 질문이 성립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손절하지 않으면 개혁이 불가능하다면, 한동훈과 손절하지 않으면 법치는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행위가 아니라 관계를 기준으로 정당성을 재단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두 질문은 다르지 않다. 이는 법치의 확장이 아니라 법치의 후퇴다.

 

사과의 문제도 여기서 이어진다. 

 

옳다거나 잘못됐다는 판단은 언제나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하며, 사과는 그 기준에 스스로 부합하지 못했을 때 하는 것이다. 

 

사과란 관계를 정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판단 기준이 잘못 적용됐음을 인정하는 책임의 언어다. 이 조건이 빠진 사과를 우리는 ‘기준 없는 사과’라고 부를 수 있다.

 

윤 전 대통령 역시 국정 운영 과정에서의 혼선과 소통 부족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그것이 법적 책임에 대한 인정이 아니라 정치적 유감 표명이었다는 점에서, 탄핵을 둘러싼 사과 요구와 성격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한쪽의 사과는 무효가 되고, 다른 쪽의 사과는 기준 설명 없이 요구된다면, 사과는 책임의 종결이 아니라 또 다른 해석의 출발점이 된다.

 

부정선거에 대한 인식 역시 같은 문제에서 출발한다. 

 

무엇은 의혹 단계에서 곧바로 배제되고, 무엇은 충분한 검증 없이 정치적 판단의 근거로 채택되는가 하는 기준의 문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지만, 그만큼 가장 엄격한 증명과 투명한 검증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의 논쟁은 증거의 유무보다 정치적 필요에 따라 갈린다. 

 

질문 자체를 금기시하거나 관리 대상으로 취급하는 방식은 단기적 질서를 유지하는 듯 보일 뿐, 장기적으로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다.

 

내란 논쟁이든, 탄핵 판단이든, 사과 요구든, 부정선거 인식이든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무엇을 사실로 판단하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일관되는가”

 

그 기준이 사안과 인물에 따라 달라진다면, 법치는 선택의 언어가 되고 민주주의는 불신을 축적한다.

 

말로는 개혁을 말하지만, 행동은 구태정치의 반복이 된다. 

 

기준을 바꾸지 않는 개혁은 결국 같은 정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옳고 그름은 같은 기준으로 판단돼야 하고, 사과는 그 기준에 스스로 부합하지 못했을 때 하는 것이다. 

 

기준이 설명되지 않는 사과에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사과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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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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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6-01-10 07:00:16

    역사에 길이 남을 배신자 매국노 철면피 하극상 한뚜껑은 반역 도모한 가족과 함께 지구를 떠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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