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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필규 칼럼] ‘악법’과 ‘떼법’과 ‘불법’에 맞서는 자발적 연대
  • 박필규 객원논설위원
  • 등록 2025-09-24 06: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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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원논설위원. 육사 40기12.3 비상계엄이 내란으로 몰리고, 사법의 정의를 지키려는 대법원장이 청문회까지 몰린다. 자유 우파는 경제적 자유와 국가 안보, 부동산 등 여러 사회적 논쟁에서 논리와 도덕적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성적 여론전에서 연속으로 패배하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자유 우파가 대중의 정서를 읽고 그에 맞는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부족해서일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해가 서거 4년이 다가오는데도 아직도 안장하지 못하고 연희동 자택에 임시 안치된 현실은 단순히 한 개인의 장례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현대사가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신념, 경제적 정책, 사회적 정의에 의한 법치와 법적 질서로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부정선거에 의한 ‘악법’과 떼거리 힘'으로 만든 ‘떼법’과 내로남불 ‘불법’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법치가 아닌 떼거리 폭력이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자유 우파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무시한 5.18 특별법 이후 '떼법'에 밀려 자신의 기본권까지 침해받는 현상은 단순히 자유우파의 전술적 패배를 넘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붕괴 위기를 상징한다. 우리는 ‘떼법’이 왜 생기고 그로 인해 어떤 암울한 미래가 도래할지 깊이 성찰하고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사회 정의를 가장한 '떼거리'의 폭력성


다수가 개인을 공격하는 좌파 진영의 오래된 '떼거리'의 힘은 단순한 물리적 집결을 넘어, 표면적으로는 도덕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들은 '정의와 평등', ‘인권과 평화’, '사회적 약자 보호'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앞세워 자신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 가치에 반하는 목소리는 곧 '불의'가 되고 개딸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프레임은 비판과 반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집단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초법적 '떼거리 떼법'은 곧 '여론'이 되고, '여론'은 곧 왜곡되고 변질된 '진리'가 되는 위험한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 이성적 논쟁은 감정적 호소에 밀리고 팩트는 무의미한 숫자로 치부된다. 떼거리 무리는 필요하면 여론을 조작한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현상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해치고 언론의 보도를 왜곡하며,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에 재갈을 물리는 폭압적 사례들을 무수히 목격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적 검열은 논리의 영역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진중문고마저 폐기한다. '평등'을 앞세워 '자유'를 앗아가고, 자유 우파 담론자와 메신저를 대상으로 정신적 테러로 자유시장 목소리를 위축시킨다. 


자유 우파의 딜레마


우파 대통령 5명이 교도소에 갔다. 좌파 대통령은 현행법을 위반하고도 건재를 과시했다. 사법부가 좌파 이념에 장악되었고 문화계 역시 좌파의 서사에 의해 지배당했다. 자유 우파가 체제 전쟁에서 밀리는 이유는 그들의 본질적인 가치인  '합리적 개인'과 '대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 공익성과 국익에 맞지 않기 때문일까? 


우파 성향의 개인들은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고 믿기에 '떼를 지어' 싸우는 것을 거부한다. 정쟁 차원의 힘의 연결과 선전도 할 줄 모른다. 그들은 감정적 호소보다 '팩트'와 '논리'를 중시하고 그들의 논리가 대의를 통해 사회 전체에 반영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악법과 '떼법'을 만나면 백전백패한다. 그래서 법보다 가까운 떼거리 횡포에 법치는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다. 


이번 네팔 청년들의 공산당을 무너뜨린 힘은 권위적인 조직과 단체가 아닌 개인 연대(Individualistic Solidarity)'의 힘이다. 단체 리더가 이해관계에 얽히고 주저하면 대의를 놓친다. 백만 군중이 모여도 언론도 외면한다. 


개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공통의 위협에 맞서 자발적으로 결집하는 형태의 새로운 집단지성이 필요하다. 이 연대는 '누군가의 정의'를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모인다. 마치 수많은 개미들이 각자의 길을 가다가도 공동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놀라운 조직력으로 거대한 적에 맞서는 것처럼 말이다. 개인 하나하나가 정의 수호의 양심이고 헌법 기관이다. 


이러한 새로운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혜가 필요하다.


첫째, 디지털 '시그널 플랫폼' 구축: 현안 이슈 발생시 SNS를 통해 짧은 메시지를 체계적 전파, SNS ‘좋아요’와 필요시 소액의 후원금으로 호응하여 '떼거리' 폭압에 굴복하지 않고 현재 이슈를 지지하는 다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 故 찰리커크를 위한 온라인 분향소 마련과 댓글 참여는 좋은 사례다. 이는 많은 동지들이 동참하고 있다는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고 개인의 침묵을 깨는 용기를 불어넣는다.


둘째, '팩트'를 '스토리'로 재구성: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팩트를 대중의 감성에 맞는 '스토리'로 재구성해야 한다. 다양한 전문가, 작가,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떼거리'의 일방적인 독선과 일탈과 불법에 맞서는 다양한 관점의 서사를 생산하고, 이를 영화, 드라마, 웹툰,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영돈 PD의 '부정선거, 신의 작품인가'와 김덕영 감독의 '건국전쟁' 시리즈가 대표적 성공 사례다. 이는 좌파의 ‘문화 전쟁'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이다. 


셋째, '기본권 수호 변호사 네트워크' 구축: '떼거리'의 압력에 맞서려면 개인의 기본권 침해 사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독립적인 법률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 네트워크는 법적인 대응뿐만 아니라, 침해받은 개인의 스토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대한민국 계속성 유지를 위한 외침


자유 우파가 '떼거리 문화'에 밀려 주권까지 잃는 위기를 더이상 방치하면 대한민국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개미들의 자발적 합창'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자유 수호라는 목표를 향해 자발적으로 연대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떼거리의 횡포와 압력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방편이다. 


우리 힘으로 부정선거 문제와 무도한 ‘떼법’을 무력화시키는 용기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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