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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보 입법제언 시리즈 ④] 공공시스템 무과실 책임… “국민 위한 디지털 보호장치 필요”
  • 김영 기자
  • 등록 2025-08-25 1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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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기관 운영 스템 피해 구제 문제
  • 무과실 책임 원칙 도입 필요
  • 선거시스템·행정알고리즘 등 위험 상존
이 기사는 [한미일보 입법제언 시리즈] 네 번째 편입니다.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소비자는 더 이상 단순한 상품 구매자가 아닙니다. 알고리즘은 채용·대출·복지·교육 등 삶의 기회를 좌우하지만, 그 과정은 불투명하고 피해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행 법제는 이런 무형의 피해를 포착하지 못합니다. 이번 편에서는 국제적 입법 흐름을 살펴보고, 한국 사회가 제정해야 할 ‘디지털 소비자 권리장전’의 필요성을 제언합니다. <편집자 주>

데이터와 인간을 저울에 올려 균형을 재는 ‘법의 여신’. 디지털 시대 소비자 권리 보장의 필요성을 상징한다. 한미일보 그래픽

디지털 사회에서 국민의 권익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책임은 이제 정부와 공공기관에 있다. 행정정보, 선거시스템, 사회보장 플랫폼 등은 국가의 관리 아래 운영되는 대표적 공공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들이 오작동하거나 보안상 취약점이 드러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개인에게 전가된다. 피해를 입증할 책임까지 국민에게 떠넘기는 현행 구조는 공정하지 않다. 따라서 ‘공공시스템에 대한 무과실 책임’ 도입이 시급하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은 기업이 만든 유형의 제품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오늘날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디지털 시스템은 국민 생활의 필수 기반시설이다. 선거 관리 시스템, 주민등록 데이터베이스, 건강보험 전산망, 전자정부 서비스 등에서 발생하는 오류나 보안 사고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 침해로 직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은 공공시스템 운영자의 과실이 입증돼야만 배상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 개인이 거대한 국가기관을 상대로 책임을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이미 2022년 ‘디지털서비스법(DSA)’과 ‘AI법’을 통해 공공성과 안전성이 요구되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엄격한 책임(Strict Liability)’을 부과했다. 


미국에서도 공공 데이터 관리기관의 ‘사이버 보안 의무 위반’에 대해 무과실 책임을 확대하는 입법 논의가 진행 중이다. 선진국은 국민의 권리를 우선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꿔가고 있다.


특히 선거시스템은 민주주의의 심장을 지탱하는 공공 인프라다.


만약 투·개표 시스템에서 오류가 발생하거나 외부 공격으로 조작 가능성이 발생한다면, 이는 단순한 기술적 결함이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의 근본을 흔드는 사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선거관리위원회는 지금까지 “침투 흔적이 없다”는 설명만 반복해 왔다. 국민은 불신을 해소할 아무런 장치도 갖지 못한 채 선관위의 자기검증에 의존해야 했다. 이는 책임의 비대칭 구조이며, 결국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신뢰를 위협한다.


행정 알고리즘 역시 위험성을 안고 있다.


복지급여 산정, 취업 지원 대상자 선정, 범죄위험 예측 등은 이미 알고리즘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불투명하다. 어떤 기준으로 자동화된 불이익이 내려졌는지, 차별적 요소가 개입된 것은 아닌지, 시민은 설명을 들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해 과실을 입증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따라서 공공시스템에 대해서는 운영자의 ‘무과실 책임’을 제도화해야 한다.


무과실 책임의 도입은 단순히 배상 문제를 넘어, 공공기관의 시스템 관리 책임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피해 발생 시 무조건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기관은 예방적 투자와 투명한 운영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의 권리 보호뿐만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안정성과 신뢰성 제고에도 기여한다.


한미일보는 이번 시리즈를 통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지점을 분명히 제안한다. 


첫째, 제조물책임법을 개정하여 디지털·공공시스템을 명시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 

둘째,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핵심 시스템에 대해선 무과실 책임을 원칙으로 하는 별도의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셋째, 선거시스템과 같은 민주주의 기반 시스템은 특별법적 관리·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은 단순한 법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신뢰받는 민주주의, 안전한 디지털 사회를 향한 최소한의 장치다. 공공시스템의 피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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