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기간 중 열린 회의에서 마크 뤼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 회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 대(對)이란 전쟁 과정에서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방어나 기지 사용 요청을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나토(NATO) 핵심 동맹국들이 거부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실망감은 단순한 유감을 넘어 분노와 실질적인 보복 조치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안보 협조를 거부한 일부 동맹국에 대한 경제 제재에 착수했으며, 글로벌 미군 배치 규모와 방위 기여도를 재조정하는 전면적인 군사 태세 변화를 예고했다.
실제로 미국은 쿠바에 대규모로 투자해 온 스페인의 대표적 호텔 체인 멜리아(Melia)와 금융사 셰리트(Sherritt) 등에 강력한 제재를 부과해 지분 매각을 압박했다. 미 국무부와 재무부의 압박으로 스페인 관련 대형 해운 물류사들이 쿠바행 선박 예약을 전면 취소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동시에 미국은 압도적인 공중급유기 자산을 활용해 유럽 내 기지를 거치지 않고 공중급유만으로 작전을 완수하는 능력을 과시했다.
안보적·물류적 가치를 제공하지 않거나 오히려 적대국과 밀착하는 동맹국은 언제든 미국의 제재와 군사적 배제 대상이 될 수 있음을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이는 유럽뿐만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및 안보 공약 조정을 앞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동맹국에 던지는 냉혹한 메시지다.
나토의 역사와 방위비 분담의 격변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의 주전장으로서 미국은 소련 등 연합국과 함께 추축국이었던 독일·이탈리아를 물리치고 승전국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 동·서 냉전이 시작되어 미국은 패전국을 포함하여 서유럽을 부흥시켜 공산주의 팽창을 막는 마샬 플랜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1949년에 창설된 나토는 냉전기 동안 미국의 핵우산과 대규모 미군 주둔을 바탕으로 구소련의 공산 진영 위협을 억제하는 핵심 보루였다.
소련 패망 이후 ‘지역 외 분쟁 개입’과 동진(東進) 정책을 추진해 온 나토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다시 ‘동유럽 최전선 방어’라는 본연의 임무로 복귀했다. 오랜 중립국이던 핀란드와 스웨덴까지 합류하며 나토는 32개국 체제로 거대화됐다.
러시아의 실존적 위협과 미국의 강력한 압박이 맞물리면서 나토 내부의 방위비 지출도 격변을 맞이했다. 2024년까지 ‘GDP 대비 최소 2%’를 국방비로 지출하겠다던 과거의 약속은 2025년을 기점으로 모든 회원국이 충족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4.3%), 리투아니아(4.0%) 등 동유럽 국가들은 이 기준을 훨씬 상회한다.
나아가 나토 동맹국들은 2035년까지 방위비 지출을 ‘GDP 대비 5%’까지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는 새로운 가이드라인(나토 3.0)에 합의하였다.
△핵심 군사 역량 개발(3.5%): 순수 전투력 증강 및 무기 체계 현대화 유도
△안보 연계 분야(1.5%): 사이버 안보, 핵심 인프라 보호, 방산 제조업 혁신 및 시민 방위 역량 강화 유도
서유럽의 정신적 해체와 체제 약화
문제는 전통적인 서유럽 강국들의 내부적 쇠퇴와 전략적 불감증이다. 최근 나토를 둘러싼 균열은 단순한 분담금 수치의 다툼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유럽을 지탱해 온 정신적 가치의 붕괴, 자유시장 체제의 약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난 구조적 위기다.
오늘날 서유럽은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도덕적 토대가 흔들리며 정신적 구심점을 잃어버렸다. 그 빈자리를 메운 좌경화된 문화 사조와 급격히 유입된 이슬람 문화가 유럽 사회를 밑바닥부터 흔들고 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환상과 복지 포퓰리즘은 개인의 개척 정신과 책임감을 마비시켰다.
냉전 종식 이후 서유럽 국가들은 안보는 미국에 통째로 아웃소싱한 채, 국방비를 삭감하여 확보한 재원으로 좌파적 퍼주기 복지에 골몰해 왔다.
그 결과 유럽은 경제적 효율성과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특히 이른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휘말려 스스로 탄소중립의 덫을 놓았다.
이 틈을 타 중국은 서방의 자유시장 제도를 악용하며 전 세계의 부를 빨아들였고, 군사·경제·문화·심리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을 파괴하는 '초한전(超限戰)'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유럽의 주요 항만과 첨단 기업들이 중국 자본에 잠식당했으며, 정치인과 학계는 중국의 자금에 매수되어 친중 목소리를 내왔다. 여기에 독일의 러시아 가스 의존, 프랑스의 분열주의 등 브뤼셀 EU 관료들과 일부 국가의 무능과 규제 만능주의가 유럽을 안으로부터 망가뜨렸다.
자유를 위한 결단과 정상화의 길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80년간 미국이 제공해 온 일방적인 방위 혜택의 시대를 끝내려 한다.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최근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미국의 안보 이익에 반하는 스페인의 퇴출 방안을 비밀리에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결코 가벼운 위협이 아니다.
미국은 기여도가 높은 국가에는 인센티브를 주되, 비협조적인 국가는 안보 우산에서 배제하거나 경제 제재로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실질적 지위 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나토 이탈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동맹 체제 자체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서유럽이 공짜 안보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를 지킬 힘과 의지를 증명할 때만 나토는 진정한 가치 공유 동맹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는 비단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맹의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국가는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이 냉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안보 확약을 앞둔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는 자에게 평화는 주어지지 않는다. 나토의 정상화와 동맹국들의 각성은 자유주의 진영이 전체주의 세력과의 거대한 문명사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첫걸음이자,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 신동춘 박사
행정학 박사, 자유통일국민연합 대표. 제21회 행정고시 합격 후 공직 생활을 거쳐 기업 CEO, 대학 교수, 언론 기고, 저술, 글로벌항공우주산업학회장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