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영명학교
안동 영명학교(영가교육재단) 남 모 교감의 시신이 5월 19일 발견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사건을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유족은 “힘들게 살아오신 아버지를 이제 어머니 곁에 잘 모셨으니 제발 죽음을 거론하지 말아 달라”며 조용히 두기를 원하고 있다.
일부 언론, 특히 뉴스1은 유족 진술을 인용해 “남 교감이 남긴 유서에 극심한 우울감과 자괴감이 적혀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기자와의 통화 결과, 해당 내용은 경찰이 확보한 유족 진술을 토대로 한 것으로, 현재도 유서 실물·사본·필적감정 자료는 전혀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유서가 실제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보도만 사실처럼 소비되는 중이다.
유족이 확인한 남 교감의 출생연도는 1957년으로, 2010년 실종 당시 나이는 53세였다. 그런데 뉴스1 보도에는 “1971년 동료 교장 B씨와 함께 특수학교를 설립했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 그는 만 14세로 대학 입학 전이었고, 영명학교(영가교육재단)의 공식 설립연도는 1972년이다. 재단 설립자 명단에도 그의 이름은 없다. 1989년 11월호 《샘터》 기고문에서 남 교감은 “특수학교에서 12년째 지도하고 있다”고 밝혀, 실제 부임 시기는 1977년 전후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유족측은 “남 교감이 57년생이며, 77년 대학 재학 중에 배 이사장을 만나 영명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고 뉴스1 기자를 통해 한미일보에 전해왔다.
영가교육재단의 창립자는 배연창 전 이사장으로, 1986년 (재)안동애명복지촌을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2009년 배 전 이사장이 지병으로 사망하자 재단 운영권과 교장직은 2대 이사장인 남숙자 씨(배 전 이사장의 부인으로 추정됨)에게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남 교감이 ‘시골 분교로 전보돼 사실상 좌천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영명학교에 당시 분교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유족 측의 주장 외에 이를 뒷받침할 공식 기록이나 자료는 발견되지 않았다.
뉴스1의 남 교감 관련 단독보도는 출생연도와 설립 시기 불일치, 좌천 인사와 분교 존재 여부, 유서 실재 여부라는 세 가지 미스터리를 안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지만 안동경찰서는 사건을 ‘자살’로 종결했다. 핵심 증거와 기록이 비공개 상태인 만큼, 공신력 있는 검증과 기록 공개 없이는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관련 기사 댓글 종합 해석]
남 교감 시신 발견 기사에 달린 댓글은 크게 세 가지 흐름을 보인다. 첫째, 고인의 삶과 헌신을 인정하며 안타까움을 표하는 애도형. 둘째, ‘유서’ 보도가 자살 종결의 근거가 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언론 보도의 단정적 어휘를 경계하는 비판형. 셋째,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남 교감을 궁지로 몰았다고 보는 책임 추궁형이다.
일부 댓글은 고인을 위해 애썼던 개인 경험을 언급하면서도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을 사용해 복합적 감정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사건 배경에 대한 불신과 책임 소재에 대한 지역사회 여론이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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