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는 정치 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파격적이었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실제 톱을 들고나와 “기득권 국가를 베어내겠다”고 외쳤고, 그 퍼포먼스는 전 세계 언론의 조롱과 관심을 동시에 끌어냈다.
많은 이들이 그를 과격한 선동가쯤으로 치부했지만, 집권 이후의 행보는 의외로 일관됐다. 말이 아니라 정책으로, 상징이 아니라 집행으로 국가를 흔들었다.
‘전면 해고’ 대신 ‘검증 후 선택’
밀레이 정부가 내세운 핵심은 단순했다. 공공부문을 성역으로 두지 않겠다는 것. 계약직·임시직 공무원에게 적성·역량 검사를 도입하고, 그 결과를 계약 갱신의 기준으로 삼았다.
전면 해고라는 자극적인 방식 대신, “검증 후 선택”이라는 구조를 취했다. 이 조치는 행정 효율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졌다.
민간에서 이미 경쟁과 평가에 익숙한 청년층과 중산층에게, 국가는 마침내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밀레이는 집권 여당이었고, 행정부의 집행 권한을 쥐고 있었다. 노조의 반발을 감수할 수 있었고, 정책의 결과를 즉각적인 정치적 효능감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지지자들은 “말이 아니라 진짜로 바뀌고 있다”는 감각을 체험했다. 파격의 본질은 퍼포먼스가 아니라 집행력이었다.
문제는 이 모델을 한국 정치에 그대로 대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청년과 함께하는 실력주의’를 표방하는 한국 우파, 그리고 현재 야당의 위치에 있는 국민의힘에게 이 질문은 더 절실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대로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야당은 인사권도, 집행권도 없다. 밀레이처럼 국가 시스템을 한 번에 흔들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안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아니라, ‘어떻게 변형할 것인가’다. 야당은 집행의 주체가 될 수 없지만, 기준의 설정자가 될 수는 있다.
야당이여, 기준의 설정자가 돼라
“우리가 당장 이렇게 바꾸겠다”는 선언은 공허할 수 있지만, “왜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정치적 힘을 가진다.
야당의 개혁은 실행 계획이 아니라,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기준을 던지는 데서 시작된다.
특히 실력주의라는 언어는 이미 청년 세대의 일상이다. 취업 과정에서, 성과 평가에서, 구조조정의 불안 속에서 경쟁과 검증은 늘 개인의 몫이었다.
이들에게 “왜 공공부문은 예외인가”라는 질문은 이념이 아니라 경험의 문제다.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개혁은 특정 정파의 정책이 아니라 상식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조심해야 할 함정도 있다. 공무원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방식은 필패다. 실제로 다수의 공무원 역시 성과 없이 보호받는 구조에 불만을 품고 있지만, 말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야당이 해야 할 일은 ‘공무원 때리기’가 아니라, 일하는 공무원과 그렇지 않은 구조를 구분하자는 제안이다. 검증은 처벌이 아니라 보호의 장치라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
이 모든 논의가 공중에 뜨지 않기 위해 필요한 현실적 무대가 바로 지방정부다. 중앙정부 집권 없이도, 지방정부에서는 제한적이지만 실험이 가능하다. 지방선거는 거대한 국가 개혁의 리허설이다.
작은 단위에서 기준을 적용하고,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신뢰는 축적된다. 청년과 민간이 “실제로 달라졌다”고 느끼는 경험은, 어떤 선언보다 강력하다.
아르헨티나의 톱은 결국 상징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자르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국가를 재단하느냐였다.
한국의 야당이 배워야 할 지점도 바로 거기다. 집권을 약속하는 정치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기준을 묻는 정치. 그 질문이 쌓일 때, 권력은 따라오게 돼 있다.

◆ 심규진 교수
스페인IE대학교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과 전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을 역임했으며 호주 멜버른 대학교 전임교수와 싱가포르 경영대학교 조교수로 근무했다. 저서에 ‘K-드라마 윤석열’ ‘하이퍼 젠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