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연합뉴스
투표함에 ‘間印’을 찍었다고 선관위가 고발하고, 경찰이 조사에 착수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161조에 따라 참관인이 법적으로 보장된 권한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투표함 훼손’이라는 이름으로 형사처벌하겠다며 칼을 빼들었다. 헌법기관이라 자처하는 이 집단이 정작 헌법이 보장한 선거 감시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간인은 투표참관인이 투표함의 봉인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고, 훗날 봉인을 누군가 임의로 훼손할 경우를 대비해 ‘감시의 흔적’을 남기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도장이나 서명은 봉인지와 투표함 사이를 가로지르며 찍혀야만 무단 개봉을 즉각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수단보다 단순하고 강력한 선거부정 억제장치로, 전국 선거에서 수년간 묵인 혹은 권장되어 온 관행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선관위는 그 간인을 “훼손”이라며 수사하라 윽박지르고 있다.
이런 논리라면 투표함 옆에 서서 투표함을 ‘유심히 바라보는 것’도 선거 방해고, 투표함이 제대로 봉쇄되었는지 손으로 살펴보는 행위도 훼손이 된다. 심지어 알콜솜으로 지워지는 도장조차 “기물 파손”이란다. 선거 감시를 원천 봉쇄하려는 선관위의 저의가 의심스럽다.
표면적으로는 ‘훼손 방지’를 내세우지만, 실질은 국민의 감시와 의심을 ‘무력화’하려는 것에 가깝다.
투표함은 ‘성역’이 아니다. 선거는 국민의 위임을 받는 과정이고, 그 절차는 국민이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참관인의 권리는 선거관리위원회의 허가사항이 아니라, 법률이 보장한 국민의 권한이다. 그런 참관인을 선관위가 고발하고, 국가가 수사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헌법적 권력의 자기모순이자 선거 제도의 파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조치가 전례 없이 전국 단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개별 선관위의 우발적 대응이 아니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내부 지침 또는 공통 대응방침이 작동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그렇다면 이는 단순한 ‘오해’나 ‘과잉 대응’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권한 남용이자 헌법적 권리 침해다.
행정절차법 제4조는 "국민의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관위가 수차례 선거에서 사실상 허용해온 간인을, 갑자기 처벌 대상으로 바꾸는 것은 명백한 신뢰침해다. 선거의 일관성과 공정성은 절차의 안정성에서 나오며, 제도를 감시하려는 시민을 형사범으로 몰아넣는 행태에서 민주주의는 설 자리를 잃는다.
오늘날, 국민의 불신은 ‘입증 실패’가 아니라 ‘감시 배제’에서 비롯된다. 지금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은 도장을 찍은 시민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왜 시민이 간인까지 하게 되었는지를 자성하는 것이다. 봉인의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포기했기에 시민이 나선 것이며, 그 시민을 범죄자로 몰아가려는 지금의 조치는 단지 무능을 덮으려는 비겁한 정치 기술에 불과하다.
투표함은 누구의 것이 아닌가? 국민의 것이다. 국민이 감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선관위야말로 진짜 수사를 받을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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