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청년단체들이 서해를 배경으로 ‘태극기를 깨우다’ 행사를 가졌다.
청년단체 FLD와 민초결사대는 제11회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장소인 인천 월미문화로에서 29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시민이 참여하는 ‘태극기를 깨우다’ 행사를 진행했다.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청년단체 회원들은 이날 여러 장의 대형 태극기를 준비해 와 관광객 등 행인을 대상으로 태극기와 더불어 기념사진을 찍어주거나 태극기를 휘둘러보도록 하는 등 태극기와 가까이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태극기와 함께 찰칵! [사진=임요희 기자]
이날 행사에는 어린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으며 외국인 관광객도 큰 관심을 갖고 동참해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와의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문태헌 FLD 기수단장은 ‘태극기를 깨우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평소 대형 태극기를 접할 기회가 없는 분들이,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인천상륙작전이 펼쳐진 뜻깊은 장소에서 태극기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소셜미디어에 업로드도 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며 “태극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들 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해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넓고 푸른 서해를 배경으로 대형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게 했다.
새기자 서해수호의 날! 기억하자 인천상륙작전!
‘서해수호의 날’은 서해에서 발생한 북한의 도발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서해수호 55용사’를 추모하고 기리는 대한민국의 법정기념일로 3월 넷째 금요일(올해는 27일)로 지키고 있다.

제11회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장소인 인천 월미문화로에서 진행된 '태극기를 깨우다'. [사진=임요희 기자]
2000년 이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는 북한의 도발로 △제2연평해전(2002년 6월29일) △천안함 피격(2010년 3월26일) △연평도 포격도발(2010년 11월23일)의 3대 무력 충돌이 있었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한일월드컵 기간 중, 북한 경비정 2척이 서해 NLL을 침범하여 우리 해군의 참수리 357호정에 선제 기습(포격)을 가하며 교전이 발생한 사건으로 우리 군은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봄 백령도 서남방 해상에서 초계 임무를 수행하던 천안함(PCC-772)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한 사건으로 천안함 장병 46명이 전사하고, 구조 과정에서 한주호 준위가 순직하는 등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가을 북한이 연평도를 향해 수십 발의 해안포를 무차별 포격한 사건으로,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포탄이 날아들었다. 이 공격으로 해병대 장병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연평도 포격전은 6·25전쟁 이후 민간을 직접 타격한 최초의 도발로 북괴의 포격 후 해병대의 즉각적인 대응 사격으로 북한군에게도 피해를 입혔다.
참고로 1999년 6월15일에 발생한 ‘제1연평해전’은 서해 도발의 시초로 볼 수 있으나 인명 피해가 컸던 2000년대 이후의 사건들을 서해 도발로 지칭하고 있다. 서해수호의 날은 그중 가장 피해가 컸던 ‘천안한 피격’이 있었던 날을 기준으로 지정된 것이다.
한편 인천상륙작전, 작전명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는 6·25전쟁이 수세에 밀리던 1950년 9월15일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단행된 연합군의 기습 상륙 작전이다.
이 작전은 조수간만의 차가 극심하고 수로가 좁아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이라 불릴 만큼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맥아더 장군은 오전에는 월미도(그린비치), 오후에는 인천항(레드비치)과 남쪽 해안(블루비치)으로 나뉘어 상륙을 진행해 작전 성공 2주 만인 9월28일 서울을 수복하였으며, 북한군의 주력을 붕괴시키고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작전이 시행된 인천 월미문화로(그린비치)에는 ‘인천상륙작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