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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의 전라도에서] 이재명, 나 홀로 국방은 없다
  • 정재학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5-09-25 17: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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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칼럼니스트 신라의 삼국통일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다만 신라의 삼국통일이 주는 교훈만큼은 잊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이는 어쩌면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는 남의 힘을 이용할 줄 아는 국가였다. 스스로는 백제를 이길 수 없고, 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를 물리친 강대한 국가였다. 겨우 나제동맹을 맺어 백제의 힘을 빌려야만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신라는 '나 홀로 국방'을 고집하지 않은 국가였다. 신라가 초강대국 당나라를 이용하여 국난을 이기고자 한 전략은 신라 입장에선 '신의 한 수'였다.


그것은 외교의 힘이었다. 김춘추는 외교의 달인이었다. 그는 백제를 치기 위해 고구려를 찾아갔고, 또한 당나라를 찾아갔다. 그리고 당나라의 힘을 빌려 마침내 660년 백제를 멸망시켰다.


당나라는 고구려 멸망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수나라 113만 군이 거의 전멸하고, 이어 당태종조차 안시성에서의 패퇴로 한쪽 눈을 잃고 물러갔다. 당나라는 이 패전에 대한 복수를 위해 신라의 힘이 필요했다. 결국 668년 나당연합군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배후에서 신라의 공격이 없었다면, 고구려가 당나라 따위에게 망할 까닭이 없을 때였다. 안시성 전투가 645년이었고, 고구려는 당시 말갈을 비롯하여 만주 전역을 통치하고 있을 때였다. 백제가 무너진 지 불과 8년. 따라서 신라가 배후에서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치지 않았다면, 고구려 멸망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백제의 멸망을 지켜보면서 누구보다 먼저 위기를 깨닫고, 고구려가 주변국가들과 동맹을 추진하여 당나라와의 외교를 강화했다면,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다.


고구려와는 달리 신라는 다시 남의 힘을 이용한다. 당나라군을 이용하여 고구려와 백제 부흥군 진압에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신라의 위기로 반전된다. 당나라가 웅진도독부를 세워 백제 전 영토에 대한 지배 야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에 다시 신라는 백제 고구려 유민의 힘을 빌려 저항을 시작한다. 김유신은 소정방을 살해하는 등 당나라군과 맞선다.


당나라가 한반도에서 군을 철수시킨 것이 온전히 신라의 저항 때문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역사를 잘못 이해한 결과다. 무려 100만을 동원할 수 있는 당나라가 겨우 5만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신라에 패배해서 군대를 철수시켰다는 이야기를 누가 믿겠는가.


실은 바로 그 무렵에 토번(티베트)이 당나라를 쳤기 때문이었다. 당시 당나라군은 경기도 김포 일대까지 밀고 내려왔을 때였다.


나당전쟁이 674년과 675년 2월까지 14개월간  소강상태가 된 이유는 673년 12월 토번이 서투르크와 함께 천산북로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미 천산남로를 뺏긴 당군은 마지막 남은 천산북로를 사수하기 위해서 대(大)부대를 토번 전선에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당나라는 당나라 본토가 위협당하는 처지에 몰리자 나당전쟁을 포기하였다. 신라로서는 천운일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었다. 신라가 그 먼 거리 밖의 토번과 연합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토번은 신라의 외교가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토번은 손첸감포라는 성군을 만나 강대해지고 있을 때였다. 그리하여 당나라는 군대를 철수시키고, 신라는 한반도 내 고구려 영토 일부와 백제 땅을 흡수하여 반쪽짜리 삼국통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만약 토번이 없었다면, 신라는 그때 당나라 손에 멸망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보면서, 외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새겨보아야 한다. 그리고 '나 홀로 국방'은 있을 수 없다는 교훈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최근 이재명은 '미군이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은 굴종적 사고'라 말한 바 있다. 무식한 천민보다도 못한 인식이요 발상이다.


국방이 외교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군사학의 기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시 미군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 아닌가.


6.25 국난 극복은 유엔 16개국이 동원된 외교전의 승리였다. 이승만 박사가 휴전에 대한 대가로 미군 주둔을 요청한 뒤, 무려 70여 년간 우리가 공산의 협박 속에서도 평화를 누리며 번영할 수 있는 것도 외교가 가져다준 힘이었다.


외교는 굴종이 아니라 협력이다. 여기에 국방 역시 외교를 따라 오는 것이므로 '나 홀로 국방'은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히틀러조차도 일본과 이탈리아와 함께 '주축국'이라는 동맹을 맺고 나서 2차 대전을 시작하였다.


스탈린도 중국이 있었기에, 6.25 남침을 허용했다. 따라서 반미주의자 이재명은 미국을 버리고 중국공산당과 손을 잡을 것을 계획하고 있는지 모른다. 친북종중주의자다운 짓이다.


군대를 다녀오지도 않은 자가 국방과 안보를 이딴 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평택기지에서 한반도 평화를 지켜주고 있는 주한미군을 바라보면서, '굴종적 사고'라고 말하는 그 속이 참으로 궁금하다.


그리고 그 폐쇄된 인식 속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부국강병을 기대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은 공산협력자 이재명을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야 하는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있다.


참고로, 672년 12월 백수산 전투에서 신라군이 패하고, 673년 7월 김유신이 세상을 떠나자, 신라는 위기에 처한다. 이렇게 나당전쟁이 신라의 패배로 위기에 몰리던 당시, 신라 문무왕이 당나라에 보낸 서신 내용을 실어본다.


아마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수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므로 이재명은 무엇이 굴종인지, 무엇이 외교 전략인지, 어디 한번 새겨보아라.


"신은 죽을죄를 지어 삼가 말씀드립니다. 옛날 거꾸로 매달린 것 같았을 때 은혜를 입어 찢겨 죽는 것을 면했사온데, 몸을 가루로 만들고 뼈를 바순다 해도 크나큰 은혜를 어찌 보답하겠습니까? 머리를 깨뜨리고 재가 될지언정 그 자애로움을 어찌 다 갚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흉악한 역적의 이름을 쓰게 되어 용서받기 어려운 죄인이 되었사온데, 신이 형벌을 받아 죽는다면, 살아서는 천자의 명을 거스른 신하가 되고 죽어서도 은혜를 저버린 귀신이 될까 두렵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조정의 처분을 기다리오니, 신은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리며 죽을죄를 지었음을 아뢰옵니다.”


문무왕은 고종을 달래기 위해, 이런 편지를 번이나 보낸다. 이때가 672년, 고구려가 멸망한 지 4년이 지났을 때였다.


정재학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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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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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9-26 10:15:16

    중공과 북한은 미군철수를 원한다. 같은 편이니 같은 주장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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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ngyc712025-09-25 22:28:24

    유엔도 매수햇나 대부송금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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