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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山 문화읽기] 그람시의 관점에서 본 광화문 ‘감사의 정원’
  • 松山 작가
  • 등록 2026-05-19 21: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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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우리는 문화 전쟁을 외면하면 안 되는가”
  • “기억의 정치”는 결코 좌파들의 전유물 아냐

서울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감사의 정원. [사진=연합뉴스]

서울 광화문광장에 조성된 ‘감사의 정원’을 두고 여러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특정 정치 감정을 국가 공간에 고정시키는 상징 사업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자유주의 보수의 관점에서 오히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왜 한국 우파는 지금까지 문화와 기억의 공간을 지나치게 방치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좌파 혁명가였지만, 현대 문화 권력의 본질을 가장 날카롭게 분석한 인물이었다. 그는 현대 사회의 권력이 단지 법률과 군대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봤다. 학교, 언론, 예술, 광장, 기념 공간 같은 문화 영역이 사람들의 감정과 상식을 만들고, 결국 정치적 방향까지 결정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것을 헤게모니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좌파가 오래전부터 이 점을 잘 이해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국회 의석만이 아니라 역사 해석과 상징 공간을 중요하게 여겼다. 광장 하나, 기념관 하나, 영화 한 편, 교과서 한 줄이 결국 미래 세대의 정치 감정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보수는 너무 오랫동안 문화 영역을 가볍게 봤다. 경제 성장과 안보, 제도 운영만 잘하면 국가는 유지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문화에서 밀리면 정치도 결국 밀린다. 선거에서 이겨도 상식 전쟁에서 패배하면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의 방향을 잃게 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감사의 정원’은 보수 우파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광화문은 대한민국의 중심 광장이다. 조선 시대에는 왕권의 상징이었고, 현대에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과 시민 정치의 중심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 자유와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에 속한다.

 

보수 우파는 오랫동안 “기억의 정치”를 좌파의 전유물처럼 방치해왔다. 그러나 국가를 지키다 희생한 사람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다 쓰러진 사람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유지하기 위해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일 역시 국가의 정당한 역할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공공 공간의 기억 정치가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다는 점이다. 민주화 운동과 저항의 기억은 거대한 국가 상징으로 반복되었지만, 산업화와 국가 수호, 안보와 헌정 질서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기억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자유주의 우파는 이 불균형 속에서 문화적으로 침묵해 왔다.

 

그람시의 관점으로 보면 이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다. 문화 공간을 포기하면, 상대 진영의 역사 해석이 곧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굳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특정 정치 언어만 “정의”와 “민주주의”의 이름을 독점하게 된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한 국가의 역사 자체가 부정적으로 재구성될 위험까지 생긴다.

 

‘감사의 정원’은 바로 이 균형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추모 시설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어떤 가치 위에서 유지되어왔는가를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상징 공간이다. 자유와 헌법, 국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이들을 공공 공간 속에 새기는 일은 자유주의 국가의 자기 방어이기도 하다.

 

특히 자유주의 우파는 이제 문화 영역을 더 이상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좌파만 문화와 상징을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 역시 자신만의 기억과 가치, 상징 체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는 경제 정책 몇 개로만 남게 된다. 문화적 언어를 잃은 자유주의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많은 보수층이 문화 전쟁을 불편해한다. 정치가 문화까지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이미 현실은 문화 전쟁 속에 들어와 있다. 광장과 교과서, 방송과 영화는 이미 정치적 공간이 되었다. 그 상황에서 자유주의 우파만 “우리는 그런 것 안 한다”고 물러서면 결국 상대 진영의 역사 해석만 사회 전체의 표준으로 남게 된다.

 

그람시는 “상식”을 장악하는 세력이 결국 사회를 이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우파 역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산업화와 국가 수호의 역사, 헌법 질서를 지키기 위한 희생을 적극적으로 공적 기억 속에 남겨야 한다.

 

‘감사의 정원’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자유주의 사회에서 기억은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해석과 토론은 계속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가 자기 자신을 전혀 기념하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면, 결국 자유주의는 문화적으로 해체된다. 국가를 지키려 했던 기억은 사라지고, 국가에 대한 부정적 감정만 반복적으로 재생산된다.

 

대한민국은 단지 저항의 역사만으로 존재하는 국가가 아니다. 산업화와 안보, 헌정 질서와 경제 성장,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려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도 존재해왔다.

 

그 기억을 광장의 한복판에 남기는 일은 결코 권위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자유주의 국가가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방어하는 과정이다.

 

그람시를 읽는 자유주의 우파가 얻어야 할 교훈도 여기에 있다. 문화는 부차적인 장식이 아니다. 국가의 정신적 방향을 만드는 핵심 공간이다. 광장을 포기하면 상식도 포기하게 된다. 기억을 포기하면 결국 미래 세대의 정치 감정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광화문의 ‘감사의 정원’은 단순한 조경 사업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스스로를 기억하려는 문화적 선언으로 볼 필요가 있다.





◆ 松山(송산)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신화가 된 조선’과 ‘다다미 위의 인문학’을 펴냈다. 현재 자유주의 문화운동의 연구와 실천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松山은 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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