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 육사 40기
현 정부는 사관학교 통합을 위해 1단계로 각 사관학교를 국방부 직속 기관으로 전환하고, 2단계로 '국군사관학교'를 창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현행 '사관학교 설치법'을 개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사관학교 통합 준비 단계로 추진했던 육사와 3사 통합은 육군의 비대함을 우려해서인지 검토를 중단한 것처럼 보인다.
사관학교 통합의 명분은 미래전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육·해·공군 간 협력과 합동 작전 능력을 강화와 과거 '하나회'와 같은 특정 출신 집단의 카르텔을 방지하여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그들의 군 불신 논리라면 통합 사관학교에서 모든 장교가 배출되면 더 큰 새로운 형태의 카르텔이 생길 것인데 특정 군의 카르텔화를 우려하여 통합한다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명분의 저변에는 12.3 비상계엄 당시 육사 출신 장성들이 많았다는 것에 대한 정치권의 감정적 대응이자 정치보복으로 볼 수밖에 없다. 소수 위정자와 현 안보라인이 전쟁과 군사 기능의 다양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획일적 사고의 표출이자, 현 정권의 정치적 불안감에서 비롯된 졸렬한 군 통제 정책에 불과하다.
1. 현 정부가 추진하는 사관학교 통합은 군 파괴 행위다.
사관학교 통합은 군의 교육 체계와 정통성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군미필 위정자와 안보 수장들의 ‘내란 프레임’ 완성이자, 이참에 사관학교 뿌리를 없애려는 졸속 행정이다. 이는 마치 진시황이 자신의 통치에 방해가 되는 사상을 없애려고 책을 모두 불태운 분서갱유에 비유할 수 있다. 분서갱유가 사상을 지운 행위였다면, 사관학교 통합은 각 군의 정통성을 지우려는 행위로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특정 사관학교 카르텔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허상의 카르텔을 설정하고 해체하려고 사관학교를 통합하려는 것은 구한말 유림 세력의 기득권을 해체하고 왕권 강화를 위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비유할 수 있다. 전국의 서원을 통합하고 47개로 축소했지만 최종 상태는 망국이었다.
사관학교 통합 정책은 군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표면적인 문제 해결에만 집중한 결과다. 사관학교 통합은 각 군의 전통과 정체성과 전문성을 훼손·말살하고, 군 장교 집단의 질적 약화를 초래하며, 국방력을 약화시키고 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며, 장기적으로 군이 정치에 마냥 끌려가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군의 사기 수준을 알고 대한민국 군의 미래 요구되는 기능을 아는 안보 수장과 위정자라면 사관학교의 물리적 통합이 아닌, 각 군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면서도 '협력'과 '소통'을 강화하는 방향을 강구해야 한다. 가야금 열두 줄이 서로 떨어져 공명하기에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이치를 그들만 모르는가?
2, 사관학교 통합은 국군조직법의 취지와 헌법 가치를 훼손한다.
헌법과 국군조직법은 육·해·공군을 명확히 구분하고 각 군의 고유한 전문성을 존중하고 있다. 사관학교 통합은 각 군의 특수성을 고려한 장교 양성체계를 무너뜨리고 군 관련 법안을 무력화하며, 군의 정치적 중립성과 국방 의무의 효율적 이행이라는 헌법 가치까지 훼손할 수 있다.
각 군에 특화된 교육 부재로 장교들의 전문성 저하를 야기하며, 장교 임용 절차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사관학교 통합은 군의 전투력과 효율성 저하로 이어져 국방력 약화를 초래하고 군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는 등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진정한 합동성 강화는 통합이 아닌, 각 군의 전문성을 극대화하면서 협력과 소통을 증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3. 사관학교 통합보다 합동성 증진을 위한 교류 확대 제도화
획일적이고 전체주의 기질이 강한 자들은 각자 떨어져 기능을 발휘하는 것보다 한 곳에 끌어모아 통제하고 지배해야 마음이 놓이는 속성이 있다. 독재자들의 대표적 기질이다. 사관학교 통합을 주장하는 측은 독일과 캐나다의 사관학교를 통합 사례를 제시한다. 독일은 각 군의 장교 양성 과정을 마친 후 연방군대학에서 학문적 교육을 받는 이원화 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캐나다 또한 왕립사관대학(RMC)에서 장교를 통합 양성한다. 하지만 한국의 군사 환경은 이들 국가의 양성체계와 현저히 다르다.
한국은 여전히 북한이라는 명확한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육·해·공군이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빈틈없는 방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해군과 공군은 첨단 기술과 복잡한 무기 체계를 다루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미국 역시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별도로 운영하며 각 군의 합동성과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을 사관학교 통합 임무를 받은 실무자는 참고하길 바란다.
인공지능 로봇과 정밀타격 드론이 전장을 주도하는 하이브리드 전쟁을 눈으로 보면서도 다양성보다 합동성을 찾는 행위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합동성은 지휘와 통솔과 통치의 지휘 일원화 영역이지 군사의 만능(萬能) 기능이 아니다.
사관학교 통합 대신, 사관학교 통합 예산의 1%만 투자하여 국방대학원 조직에 영관장교 중심의 ‘군사 리더십 대학원’ 설립 방안과 국방정신전력학교에 ‘AI 기반 합동성 이해’, ‘MZ 세대 부대관리 및 교육훈련’, ‘리더십’, ‘안보·군사외교·정치·경제’ 초급·중급·고급 과정을 개설하여 각 군의 모든 장교가 이수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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