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국회 소통관에서 69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은 국회 정론관에서 남인순·이수진 의원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민주당 남인순‧이수진 의원이 지난 7월에 대표 발의한 ‘낙태’ 관련 법안, 즉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기독교계를 비롯한 보수단체의 반대로 정치 쟁점화되었다. 이들은 <태아‧여성보호국민연합> 69개 단체를 결성하여 대응하고 있다. 두 의원이 발의한 법안 핵심은 아직 국내 허용이 되지 않은 먹는 낙태약 도입이 포함돼있다. 남인순 의원은 해당 법안을 발의하며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법안 내용은 네 가지다. △만삭 태아 무제한 낙태 허용 △먹는 낙태약 도입 △임신 중절 수술 및 낙태 약물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인공임신중절 → ‘임신중지’로 용어 변경이다. 주지하다시피 헌법재판소는 2019년에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며, 임신 22주 이후 태아는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성이 있으니 국회가 2020년 12월 말까지 대체입법을 마련하도록 주문했다. 하지만 국회는 6년이 지나도록 대체입법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낙태 찬성 측은 낙태죄가 무효화 되었으므로 사실상 비범죄화되었다고 해석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인순‧이수진 의원이 급진적인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낙태죄 폐지 운동 여성단체들은 수년 전부터 낙태 의약품 도입을 위한 행동에 나선 바 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지면을 통해 ‘낙태’라는 용어를 ‘임신중지’로 바꾸는 문제에 대한 배경과 맥락을 살펴보고자 한다.
낙태권을 옹호하는 좌파 여성계는 어느 때부턴가 낙태라는 말을 여성 차별적 용어로 규정하며, 임신중단 혹은 임신중지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다 지금은 어느새 사회적 용어로 낙태 대신 임신중지로 불린다. 이들은 낙태의 뜻이 “태아를 떨어뜨린다”는 말이므로, 여성에게만 잘못을 떠넘기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는 이유를 들었다. 국내 페미니즘운동이 불붙은 시기인 2017년 낙태죄 폐지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여성이 몸의 주체적 존재이므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성평등 사회로 가는 길임을 강조하며 임신중지로 써야 한다는 운동도 동시에 벌였다.
일례로 2017년 결성된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의 슬로건 중 하나가 “국가는 임신중지를 건강권으로 보장하라”였다. 이때부터 먹는 낙태약 허용을 강력히 주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6일 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국회에서 주최한 <입법공백 해소를 위한 인공임신중지 토론회>에서도 낙태가 아닌 임신중지라는 용어로 타이틀을 걸었다.
임신중지라는 용어에 더욱 힘을 실어준 사례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시절이었다. 페미니스트이기도 한 박 전 시장은, 페미니즘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던 시기에 “단어 하나, 행동 하나가 성평등 서울을 만든다”는 취지로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을 시민 제안 형식으로 2018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시즌1~3까지 계속된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에는 낙태→임신중단이 포함됐다. 이 시기에는 미혼→비혼, 유모차→유아차, 저출산→저출생, 경력단절여성→고용중단여성, 자궁→포궁 등 그동안 전통적으로 익숙하게 쓰는 많은 용어를 법령‧행정 용어로 개선하는 것에 주력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언어 교체 바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말 등장한 신좌파 운동과 결합한 급진 페미니즘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미국 급진 페미니즘운동의 불을 지핀 베티 프리단은 낙태할 권리를 주창하며 이를 여성운동의 주요 어젠다로 만들었다. 앞서 급진 페미니즘의 원조 격으로 ⟪제2의 성⟫을 쓴 시몬느 보부아르 역시 자신의 저서를 통해 “모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낙태는 후회할 일이 아니다”며 페미니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급진 페미니즘 발발과 함께 낙태할 권리 전쟁은 시작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언어에 담긴 성차별, 편견, 평등권 침해를 이유로 들어 새로운 어휘로 만들거나 용어를 새롭게 정의했다. 언어는 사상의 도구요, 언어를 점령하면 그것이 곧 정의의 범위, 사상의 한계를 결정짓는 시대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좌파적 용어인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 사조가 유행하며 정치적 관점에서 차별과 편견을 없애는 게 올바르다는 기치로 언어와 사상과 언론에 통제력을 발휘했다. 여성, 인종, 성소수자 등을 사회적 약자로 부르며 이들에게 차별적 언사를 하면 성차별주의자, 여성혐오자,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었다. 언어의 속박은 사상을 통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자유로운 토론에 재갈을 물리는 결과를 낳았다.
기존에 쓰던 용어를 골라서 혐오적이다, 성차별적이다는 식으로 개념 확대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발언권은 좌파가, 페미니스트계가 점하고 있다. 낙태를 낙태라 하고, 자궁을 자궁으로 부르면 그것은 성평등에 부합하지 않으니 페미니스트들이 창조한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페미니즘 담론이 지배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인순‧이수진 의원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인공임신중절’이라 언급하는 부분을 전부 ‘인공임신중지’로 바꾸는 법안이다. 앞서 말했듯 이 법안이 내세우는 명분은 여성의 판단과 결정을 바탕으로 여성의 건강권, 자기결정권이다. 그러나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태아를 희생하는 생명윤리는 빠져 있다. 더구나 먹는 낙태약 허용과 같은 극단적인 낙태 방법을 해결책으로 삼는다면 태아의 생명권을 빼앗는 일임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여기에다 중절 수술이나 먹는 낙태약 도입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라는 법안은,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일에 납세자의 세금을 사용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끝으로 세계인권선언 제3조를 상기하자. “모든 사람은 생명권, 자유권, 신체 안전권을 가진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에는 태아의 생명권도 포함됨은 당연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오세라비 (작가‧(사)대안연대 공동대표‧(사)위민앤패밀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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